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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태의 경제편편)반도체 ‘착시’는 사라지고 ‘공백’은 커진다
2018-11-14 06:00:00 2018-11-14 06:00:00
반도체가 또 하나의 금자탑을 세웠다. 단일 부품으로는 세계 최초로 수출 1000억달러를 돌파했다고 하니 경이적인 실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조선과 자동차 등 다른 제조업과는 큰 대조를 이룬다. 
 
사실 올 들어 자동차와 조선으로부터는 우울한 소식만 들려왔다. 생산과 판매가 모두 부진하고 실업자를 끊임없이 양산하더니 김동연 부총리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을 밀어내고야 말았다. 그래서 반도체의 실적이 더 빛나 보인다. 마치 먹구름 속에 빛나는 한줄기 햇빛 같다. 이럴 때 반도체마저 없었으면 지금 우리 경제의 모습은 어땠을까 생각하면 실로 아찔하다.    
 
그런데 요즘 들어 반도체마저 가격 하락으로 하강국면에 들어섰다는 관측이 쏟아진다. 하나금융연구소의 최근 분석에 따르면 역대 최고 호황이라는 반도체 수출도 가격 효과를 제거하면 부진한 상황이다. 실질적인 수요가 약화됐지만, D램의 가격 상승 덕분에 수출액이 크게 늘어났다는 진단이다.
 
일부 투자은행도 최근 "무역분쟁 심화와 불리한 수급 여건 등으로 2019년 반도체 사이클이 본격적으로 약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SOX)는 지난달 29일 기준으로 월 초 대비 16.8% 낮아졌다. 실제로 한국 반도체의 주력 상품인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도 하락세다. 지난해 4분기 이후 최근까지 D램과 낸드플래시 현물 가격은 25% 이상 떨어졌다. 
 
이렇듯 여기저기서 반도체 시장에 대한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세계 제1의 D램 생산업체인 삼성전자도 3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지난 2년간 공급부족 상황에서 비롯된 호황을 누려왔지만, 최근 시장 심리가 다소 바뀌어 가격이 반전됐다”고 현 분위기를 전했다.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는 가격은 언젠가 내려가게 마련이다. 이제 그런 시기로 진입했다는 것이 공통된 관측이다. 그래서 하이투자증권은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5만5500원에서 5만1000원으로 하향조정했다. 하나금융투자도 7만9000원에서 7만원으로 내렸다.
 
그렇지만 한국 반도체 산업이 자동차나 조선과 같은 운명을 맞이할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앞날을 밝게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삼성전자도 D램 시장이 내년 상반기까지 하강국면에 들어섰다가 하반기에는 다시 수요가 공급을 웃돌 것으로 내다봤다. 
 
장기적으로도 낙관적인 전망이 많다. 특히 최근 일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물결도 이런 낙관적인 전망을 뒷받침한다. 인공지능(AI)과 5G, 자율주행차 등 새로운 산업의 흐름에 따라 메모리반도체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다. 
 
20세기 문명이 석유에 의해 지탱된 ‘석유문명’이라고 한다면, 21세기 문명은 ‘반도체문명’이 될 지도 모른다. 이는 물론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다. 그만큼 반도체는 향후 산업 발전에 있어 핵심적인 부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으로서는 그렇게 중요한 부품의 핵심 생산기지를 보유하고 있으니, 매우 다행스런 일이다.  
 
‘반도체 한국’을 이끌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앞으로도 우위를 지키기 위해 투자의 고삐를 당기고 있다. 오는 2020년까지 국내외에 최소 5개 반도체 생산라인을 추가할 계획이다. 중국이 ‘반도체굴기’를 외치며 투자를 서두르고 있으니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것이다. 
 
문제는 한국경제에 있어 반도체로 인한 착시가 심하다는 것이다. 올해 처음으로 수출 6000억달러 돌파가 예상되지만, 절대적 비중은 반도체가 차지한다. 지난 9월까지 수출액 가운데 반도체 하나가 21%나 차지했다. 설비투자에서도 마찬가지다. 산업은행 분석에 따르면 올해 반도체 투자가 35조6000억원에 이르러 총 설비투자 가운데 18%를 차지한다. 한국의 반도체 비중은 마치 산유국의 석유와 비슷한 정도로 커가고 있다. 
 
비중이 크니, 공백도 크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들어 8월까지 한국의 설비투자는 6개월 연속 감소했다.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었던 1997년 9월부터 1998년 8월까지 10개월 연속 감소한 이후 가장 길다. 반도체 설비증설이 3~4월 마무리된 것이 그 주된 요인이라고 한다. 요컨대 반도체 착시는 점차 사라지고 공백은 커지는 셈이다. 이로 말미암아 수출과 투자가 줄어드는 등 경기하강 압력이 강해질 가능성도 엿보인다. 그 압력은 올 연말과 내년 상반기 사이에 더욱 커질 듯하다. 
 
이 시기는 계절적으로 고용사정도 어려울 때와 맞물린다. 자동차와 조선이 아직 회생의 돌파구를 찾지 못한 상태에서 설상가상의 악재가 더해지는 것이다. 고용사정이 더 나빠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때문에 반도체 착시 해소에 따른 공백을 메울 방도가 시급히 제시돼야 한다. 새로 중책을 맡을 홍남기 경제팀과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이 어떻게 이 고비를 헤쳐나갈지 지켜봐야겠다.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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