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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감몰아주기 규제 피해라"…재계, 계열사 매각·지분 정리 돌입
공정거래법 개정안 11월 정기국회 제출…LG·SK·GS·한화 등 선제적 조치로 리스크 예방
2018-10-09 16:26:01 2018-10-09 16:26:01
[뉴스토마토 왕해나 기자] 재계가 앞다퉈 계열사 매각 및 지분 조정안을 내놓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대폭 강화하면서 관행으로 치부되던 총수일가의 사익편취 경영에 비상등이 켜졌기 때문. 개정안 시행까지는 아직 1년 이상 남았지만 LG와 SK, GS 등은 선제적으로 계열사 및 사업부 매각에 착수했다. 삼성과 현대차, CJ 등도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9일 재계에 따르면 주요 그룹들은 일감몰아주기 규제 포함 가능성이 높은 계열사나 사업부문을 정리하고 총수일가가 보유한 특정 계열사 지분을 정리하기 위해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규제 범위 밖에 있다 해도 추후 문제가 제기될 만한 부문에 대한 처리 방안까지 고심하는 중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향후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받을 계열사나 자회사는 어디인지, 규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3자에 매각할지 아니면 계열사 편입을 시킬지 다양한 시나리오를 놓고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이는 지난 8월 입법예고된 공정거래법 개정안 때문이다. 개정안은 총수일가 지분이 20% 이상인 상장사와 비상장사, 그 회사가 지분을 50% 넘게 보유한 자회사까지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포함시켰다. 기존 ‘총수일가 지분 30% 이상인 상장사와 20% 이상인 비상장사’보다 대상이 대폭 확대됐다. 과징금도 크게 오를뿐더러 일감몰아주기에 관여된 총수일가는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개정안은 오는 11월 정기국회에 제출될 예정으로, 이르면 2020년 시행된다. 기업들이 다급해질 수밖에 없다.
 
 
 
주요 그룹들 중에는 LG와 SK가 가장 발 빠르게 움직였다. LG는 계열사인 서브원의 소모성 자재 구매대행(MRO) 사업을 분할해 지분 일부를 매각하기로 했다. 서브원은 ㈜LG가 지분 100%를 보유 중이며, 구광모 회장 등 총수일가가 ㈜LG 지분 46.7%를 갖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내부거래 비중은 74%에 달한다. 구 회장이 물류계열사 판토스 지분을 매각하기로 한 것도 불필요한 논란을 피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라는 분석이다. 현재 판토스에 대한 구 회장 및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은 19.9%로 개정안이 통과돼도 규제 대상에 해당하지 않지만 이번에 전량 처분했다. LG는 “지배구조와 경영 투명성 제고에 대한 국민의 눈높이에 적극적으로 부응하는 차원에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SK도 관련 계열사 지분 대부분을 처리하고 있다. SK는 SK해운 지분 80~90%를 사모펀드인 한앤컴퍼니에 파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SK해운은 SK㈜가 지분 57.2%를 보유 중으로, 최태원 SK 회장은 SK㈜ 지분 23.4%를 소유하고 있다. 총수일가인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은 지난달 SK D&D 보유지분 23.8% 전량을 SK가스가 보유한 지분 3.5%와 함께 사모펀드에 넘기기로 했다. SK㈜ 100% 자회사인 IT 계열사 SK인포섹은 SK텔레콤의 자회사로 이동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이제 남은 규제 대상으로는 SK㈜가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는 SK임업 정도다.
 
GS는 계열사 건물관리를 해온 엔씨타스를 청산한 데 이어 시스템통합업체인 GS ITM 매각 절차를 밟고 있다. 지난달에는 골프장 등 부동산업과 물류업을 하는 계열사 승산이 윤활유와 폴리플로필렌 운송사업을 매각했다. 한화는 지난해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이 지분을 전량 보유하고 있던 한화S&C를 에이치솔루션과 신설회사 한화S&C로 물적분할해 일감몰아주기를 해소했다. LS는 총수일가가 직접 지배했던 가온전선 지분(37.62%)을 LS전선에 매각했다.  
 
삼성과 현대차, CJ 등은 아직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는 않지만 개정안 통과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내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삼성의 경우 삼성물산의 100% 자회사 삼성웰스토리가 신규 규제 대상에 들었다. 이재용 부회장 등 총수일가의 삼성물산 지분율은 30.9%다. 일각에서는 삼성웰스토리와 호텔신라와의 합병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삼성이 웰스토리를 제3자에게 매각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법망을 피해 계열사에 편입한다 해도 또 다시 총수일가의 사익편취 논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 삼성의 고민이 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지배구조 개편과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현대글로비스와 이노션 등이 규제 대상에 포함되면서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의 지분 조정 방안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총수일가 지분만 44%가 넘는 CJ올리브네트웍스도 지분 조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CJ올리브네트웍스가 기업공개(IPO)를 통해 지분을 줄이거나 물적분할한 후 총수일가의 지분이 없는 계열사에 편입하거나, 외부에 일부 지분을 매각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CJ 관계자는 “개정안에 대한 면밀한 검토 후에 대응 방안이 세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왕해나 기자 haena0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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