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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의 세상읽기)올림픽, 그냥 즐기자
2016-08-07 15:00:00 2016-08-07 18:14:45
1992년 6월 말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 사설학원에서 독일어를 배우면서 평범한 독일 가정에서 하숙할 때의 일이다.
 
하숙집 주인아저씨인 콜베르크씨는 은퇴를 6개월 앞둔 공무원으로 말이 거의 없었지만 그의 아내인 마리아 콜베르크 할머니는 입을 잠시라도 쉬면 혀에서 바늘이 돋을 것 같은 명랑한 분이었다. 덕분에 나는 마리아와 노닥거리며 독일어를 연습할 수 있었다. 저녁이 되면 우리 셋은 함께 거실에 모여 책을 읽었다. 나는 내 방에서 책을 보고 싶었지만 마리아는 에너지를 아껴야 지구를 살린다며 나를 불러냈다. 자기 전에는 낮 동안 창가에 두어서 따뜻하게 데워진 맥주를 함께 마셨다(이렇게 맥주를 마시는 사람은 그 뒤로 보지 못했다).
 
그럭저럭 한 달이 지날 무렵 조용했던 우리 하숙집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원래는 말이 많지만 독일어를 잘 못해서 조용할 수밖에 없었던 내 말문이 마침내 트이기 시작한 것이다. 마리아는 숙제를 도와주던 수준에서 벗어나 나와 개인적인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녀는 자랑할 게 참 많은 분이셨다. 처음에는 스페인에서 의학을 공부하는 큰 아들과 독일에서 치의학을 공부하면서 축구심판으로 일하는 작은 아들 자랑을 늘어놓았다.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는 자랑이고, 훌륭한 아드님을 두셨다고 맞장구를 쳐드렸다.
 
할머니의 자랑은 별 시시콜콜한 것까지 이어졌다. 독일 세탁기의 뛰어난 에너지 효율에서부터 도로 표지판의 합리성에 이르기까지… 좀 귀찮아질 무렵이었다. 마리아는 내가 미리 지불한 석 달치 하숙비로 비디오플레이어를 구입했다. 연결을 도와주겠다는 내 호의를 거절한 채 혼자 낑낑대며 설치를 마치고는 비디오플레이어에 대한 강의를 시작했다. 그 기계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녹화해서 나중에 다시 볼 수 있는 엄청난 장치라는 것이다. "정모, 너는 이런 것을 상상이나 해봤어?"라고 물었다. 나는 한국의 모든 가정에 이런 것이 있으며, 동영상을 직접 촬영할 수 있는 비디오카메라도 웬만한 집에는 있다고 대답했다. 할머니는 내가 샘이 나서 거짓말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마리아는 자기 식구가 네 명인데 차가 세 대나 있다고 자랑했다. 나는 한국의 우리집에도 차가 한 대 있으며 곧 독일에서도 차를 살 것이라고 응수했다. 할머니는 그럴 리가 없다면서 조간신문을 가져왔다. 거기에는 한국 직장인들이 여름휴가를 3~4일 정도밖에 안 간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2~3주씩 여름휴가를 가는 독일 사람들과 달리 겨우 3~4일밖에 휴가를 못 가는 사람들이 무슨 차가 있느냐고 따졌다. "마리아, 당신은 한국에 못 가봤지만 나는 독일에 와서 살고 있잖아요!"라고 반격했다. 이때부터 우리의 관계는 냉랭해졌다. 형식적인 인사만 했다.
 
그러던 어느 주말 바르셀로나 올림픽 경기가 개막됐다. 할머니는 나를 억지로 텔레비전 앞에 앉혀놓고는 정성스럽게 데워 놓은 맥주를 대접하면서 독일 선수들의 선전을 내 눈으로 보게 했다. 마리아는 신났다. 그런데 독일 아나운서는 "우리 자랑스러운 독일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라는 말 대신 "아헨 공대 학생이 메달을 땄습니다"라는 식으로 말했다. 내가 물었다. "독일 사람이 딴 것입니까, 아헨 사람이 딴 것입니까?" "아헨 사람이 메달을 딴 거지." 독일에 대한 자부심이 아주 강한 할머니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올림픽은 국가적인 대사라기보다는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의 잔치라는 게 평범한 독일 할머니의 생각이었다.
 
1992년 8월9일 늦은 저녁 시간, 황영조 선수가 56년 만에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우승했다. 나는 감격한 나머지 1936년 베를린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한 선수도 사실은 일본 사람이 아니라 한국 사람이었으며, 나치가 올림픽 게임을 자신의 선전도구로 사용하였지만, 오히려 흑인과 한국 같은 식민지 사람들은 어떤 희망을 얻기도 했다고 되지도 않는 독일말로 떠들었다.
 
마리아 할머니가 조용히 물었다. "이번에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가 너와 같은 도시 출신이야?" 황영조가 삼척 출신이라는 것을 알 턱이 없는 나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입니다"라고 감격에 겨워 외쳤다. 말없이 따뜻한 맥주만 마시던 콜베르크 할아버지가 한마디 했다. "나치 시대에 독일 사람들도 그랬어." 아직도 그 말이 잊히지 않는다.
 
올림픽 시즌이다. 그냥 선수들의 선전을 응원하며 즐기자.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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