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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포스코)청암 박태준이 그린 포항과 포스코의 맞손
(1)‘제철보국’의 목적은 복지국가 건설
2018-10-06 16:42:28 2018-10-07 13:33:30
[뉴스토마토 채명석 기자] 포스코라는 기업이 있다. 포스코는 제선과 제강 및 압연재의 생산과 판매에 주력하고 있다.
 
세계철강협회(WSA)가 발표한 2017년말 기준 포스코의 조강생산량은 4219만톤으로, 기준 국내 최대, 세계 5위의 철강회사다. 생산성과 수익성은 세계 최고 기업으로 손꼽히는데, 세계적인 철강전문 분석기관 월드 스틸 다이나믹스(WSD, World Steel Dynamics)가 발표하는 세계 철강사 경쟁력 평가에서 포스코는 지난 2010년부터 올해까지 9년 연속으로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사’로 선정됐다.
 
1968년 4월1일 설립된 포스코는 당시 사명은 정부 출자 기업인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였다가 2000년 10월에 민영화됐고, 2002년 3월15일에는 현재의 사명으로 바뀌었다. 포스코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하에서 이윤과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국내의 다른 재벌 기업을 평가하는 잣대로 포철을 똑같이 이해해서는 안 되는 나름의 이유도 있다.
 
기업의 기(企)는 사람(人)이 멈추어서(止) 생각해 본다는 뜻이다. 곧, 기업이란 돈을 왜 버는가 혹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라고 하는 근원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기업 문화라는 개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일반적으로 기업 문화는 ▲‘생산 활동 요소들의 짜임새’를 말하는 생산 체계(Production System) ▲‘기업 활동 혹인 생산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여러 가지 조직의 틀’(Organization System) ▲‘조직에 힘과 혼을 불어 넣고 그 성원들에게 삶의 의미를 주는’ 가치 체계(Value System)로 구성된다. 기업 문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치 체계인데, 왜냐하면 이를 통해 ‘기업의 성원들은 보다 넓은 국가와 사회의 성원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고 기업에 더욱 충성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포스코의 경우, 이러한 의미의 기업 문화는 상대적으로 매우 뚜렷한 편이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전경. 사진/포스코
 
직원들 제철보국 정신 공감대 높아
포스코의 초대 최고경영자(CEO)로서 1992년까지 25년 동안 포스코의 사실상 대부였던 청암 박태준 명예회장은 “기업은 기업 나름의 정신이 있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었다. “우리 제철소는 철을 만드는 공장이라는 단순한 의미를 초월해서 국가적 명제와 관계되는 높은 차원의 뜻을 갖고 있다”고 말한 것도 같은 발상이다. 청암이 포스코의 창업정신 가운데 최상위의 가치로 제시한 것은 ‘제철보국(製鐵保國)’이었다. 그리고 “제철보국의 목적은 복지국가 건설”이라고 설명했다. 중요한 사실은 제철보국이라는 기업의 가치 체계가 최고경영자의 단순한 구두선(口頭禪)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에 대한 포스코 종업원들의 공감대가 높게 형성되어 있다는 사실이 더욱 의미가 크다. 지난 1998년,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소가 포스코 포항제철소 직원 1000명, 광양제철소 직원 300명 등 총 13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제철보국이라는 가치에 대한 공감도는 5점 만점에 평균 3.89점으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조국과 기업에 대한 충성심을 전제로 하는 포스코의 독특한 기업 문화는 포스코의 성공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불가결한 요소다.
 
제철보국이라는 기업 문화에서 보듯 포스코는 궁극적으로 국가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사명감이 특히 강한 기업이다. 산업화 초기 한국 정부는 다른 산업 분야는 민간 재벌에 맡기면서도 유독 철강산업은 국영 기업으로 직접 육성했다. 그런 만큼 포스코의 역사 자체는 일개 기업사가 아니라 한국 경제의 성장이라는 거시적인 틀 속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후발 공업 국가에서 이룩한 대표적 성공 기업 가운데 하나로 포스코를 꼽은 앨리스 암스텐 미국 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 정치경제학과 교수는 포스코가 한국적 공공정책의 축소판이라고 주장했다. 두 가지 측면에서 그랬다는 것인데, 첫째 양질의 철강제품을 저가로 공급했다는 점에서 포스코는 민간 기업에 대한 지원자였고, 둘째 경영 관리의 모범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포스코는 민간 기업의 휸육관이었다고 말한다.
 
국가발전 이바지, 지방도시서 이뤄내
<뉴스토마토>가 ‘포항·포스코’ 연재에서 주목한 점은 이처럼 기업을 통해 국가 발전의 이바지하는 일이 다름 아닌 지방 도시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포스코가 입지하면서 포항은 한국의 대표적 기업 도시 혹은 산업 도시로 자신의 면모를 일신했다. 광양제철소 역시 동광양이라는 호남 제일의 공업 도시를 탄생시켰다. 포항과 광양은 한국 현대사가 경험한 수도권 집중화의 대세 속에 예외적으로 발전을 경험한 지방 도시들이며, 성장의 동력은 바로 포스코였다. 청암이 성취한 업적으로 기업 곧, 포스코의 창업과 대학, 즉 포항공과대학교(포스텍)의 개교가 가장 핵심을 이룬다. 하지만 부차적으로 그는 한국의 도시사 혹은 도시 발전에 있어서도 의미 있는 족적을 남겼다.
 
오늘날 한국의 지방 도시는 대개 고사중이다. 한국의 산업화가 극심함 수도권 집중을 동반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포스코가 추구한 제철보국의 지역적 거점은 오히려 지방이었다. 물론 포스코가 포항과 광양의 발전을 위해 그곳에 자리잡은 것은 아니다. 원천적인 수준에서 기업의 논리가 개재되고 자본의 동기가 작동했다는 사실은 결코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청암은 우리 시대의 도시 및 지역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혜안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첫째, 그는 지방 분권과 지역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서 지방화 시대를 일찍이 예견했다. 이와 관련, 청암은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지방 분권과 지역 문화 진흥이 동반되어야 하는데, 해당 지역의 대기업들이 메세나 정신 차원에서 나서야 한다. 서울에만 문화인이 살아야 하나?”
 
둘째, 그는 지역 간 균형 발전을 말로써 주장한 것이 아니라 몸소 실천했다. 광양제철소와 호남 입지에는 이런 측면이 없지 않았다. 동광양시는 제철소가 들어선 후 곧바로 호남 제일의 공업 도시로 성장했다. 제2제철소가 광양에 설립된 과정 자체는 비정치적이고 합리적이었지만 청암은 그것이 기업을 통한 영호남 화합의 계기가 되기를 바랐다. 아닌 게 아니라 제2제철소 부지로 광양이 결정된 이후 1980년 5월의 선혈이 마르지 않은 전남 도청 앞에는 오랜만에 경축 아치가 세워졌다.
 
셋째, 그는 최근 들어 시대적 화두가 되어 있는 도시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관련하여 성공적인 기업 도시 모델을 포항을 통해 제시했다. 기업도시(Company City 혹은 Enterprise City)는 산업 내지 공업 도시(Industrial City)의 한 유형으로서 민간 기업이 토지 수용권 등을 갖고 주도적으로 개발하는 자급자족적 복합 기능 도시를 말한다. 엄밀하게 말해 기업 도시란 최종 수요자와 개발 주체가 동일한 기업 자족 도시(Company Self-Sufficient City)다. 대표적으로 에릭슨의 주도로 만들어진 스웨덴의 시스타 사이언스 시티와 토요타자동차의 주도로 건설된 토요타시가 기업 도시의 전형으로 지적된다. 엄밀하게 말해 한국에서는 포항(포스코)과 울산(현대자동차), 화성(삼성전자) 등이 기업 도시의 성격을 갖고 있을 뿐, 이들이 처음부터 기업 도시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지난 2004년에 ‘민간 복합 도시(기업 도시) 건설 특별법’이 제정되었을 정도로 기업 도시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기업의 투자 의욕 고취를 바라던 대기업과 지역 균형 발전을 강조하던 노무현 정부의 뜻이 서로 통한 결과다.
 
청암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청암, 도시에 대한 식견 높아
“공과대학의 도시공학과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무엇보다 우선 철학이나 역사 같은 인문학을 배우는 것이 좋다. 도시를 어디에 세우느냐에 따라 주민의 장래가 결정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시오노 나나미가 한 말이다. 돌이켜 보면 청암은 도시가 무엇인지, 도시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등에 대해 나름의 이해가 있었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어떤 도시를 어떻게 만드냐에 따라 주민의 장래가 결정된다는 점도 잘 알고 있었다. 그에게는 인간과 주거, 도시 등에 관해 나름대로 철학과 역사관, 그리고 인문학이 있었던 셈이다. 현재의 포항, 그리고 광양은 청암에 의해 포스코 입지 이후 도시의 운명이 결정적으로 달라진 곳이다. '포항·포스코' 기획은 청암의 여러 측면 가운데서 도시 건설가로서의 모습을 고찰하는 것이 목적이다.
 
본 기획은 청암 별세후 이듬해인 2012년 발간된 청암 박태준 연구총서에 실린 전상인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의 논문 ‘박태준과 지방, 기업 도시 : 포철과 포항의 병존과 융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발표 시점과 차이가 있는 만큼 수정 가능한 수치는 최근치로 바꿨고, 포스코와 포항시에 관한 자료와 내용도 추가해 진행했다. 올해는 포스코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추후에 언급하겠지만, ‘포스코=포항’이라는 등식이 생기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흘러야 했다. 포스코가 포항시를 키웠지만, 포항 경제의 이질화를 만든 주범 또한 포스코였다는 것이다. 포스코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는 포항시민들은 ‘포스코’ 뒤에 ‘포항’이 명기되는 것에도 분을 참지 못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스코와 포항시는 공존 공생할 수 있는 접점을 찾아 손을 잡았다. 포항시와 포스코가 성장해온 이야기를 통해, 지방도시가 경쟁력을 갖기 위한 조건 및 지역경제와 기업의 공존은 어떻게 이뤄져야 할지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채명석 기자 oricms@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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