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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한우성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해외동포와 상호존중·협력에서 '평화통일' 길 찾겠다"
재외동포 출신 첫 재단이사장…한국계 미 전쟁영웅 '김영옥 평전' 쓴 언론인
"임시정부도 중·러·미 동포들이 주도…한국현대사서 중추 역할"
2018-01-01 16:48:51 2018-01-01 16:48:51
[뉴스토마토 최한영 기자] 재외동포재단은 ‘재외동포들이 민족적 유대감을 유지하면서, 거주국 안에서 그 사회의 모범적인 구성원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목적으로 지난 1997년 설립됐다. 이후 동포단체 보조금 지원 등의 각종 교류증진·권익신장활동 지원사업과 한글학교 육성사업, 한상(韓商)네트워크 운영 등에 주력해왔지만, 일각에서는 이사장 자리에 주로 외교부 출신 전직 고위관료가 임명되어 온 점을 놓고 비판도 나왔다.
 
한우성 이사장은 지난해 10월 재외동포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재외동포재단 이사장(9대)에 취임했다. 그는 “인생의 절반씩을 국내·외(한국 31년·미국 30년)에서 살았다”며 “동포들의 시각을 정부 정책에 반영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미로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발생했던 양민학살 사건을 취재·보도해 퓰리처상 후보에까지 올랐던 재미 언론인이자 ‘미국 역사상 최고의 전쟁영웅 16인’에 선정된 고 김영옥 미 육군 대령을 동포사회와 국내에 소개한 작가다. 지난해 6월 문재인 대통령 방미 첫 일정이었던 장진호전투 기념비 참배에도 동석했다.
 
그는 지금까지 재단이 수행해왔던 사업은 물론 변화된 환경에 따라 요구되는 사업들을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각오다. 내국인과 해외동포 사이의 간극도 좁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두 집단 사이의 상호이해와 존중·협력이 이뤄지면 시대적 과제인 평화통일로 가는 시너지 효과가 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가운데)이 지난해 10월28일 열린 세계한상대회 주요참석자 간담회를 위해 한우성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왼쪽 첫 번째) 등과 청와대 인왕실로 입장하고 있다. 사진/재외동포재단
 
가족 이민과정서 '두 차례 입대'
 
한 이사장의 인생에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투영돼있다. 그의 말과 글을 따라가다 보면 1950년 한국전쟁과 1992년 로스앤젤레스(LA) 흑인 폭동, 약소국 국민으로서 겪어야 했던 애환 등을 마주하게 된다.
 
그는 대학 졸업 후인 1987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처음부터 이민을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대학 졸업 후 심리학 공부를 위해 유학을 준비했다. 그런데 미국 대사관에서 ‘유학간다고 해놓고 미국에 주저앉는 것 아니냐’며 유학비자를 내주지 않았다.” 당시 한국의 위상이 지금과 다르다 보니 생긴 일이었다. 그는 “유학에 필요한 토플(TOEFL)·GRE 점수도 다 준비했는데 서류 제일 위에 있는 ‘미국에 가면 돌아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는 란에 체크가 되자 아무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병역을 면탈받기 위한 이른바 ‘도피성 유학’도 아니었다. 한 이사장은 유학준비 전 이미 군 생활을 두 번이나 한 진기록을 갖고 있다. “10여년 전(1970년대 중반) 가족들이 첫 번째 이민을 준비하고 있을 때 입대했다. 당시 우리 이민법은 ‘전 가족 해외이민의 경우 병역을 면제한다’는 제도가 있었음에도 군대에 가겠다고 한거다. 헌법에서 병역의 의무를 정하고 있고 병역법의 ‘신체 건강한 사람은 군대에 간다’는 구절을 떠올리며, 이민을 가더라도 최소한의 의무는 다하자는 생각에 지원했다.”
 
그런데 당시 정부의 이민장려정책으로 이민수속이 빨리 진행되면서 2개월의 훈련과정을 마치는 것으로 첫 번째 군생활은 끝이 났다. 이후 선친의 건강문제로 이민이 늦어지자 ‘남들은 3년 하는 군생활을 2개월 만에 마치는 것은 아니다’는 생각에 국방부를 찾아가 재입대 청원을 했고, 두 번째 군생활은 남들처럼 만기 제대로 마쳤다. 그는 “유학준비를 할 때 ‘먼저 이민을 가있던 부모님이 미국 시민권자다. 이민 신청을 하면 별도 쿼터 없이도 갈 수 있다. 이럴거면 (가족들이 이민갈 때 따라갔지) 내 발로 군대를 두 번 갔겠냐’며 따지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LA 흑인폭동’을 겪고 김영옥 평전을 쓰다
 
우여곡절 끝에 이뤄진 미국행이었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이민생활의 애환을 묻자 한 이사장은 LA 흑인폭동 이야기를 꺼냈다. “흑백갈등이 폭발하는 와중에, 속죄양으로 재미동포들이 희생양이 됐다. 가족들도 자영업을 하고 있었기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 것도 현장에서 지켜봤다. 재미동포들의 지위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당시 경험은 책 ‘아름다운 영웅 김영옥’을 집필하는 계기 중 하나가 됐다. 한인 이민자 2세인 고 김영옥 미군 대령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전선에서의 활약으로 프랑스 최고훈장(레지옹 도뇌르)을 비롯한 각종 훈장을 받은 인물이다. 전쟁이 끝난 후 전역했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재입대해 유색인으로서는 미군 역사상 최초로 야전대대장에 임명됐다. 미군 전투교본을 다시 쓰게 할 정도의 뛰어난 능력을 바탕으로 ‘미국 역사상 최고의 전쟁영웅 16인’에도 선정됐다.
 
한 이사장은 김 대령의 일대기를 쓴 이유를 서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LA폭동 당시 미국 주류언론은 한국계 이민자들을 봉사에 무관심하고 뱃속 채우기에 급급한 사람들로 부각했다. 미국 언론이 그려대는 한국계 이미지가 전체적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한우성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이 인터뷰 도중 책 '아름다운 영웅 김영옥'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김영택 기자
 
책이 일으킨 반향은 컸다. 책이 나오고 4년 후인 2009년 LA에 ‘김영옥 중학교’가 개교했다. 한 이사장은 “재미동포 중 유일하게 미국 내 학교에 이름이 붙은 인물”이라며 “한인 지위향상 측면에서 이보다 이상 가는 일은 없다. 미국인들이 김 대령은 물론 이 인물을 배출한 커뮤니티를 존경한다는 증거”라고 했다. 2011~2014년에는 국내 초등학교 5학년 국어 교과서에 김 대령의 이야기가 실렸다. 문 대통령도 야인 시절이던 2016년 6월 네팔 트래킹 중 페이스북에 이 책을 소개하고 당시 박근혜정부의 국방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 대통령과의 인연은 다시 지난해 6월 문 대통령 방미 당시 장진호전투 기념비 참배행사 초청으로 이어졌다. 한 이사장은 문 대통령의 연설 중 ‘흥남 철수’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한국전쟁에 미군이 참전한데 대한 감사 정도의 발언이 나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문 대통령) 개인사가 나오기 시작하는거다. 미국 사람들이 보기에 ‘당신들이 목숨바쳐 지켜준 전투로 인해 탈출한 피난민의 자식이 나다. 그 때의 희생이 바탕이 되어 내가 대한민국 대통령이 됐다’는 말에 눈물 안흘릴 사람이 어디 있었겠나.”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6월28일(현지시간) 미국 콴티코 미 해병대 국립박물관 앞 공원에 설립된 장진호전투 기념비에서 헌화를 마친 후 한우성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왼쪽 첫 번째)을 비롯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변화된 환경 반영한 새 사업 필요”
 
취임 2개월을 조금 넘긴 한 이사장은 그간 재외동포재단이 해왔던 사업을 계승·발전시키는 것과 함께 변화된 환경에 따라 필요한 일을 해야 할 필요성도 밝혔다. 대표적으로 베트남 여성들이 한국에 시집와서 아이를 낳은 후 결혼 실패로 고국으로 돌아가는 일이 잦은 사회적 문제를 지적했다.
 
“아이들의 90% 정도가 한국 국적을 유지하는데 베트남어·한국어 모두에 서툰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이들이 베트남에서 적응하지 못하다 보면 결국 한·베트남 관계를 흔들 수 있는 시한폭탄이 될 수도 있다. 이들을 돌봐주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이야 양국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향후 이 문제로 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다고 본다.” 필리핀 등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그는 우리 정부의 ‘신남방정책’ 추진을 위해서도 재외동포재단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와 함께 내국인들과 동포 사이의 상호이해를 높여야 한다는 점도 여러차례 강조했다. 그는 내년 4월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임을 언급하면서 “임시정부는 재중·재러·재미동포들이 주축으로 힘을 합쳐 만든 것이다. 일제강점기 암울한 시대를 극복하고 20세기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사람들이 재외동포”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일부 내국인들 사이에 ‘재외동포들은 우리와는 관계 없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있다”면서 “동포사회가 어떻게 시작됐고 오늘날 대한민국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동포들이 기여한 것이 무엇인지를 (내국인들이) 너무 모른다”고 답답해했다. 그러면서 “내국인과 동포사회의 상호이해·존중과 협력이 이뤄지면 시대적 과제인 평화통일로 가는 시너지가 나올 것이다. 그렇게 가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우성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이 재단 사무실 내 세계지도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김영택 기자
 
최한영 기자 visionch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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