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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의 역습)‘알박기’에 속수무책 민주당…수권능력에도 의문부호
당 내부에서도 불만 “책임있는 수권정당으로서 분명한 목소리 내야”
2017-03-09 18:08:20 2017-03-09 18:08:20
[뉴스토마토 이성휘기자] 한·미 양국 정부가 한반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도입을 강행하고 이에 반발한 중국의 거센 보복조치로 관련 업계의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다. 그러나 정권교체를 부르짖는 제1당 더불어민주당이 정부여당의 사드 배치 강행의 문제점을 충분히 인식하면서도, 미온적인 태도만 고수해 과연 차기 정권을 책임질 수 있는 수권세력의 자격이 있는 것인지 의문부호가 붙는다.
 
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 정책조정회의에서 “새롭게 미군기지를 한국 땅에 만들 때는 SOFA(한미 주둔군지위협정)에 따라 국회 비준을 받도록 돼 있다”며 “한국 땅에 미군 기지를 (새로) 만들면서 국회 비준을 받지 않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만일 국회의 비준을 받지 않게 되면 국회의 비준권을 침해하는 권한 침해”라며 “행정부가 협정에 분명히 나와 있는 비준 권한을 일방적으로 침해해서는 안 된다”며 절차적 문제를 지적했다. 민주당은 전날 의원총회에서 ‘사드 비준동의 추진’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우 원내대표는 기자들과의 차담회에서 “사드 비준을 당론으로는 처음 결정했다. 한 단계 더 진전된 내용”이라고 자평했다.
 
그러나 정부의 사드 배치가 사실상 시작된 상황에서 이러한 민주당의 태도는 ‘눈가리고 아웅’식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회 비준동의에는 정부의 ‘비준 동의안 제출’이 선행돼야 한다. 그렇지만 사드 배치를 강행하는 정부가 비준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한·미 양국은 지난 6일 오후 사드 배치 부지가 조성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사대 2기 등 사드 일부를 국내에 반입했다. 지난달 27일 롯데 이사회가 성주 골프장을 사드 부지로 제공하기로 의결한지 불과 1주일만이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은 8일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장교 합동 임관식’ 축사에서 “사드 배치를 정상적으로 추진해 북의 핵 도발에 대비하면서 사이버 공격, 테러 위협 등에 대한 대응역량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며 강행 의지를 분명히 했다.
 
야권에서는 이러한 정부의 태도를 ‘황교안의 알박기’로 규정하고 그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고 있다. 조기 대선 정국에서 안보 프레임으로 보수층을 결집시키고, 차기 정부에서 관련 논의조차 하지 못하도록 기정사실화를 꾀하고 있다는 것이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애초 올해 12월 예상됐던 사드 배치를 급작스럽게 당긴 것은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둔 대선용 배치”라며 “차기정권에서 논의조차 못하게 만들겠다는 알박기 배치”라고 비판했다. 또 “사드에 대해서 국민을 속이고 있다”며 “마치 북한의 핵과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주는 만능무기인 것처럼 페이크뉴스를 생산하고 있지만 국방당국 스스로 사드는 수도권 방어조차 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했다”고 강조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도 같은 날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을 갖고 “퇴출 위기에 내몰린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 안보를 볼모로 한 마지막 정치 도박을 자행한 것”이라며 “안보와 경제 위기를 가중시켜 선거판을 뒤집으려는 북풍공작”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 6일 당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언급하며 “사드 배치 반대를 계속한다면 이적 행위, 종북 행위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야당 의원 44명이 사드 배치 결정과 관련한 정보 공개와 국회 보고절차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발의했다”며 “야당의 이런 무책임한 행태는 우리 안보의 핵심적인 기밀을 유출하는 이적, 종북 행위가 될 수 있다”면서 색깔론을 제기했다.
 
결국 민주당이 정부여당의 사드 조기 배치 추진이 가진 문제점을 충분히 인식하면서도 명확한 반대의견을 내지 않는 것은 대선을 앞둔 일종의 ‘부자 몸조심’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선거 국면에서 굳이 안보이슈를 건드려 보수층의 공격을 유도하지 않겠다는 속내다.
 
그러나 민주당의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이름의 침묵은 중국의 보복행위를 오히려 강하게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차기 집권이 유력한 민주당이 사드 반대 입장을 확실하게 밝히면, 중국 정부도 일단 기다려줄 수도 있다”며 “그런데 계속 보복행위를 하는데도 민주당이 전략적 모호성만 강조하면 보복 강도를 더 높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내에서도 당이 분명한 입장을 내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중국통’ 김영호 의원은 의총에서 “당 지도부가 사드 문제를 차기 정권으로 미루자, 아니면 국회 동의절차를 밟자는 식으로 통일된 의견이 없다”며 “제1당으로서 국민 신뢰를 받을 수 없다”고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현권 의원도 “당이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개념을 더 이상 갖고 갈 수 없게 됐다. 이미 황 권한대행 체제에서 사드 문제로 인해 중국 등 인근 국가와 심각한 갈등양상으로 치닫고 있다”며 “수권정당을 지향하는 정당으로 보다 분명하고 책임있는 입장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에 따른 중국의 경제 보복이 이어지며 중국인 관광객이 감소하고 있는 가운데 9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거리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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