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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백승권 CCC 대표 "보고서는 대통령부터 말단 공무원까지 잇는 소통 언어"
청와대 경험 바탕으로 작성 노하우 집대성…직장인 대상 보고서 강연만 연간 200회
"비효율적인 문서 쓰느라 낭비하는 직장문화 개선돼야…토익 대체할 글쓰기 시장 선도할 것"
2019-01-16 08:00:00 2019-01-16 08: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보고서 작성 시 매뉴얼이 없어 당황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인터넷을 뒤져도 ‘쓸만한 족보’는 나오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짜맞춰 쓰더라도 상사에게 와장창 깨지고 만다. 그러나 정작 후배들에게 온갖 짜증과 구박을 퍼붓는 이들 역시 제대로 된 방법을 모르는 게 부지기수. 업무적 소통이 단절돼 버린 이 시대 직장인들은 언제쯤에나 제대로 된 보고서 기술을 터득할 수 있을까. ‘보고서의 법칙’ 저자이자 커뮤니케이션컨설팅앤클리닉(CCC) 대표인 백승권씨는 “제대로 된 매뉴얼이 없는 보고서는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가로 막는 걸림돌”이라면서 “실용글쓰기의 ‘루틴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 보고서를 잘 쓰는 첫 번째 방법”이라 조언한다. 지난 9일 서울 상암동 DMC 산학협력센터에서 25년 간 실용글쓰기를 연구하고 강연해 온 그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공직 시절 경험으로 다져낸 ‘보고서의 법칙’
 
“청와대 재직 시절 보고서의 중요성을 알게 됐어요. 당시 책임 있는 정책 의사결정은 보고서로 이뤄진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홍보수석실에서 행정관으로 일한 저자는 지난 2005년을 잊을 수 없다. 당시는 노 전 대통령의 지시로 우리나라 최초의 청와대 보고서 매뉴얼이 만들어 졌던 시기다. 그 전까지 ‘백인백색’으로 유통되던 보고서는 이때부터 일정한 틀과 법칙에 맞춰 일관된 흐름을 갖게 됐다. 이때 이후로 저자는 청와대에서 직무를 수행하며 보고서가 대통령부터 공무원까지를 하나로 연결해주는 커뮤니케이션 언어임을 깨닫게 됐다.
 
청와대를 나온 후로는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보고서 강연을 시작했다. 대통령을 독자로 삼던 매뉴얼을 직장인 눈높이에 맞춰 재구성했다. 민간, 공공 기업부터 중앙부처, NGO 등 다양한 업종에 종사하는 이들을 만나 계속해서 수정하고 보완했다. 해마다 200회 이상의 강연을 해오면서 다듬어간 ‘보고서의 법칙’, 그는 이를 ‘청와대 매뉴얼 2.0’이라 부른다.
 
“청와대 매뉴얼 작업 이후 보고서 작성법을 체계화하고 발전시킨 사례가 없었거든요. 저는 이 분야가 앞으로도 발전해서 많은 직장인이 글쓰기 고통에서 벗어나길 바랍니다. 자기 생각과 주장을 명확하게 펼 수 있는 사회가 왔으면 합니다.”
 
그에 따르면 우리 사회는 비효율적인 문서작성으로 ‘낭비’가 심한 상태다. 시간과 돈 등 물질적 비용도 문제지만 정서나 정신적 비용도 상당하다. “보고서는 민주주의, 경제성장과 필연적으로 연관돼 있다고 생각해요. 문서작성으로 원활한 소통이 된다면 훨씬 더 발전적이고 민주적인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업무용 글쓰기 매뉴얼 제작 및 컨설팅 전문업체 커뮤니케이션컨설팅앤클리닉(CCC) 대표 백승권씨. 사진/CCC
 
실용 글쓰기, ‘세상의 틀’을 존중하는 것
 
책에서 저자는 ‘문학 글쓰기’와 ‘실용 글쓰기’를 엄밀히 나눠 구분한다. 세상의 질서를 흔드는 문학 분야와 정반대로 실용 분야는 세상의 틀을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학창시절부터 15년간 문학도의 길을 걷다실용 글쓰기로 전환하며 얻게 된 통찰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두 가지를 잘 구별 못합니다. 실용 글쓰기를 잘하고자 문학 책을 보는 사람도 있죠. 하지만 두 세계는 명확히 다릅니다. 문학 분야가 창조적인 에너지로 불확실성을 표현하는 것이라면, 실용 분야는 세상의 틀을 존중하는 가운데 효율성과 정확성을 추구하는 것이죠. 문학분야는 ‘사적 자아’가 쓰는 것이라면, 실용 분야는 ‘공적 자아’가 글을 씁니다.”
 
그에 따르면 실용 글쓰기, 특히 보고서엔 명백한 법칙과 매뉴얼이 있다. 한마디로 ‘루틴의 세계’다. 자신 만의 시각 혹은 개성이 두드러지는 글쓰기들과는 시작점부터 달라야 한다. 의사 결정권자 중심으로 쓰는 ‘커스터마이징’, 짧게 핵심만 전달하는 ‘핵심 요약’ 등 책에서는 보고서의 여러 실천 방법들을 제시한다. 이런 방법들이 실제 수강생들의 효과를 극대화 시킨 사례도 적지 않다.
 
“보고서는 결국 독자, 의사결정권자 입장에서 쓰는 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대체로 자기 생각을 중심으로 보고서를 작성하는 분들이 많아요. 수강생 분들에게는 똑같은 문제를 독자 중심에서 볼 때와 쓰는 사람 중심에서 볼 때 차이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설명해 주곤 하는데, 이 지점에서 깨달음을 얻어가시는 것 같습니다.”
 
보고서는 ‘우파니 샤드’가 아니다
 
실용 글쓰기에 뛰어든지 25년, 직장 풍경도 많이 바뀌었다. 단순 ‘요식행위’에 불과했던 보고서는 이제 업무의 전선에서 의사소통의 주요 매개가 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참여 정부 때부터 보고서가 중요해졌어요. 상사와 부하 사이 소통할 일도 많이 생겼고 보고서가 많이 쓰였죠. 그런데 질서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과도기쯤이라 보면 될 것 같네요.”
 
2010년대 이후부터는 참여 정부 시절 꾸린 체계에 따라 청와대와 중앙부처를 중심으로 짜임새가 갖춰졌다. 하지만 그가 보기엔 현재까지도 지자체와 공공기관은 매뉴얼이 그 수준으로 정비되지 못하고 있다.
 
민간 부문도 삼성이나 LG 같은 대기업의 경우를 제외하면 매뉴얼 조차 없는 실정이다. 그런 곳에 강연하러 갈 때마다 그는 청와대 보고서 매뉴얼을 얘기해주는데 반응이 좋은 편이다. 그는 “청와대에서 경험하고 다듬어 온 법칙들이 그들의 고민을 풀어주는 것 같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강의 현장에서 여러 직장인들을 만나다 보면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직장 선배의 어깨 너머로 배우고 상관에게 깨져가면서 익히지만 그 마저도 통일성이 없다. 스승과 제자가 무릎을 맞대고 앉아 비의를 전하는 우파니샤드도 아닌데, 실무 풍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저는 대표부터 직원까지 회사가 하나의 약속을 정하는 방법을 강조합니다. 그래야 부하직원 같은 경우는 기준점을 잡고 일을 할 수 있고, 반대로 상사 같은 경우는 밑에서 좋은 보고서가 올라와 업무 부담을 덜 수 있겠죠.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매뉴얼을 정하고 알린다면 갈피를 못잡는 직원들은 없을 겁니다.”
 
업무용 글쓰기 매뉴얼 제작 및 컨설팅 전문업체 커뮤니케이션컨설팅앤클리닉(CCC) 대표 백승권씨. 사진/CCC
 
자신 없다면 글 요약부터…“보고서 시장 선도할 것”
 
책에는 굳이 업종을 나누지 않더라도 꼭 숙지해야 할 사항들이 많다. 진척 상황을 기록하고 보고하기 위한 결과 보고서나 상황 보고서를 효율적으로 작성하는 방법도 있고, 기안서 등 약식 문서나 언론 홍보용인 보도자료를 효과적으로 작성하는 요령도 있다.
 
글 때문에 보고서조차 선뜻 어렵게 느껴지는 이들에게는 ‘요약’ 방법을 추천한다. “글쓰기는 결국 요약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전달할 가치가 있는 것을 텍스트로 요약을 하다 보면 배울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설득하려면 주장이나 용건이 있을 것이고 그걸 뒷받침할 근거가 필요하구나, 같은 흐름을요. 가장 좋은 건 신문 칼럼 같은 손에 잡히는 글을 읽고 용건, 근거 등을 나눠 요약해보는 거예요.”
 
영어 시험이 취준생들의 스펙이 되는 세상이지만 저자는 글쓰기가 더 우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 업무 현장에서 이뤄지는 커뮤니케이션의 근본이며 업무 효율성, 생산성과 연계성이 높기 때문이다. 책에서도 영어 글쓰기와 말하기를 결국 ‘장롱면허가 되지 않느냐’고 비판한다. 현재 비즈니스 라이팅에 IT분야를 접목, 새로운 사업 구상도 하고 있다. 토익 시장을 이길 수 있는 보고서 영역의 인증시험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저는 모든 기관과 기업에게 묻고 싶습니다. 업무 커뮤니케이션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글쓰기 교육을 시키지 않고 그 빈도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 영어에 돈과 시간을 투자하도록 만드느냐고요. 그래서 차후에는 강의보다는 우리나라 업무용 글쓰기 시스템이 잘 갖춰질 수 있도록 인증시험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궁극적으로 토익 시장을 이겨보고 싶어요. 지금 하나, 하나 벽돌을 쌓고 있습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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