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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현의 만인보로 읽는 한국사-33화)그 시절 ‘한가위’와 오늘
“달 중천에 떠 / 묵은 세상 보내는 맛이라니”
2016-09-12 06:00:00 2016-09-18 12:35:04
추석을 맞아 ‘추석-귀성’ 전시(9월 8일~10월 9일)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1960년대부터 시기별 귀성 모습과 추석을 보내는 시민들의 다양한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이른바 ‘추석문화 변천사’인 셈이다. 고대의 문헌들을 참조해 유추한다면, 추석의 전신과 지금의 명절은 그 오랜 역사만큼이나 변모해 왔을 것이나 흥겨운 잔치의 성격은 여전하다. 그러나 최근 몇십 년에 국한해 말한다면 그 잔치를 위한 갖가지 양상들도 여전해서, 예전의 암표상은 이제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웃돈을 받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가배(嘉俳/嘉排)’ 그리고 여성
추석의 기원에 대해서는 명확한 문헌이 없어 논란이 많지만, 현재까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설(說)은 추석의 다른 명칭으로 간주되는 ‘가배’(가위)에 대해 설명한 <삼국사기>, 신라의 8월 15일 축제를 언급한 중국 문헌 <수서(隋書)>, <구당서(舊唐書)>, <신당서>의 ‘동이열전(東夷列傳)’ 신라조에 근거한 주장이다. 추석과 중추절이 가배와 같은지 다른지, 추석의 유래가 무엇인지에 대한 학계의 논의들은 다양하지만 이 지면에서 다룰 수 있는 주제가 아니기에, 일단 가배를 설명한 <삼국사기> 권1, 신라본기1 유리이사금(儒理尼師今) 9년(서기 32년)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러하다. 신라 6부의 여성들을 둘로 나누어 왕의 딸 두 사람이 각 편을 거느리고 7월 16일부터 8월 15일까지 매일 아침부터 밤 10시경까지 길쌈내기를 해 진 편이 술과 음식을 차려서 이긴 편에게 대접하였다. 이때 노래와 춤, 온갖 놀이를 즐겼는데 이를 ‘가배’라 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수서>에는 신라가 8월 15일에 풍악을 베풀고 관인(官人)들로 하여금 활을 쏘게 해 말과 베를 상으로 주었다고 되어 있다(<수서> 권81, 열전46 동이 신라).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가배가 ‘길쌈’이라는 여성들의 노동과 이를 기반으로 한 놀이(축제)문화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반면, 다른 쪽에서는 남성들의 활쏘기 경연이 열려―어쩌면 이 길쌈대회의 결과물일 수도 있는―베를 상으로 준다. 한 연구자는 가배가 중국의 중추절과는 다른 것으로, 여성들의 축제이자 여사제(왕의 두 딸)가 6부 여성들과 함께 방적을 주관하는 여신에게 직조물을 봉헌하는 일종의 제례의식이라는 흥미로운 주장을 하고 있다(윤성재, “신라 가배(嘉排)와 여성 축제”, <역사와 현실>, (87), 2013.3, 338-358. 저자는 이 제례의식을 김수로왕에게 조상 제사를 지내던 가락국의 전통과 연관시키고 있다).
 
‘추수감사절’로 여기기에는 이른 날짜인 음력 8월 15일이 고대사회에서는 길쌈을 끝내야 했던 시기라는 점, 비록 길쌈을 끝내고 벌인 당시의 잔치와 제사는 없어졌으나 이 풍속이 ‘영남풍속’이라는 호칭으로 민간에 전해지고 근래까지도 ‘두레삼’ 같은 형식으로 농촌부녀자들에게 남아 있었다는 점은 흥미로운 일이다(앞의 글).
 
영오길쌈놀이. 사진/뉴시스
 
<만인보>가 그리는 1940년대 일제강점기의 추석 모습에는 길쌈 후 잔치를 즐기는 아낙네들은 없으나 여성들끼리 놀이를 즐기는 풍경은 종종 등장한다. “추석이 지나도 / 추석”인지라 “일은 자꾸 밀리는데 / 좀처럼 일에 손이 가지 않”아 “추석 사흘째 / 연순네 탱자나무 울타리 안에서 / 둥근 멍석 펴 윷판이 벌어”지고 “동네 아낙네 시악시들 / 동네 치마 동포들 / 모야 / 개야 / 하고 흥”겹다(‘상렬이 각시’, 4권).
 
8월 한가위 뒤 사흘까지는
게으름뱅이들 핑계 좋아
누가 밭에 가나
누가 논에 가나
누가 일밖에 없는 데 가나
그토록 둥근 보름달
열이렛날 되는 것 절통한데
이런 때라
마을 젊은 아낙들
그 지지배배들 일손 잊고
널뛰고
개야 걸이야
큰 소리 내며 윷 노는데
미제 방죽가 널순이
널 잘 뛰어
옥순인가 길순인가가
널순이로 되어
그년 널뛰어
붉은 댕기 내두르며 치솟을 때
그년 널뛰어
치솟았다 내려올 때
한껏 부푼 치마폭 바람 기뻐라
 
< … >
(‘널순이’, 7권)
 
귀성길, 1970~1990년대 풍경
귀성길 풍속도는 한국사회의 산업화가 시작된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특히 산업화, 도시화가 가속화되던 1970~1980년대의 귀성길이 전쟁터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농촌에서 도시로 일하러 온 인구가 그만큼 많았기 때문이고 교통의 발전은 아직 진행 중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해방 전 소년 고은이 보았던 농촌의 한가위는 배고픈 식민지 현실에도 불구하고 느긋한 마음의 여유가 있다.
 
사진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전남 장흥 '강강수월래(1938)', '그네뛰기(1935)', '평양 대동강 뱃놀이'(1937), '널뛰기(1930)이다. 사진/울주문화원
 
추석 무렵 싸아하니 배 아파오며
서늘할 무렵
< … >
동네 아이들
순한 것들
어디 외서리할 밭도 다 갈아버렸으니
할미산 아랫도리에 올라
비린 생콩 따다가 까먹으며
시장기 때우는데
내일 모레 글피가 벌써 보름날이라
상복씨 자전거에
개다리소반 바닥만한 홍어 한 마리
질질 달고 와
그놈을 마루 밑 토방 구석에 던져둔다
하루이틀쯤 써금써금해져서
그놈 쪄
제사상에 놓을 것 따로 두고
술안주 하면
조상도 조상이지만
우선 산 사람 입에 천신한다
아무리 이마빡 피 한 방울 안 나는 상복씨지만
마침 빌린 연장 가지고 온
사촌 상만이 앉혀
찐 홍어 두어 점에
술 한잔 큰 인심 쓴다
이 강산 아름다운지고 살 만한지고
(‘홍어 한 마리’, 2권)
 
이로부터 30년 후, 도시로 온 농촌 이주민들의 1970년대 삶에는 추석 연휴가 따로 없었기 때문에 주말을 이용하거나 일부러 휴가를 내어 고향에 가야 했고 대부분 기차를 이용해야 했는데, 정원 87명의 3등 객차에 2백 명 이상이 타고 짐을 얹는 선반 위에도 승객들이 올라갈 정도였다고 하니 과연 ‘귀성전쟁’이라 할만하다. 1986년 추석 다음날이 휴일로 지정되고 1989년에는 추석 전날이 휴일로 지정되어 연휴는 현재와 같이 3일이 되었다. 대신 모두가 동시에 이동하는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된다. 서울역에는 기차 암표상들뿐만 아니라 전세버스들도 주차단속 경찰에게 뺏기지 않게 아예 번호판을 떼어놓고 웃돈을 받아 승객을 태우는 영업을 했다 하니, 이도 ‘그 시절 한가위 풍경’이 아니랴.
 
1990년대는 자가용 보유자가 많아져 귀성길 고속도로 정체 현상이라는 신풍속도가 등장한다. 서울~광주 간 4시간 걸리던 이동거리가 18시간 걸린다는 보도가 나오던 시절, 국민들은 거북이가 기어가는 고속도로 풍경을 뉴스에서 보거나 현장에서 보곤 했다. 이제 우리는 2013년에 도입되고 2014년에 처음 적용된 ‘대체휴일제’ 덕분에―물론 모두가 이 제도의 적용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좀 더 여유 있는 연휴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1인 가구’의 증가가 가져온 명절 풍속도의 변화야 부언할 필요가 있으랴.
 
시민들이 1972년 추석을 맞아 밤 늦은 시간까지 귀성을 위해 줄을 서고 있다.사진/국가기록원 제공
 
“솔잎 향기 살아 뛰놀”지 못하여도
지난 8월 17일 오전 6시 추석 기차표 온라인 예매가 시작되자 4만여 명의 접속자가 몰려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고 한다. 명절증후군이 두려운 주부들도 많고 ‘나 홀로 집에’ 쓸쓸히 혹은 기꺼이 머무르게 될 이들도 있겠으나, 추석 전날인 14일 특정 시간대의 기차표가 5분 만에 온라인으로 매진되고 전석이 한 시간도 채 안 돼 모두 판매될 정도로 고향에 가고 싶은 혹은 가야 할 이들도 여전히 많다. 이들의 마음과 상관없이 올해도 어김없이 들려오는 추석 전후 온라인 사기 소식에 마음이 씁쓸해진다면, “늘 물 나오는 무덤 / 임자 없는 무덤 두 개 / < … > / 머슴이라 주인네 일 틈 내어 / 쉴 참 내어 얼른 깎아”주는 대길이 아저씨(‘벌초’, 2권)를 생각해 볼 일이다. 혹은, “어른은 20전 / 아이는 10전 / 돈 없으면 외상인데 / 외상이야 받아도 그만 / 안 받아도 그만”으로 머리를 깍아주는 천서방을 기억해 볼 일이다.
 
이발기계 한 틀 있어
귀 빠졌으나
제깡재깡 한 틀 있어
새말 구석말 사람들
개사리사람들 머리 다 깎아주는 천서방
한가위 가까워오면
미제 용둔까지 논길 건너와
머리 깎아주고
원당리로 넘어가 머리 깎아주고
8월 열사흘 나흘에야
새말로 돌아가
제 마을 사람들 머리 깎아주고
 
< … >
한가위 아침
증조할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조실부모 자식으로
제사상 차려
제사 지내고 나면
제사상 한쪽에 이발기계 놓아두고
 
거기다 큰절 하나 바친다
 
새말 뒷산 칙칙한 솔밭 올라
한가위 꼬까저고리 입은 아이들 노는 것
소나무 사이로 바라본다
무엇이 그리 좋은지
혼자 실실 웃음 흘리며
 
< … >
(‘천서방’, 6권)
 
2016년의 한가위인지라, 하여 세월만큼 변화된 조건인지라, 함께 맞이하든 혼자 맞이하든, 만든 것이든 산 것이든 “솔잎 향기 살아 뛰놀”지 못하는 송편이라도 한 입 베어 물고 두둥실 뜬 달을 보며 “묵은 세상 보내는 맛”을 느껴보는 것도 괜찮을 일이다.
 
한가위 전날 밤
 
열나흗날도 보름달 다 되어
뚱글어
재순네 툇마루
송편 접는데
재순이 뒷산에 올라가
달빛 먹은 솔잎 훑어다
한 바가지 물에 헹구어낼 때
그 솔잎 향기 살아 뛰놀았다
송편 찌는 솥에 깔아
내일 아침 제사에 올리기 전
그렇지 산 사람이 으뜸이지
한밤중 이슬 한번 풍년인데
송편 맛이라니
< … >
달 중천에 떠
묵은 세상 보내는 맛이라니
(‘솔잎 향기’, 2권)
 
 
<사진 = 고은재단>
 
박성현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 역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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