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불법?" 김영란법 판별 앱 '봇물'
더치페이·경조사 앱도 등장…공직사회·기업 혼란 속 몸사리기
입력 : 2016-09-28 17:02:02 수정 : 2016-09-28 17:45:53
[뉴스토마토 윤석진기자] #. 정부부처 과장인 A씨는 언론사 기자와 점심 약속을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부정 청탁 및 금품 수수를 금지하는 '김영란법'이 시행된 탓에 이전처럼 마음 편히 만날 수가 없게 됐다. 한 끼 식사비는 3만원을 넘으면 안 되고, 행사나 광고 요청과 같이 통상적인 업무와 무관한 만남은 피해야 하기에 신경 써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다. 마음같아서는 약속을 취소하고 싶지만, 이미 한차례 연기했던 터라 미안한 마음에 그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결국, A씨는 기관 내 감사팀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고 불법성 여부를 물었다. 감사팀은 원활한 직무수행에 필요한 사교활동은 허용되며, 이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처벌 대상이 된다고 조언했다. 기대와는 달리 원론적인 답변이 돌아와 A씨의 답답함은 더욱 커졌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VIP 고객이나 언론사를 상대하는 금융기관들은 밥 한 번 잘못 대접했다가 본보기로 걸릴 수 있다는 불안감에 점심·저녁 약속 자체를 취소하는 등 몸을 사리는 모양새다.
 
음식 3만원·선물 5만 원·경조사비 10만 원 등 김영란법이 제시한 상한선만 지키면 문제 될 것이 없지만, 해석하기에 따라 부패한 공무원으로 낙인찍힐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감사과에 물어보니 통상적인 업무와 연관이 있는 약속은 김영란법 제재 대상이 아니라고 하지만, 꺼림칙해서 아예 점심 약속을 취소했다"며 "나뿐 아니라 다른 직원들도 약속을 안 잡거나 있던 것도 취소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같은 상황을 놓고도 로펌에 따라 합법과 불법이 나뉘는 등 서로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어 딱히 물어볼 만한 곳도 없는 실정이다.
 
법의 적용 범위가 워낙 방대한 데다 전례가 없는 만큼 판사의 판결이 나와봐야 불법성을 판단할 수 있을 것이란 우려감도 커졌다.
 
9월28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이 시행된 가운데 전북 전주시 효자동
한 음식점에서 식사를 마친 공무원들이 각자 카드와 현금을 계산대 위에 내밀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러다 보니 누구를 만나더라도 밥값을 제 각각 내는 분위기다. 은행권 관계자는 "누가 말하지 않았는 데도, 밥값을 각자 알아서 냈다"라며 "후식으로 먹은 커피도 각자 계산했다. 만난 사람이 김영란법 대상자가 아닌 데도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김영란법을 둘러싼 우려가 커지자 일부 은행은 내부 임직원들을 위한 앱을 개발하기도 했다.
 
신한은행은 대고객 서비스를 선보이기에 앞서, 김영란법에 관한 내부 직원들의 이해도를 높이고자 임직원용 앱인 '내 손안에 청탁 금지법'을 만들어서 지난 27일부터 사용하는 중이다.
 
이 앱은 상대가 어느 단체에 속해있는지, 얼마짜리 선물인지 등 해당 직원이 처한 상황에 따라 불법 여부를 판가름해 주고, 다양한 사례도 제시해 준다.
 
은행 모바일 앱의 더치페이 기능을 찾는 공직자들도 눈에 띈다. 한명 씩 카드결제를 하는 것보다 시간이 절약되고 식당 주인의 눈총도 피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신세대 공직자들은 '김밥'이나 '식권대장'과 같이 기존 은행이 아닌 벤처 기업이 내놓은 앱을 이용하기도 한다.
 
경조사비 기능을 가미한 은행 서비스도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민은행은 지난 6월에 출시한 '리브'의 더치페이 기능에 김영란법 대상자들을 위한 추가 서비스를 개발 중이다. 리브 경조사 서비스 기능에 김영란법 대상자임을 등록해 두면 양해의 메시지와 함께 자동으로 10만원 이상을 송금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기능을 첨가한다는 것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더치페이나 경조사를 챙겨주는 앱이 나오는 것을 보면 김연란법의 파급력을 알 수 있다"며 "법 해석을 과도하게 해 우려감이 커진 측면이 있지만, 잘만 정착되면 부정, 부패 관행을 씻어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윤석진 기자 ddagu@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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