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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독립영웅들)②조국보다 한국 택한 ‘파란눈 독립운동가들’
34번째 민족대표 ‘스코필드’, 두번이나 암살시도 당해…광복 후 한국 묻힌 ‘테일러’, 독립선언 해외에 알려
2019-02-28 12:00:00 2019-02-28 12:00:00
[뉴스토마토 신태현 기자] 지난 26일 서울시청 시민청에서는 ‘한국의 독립운동과 캐나다인’ 특별전시회 개막식이 열렸다. ‘34번째 민족대표’ 프랭클린 윌리암 스코필드(한국명 석호필)의 손자 딘 케빈 스코필드는 한국에서 할아버지를 아는 사람을 만났다고 했다.
 
“그는 한국전쟁으로 가족 6명을 잃고, 몇 달 동안 씻지도 못하고 넝마를 뒤집어쓴 채 여동생과 함께 길을 헤매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그를 꼭 안고 ‘모든 것이 잘 될거야’라고 하더니 지갑 내용물을 다 꺼내 손에 쥐어주고 2년 동안 돌봐줬다.”
 
조국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외국인들이 있었다. 3·1운동 때 조선 상황을 외국에 알렸을 뿐 아니라, 이로 인해 본국으로 쫓겨나서도 돌아오려하다가 끝내 한국에 묻히기까지 했다.
 
지난 26일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열린 '한국의 독립운동과 캐나다인' 특별전시회 개막식에 마이클 대나허 주한 캐나다 대사(왼쪽부터), 박원순 서울시장, 딘 케빈 스코필드, 정운찬 호랑이 스코필드기념사업회 명예회장이 참석했다. 사진/신태현 기자
 
조선인과 함께 분노한 선교사
 
스코필드는 한국에 선교사로 와 3·1운동과 제암리 학살 사건을 알렸으며, 1970년 외국인으로는 최초로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됐다.
 
1889년 영국에서 태어난 그는 캐나다에서 수의과 대학에 입학했다. 캠퍼스에서부터 그는 약자에게 눈을 감지 않았다. 백인 학생들이 전체 기념 사진을 같이 찍지 않으려고 흑인 학생들을 묶어뒀지만, 스코필드는 밧줄을 풀어주고 같이 사진을 찍게 했다.
 
1916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서 강의를 맡아 한반도에 처음 발을 디뎠고, 일제 식민통치에 대해 조선인처럼 분노하기에 이른다. 강의와 성경공부라는 수단을 활용해 학생에게 세계 동향을 알려주고 나라·민족을 위해 할 일을 강조했다.
 
1917년 프랭크 스코필드와 한글선생 목원홍. 사진/스코필드기념사업회
 
살해 위협에도 ‘꿋꿋’
 
3·1운동을 앞두고는 민족대표 33인 부탁으로 외국 여론 동향을 전해줬다. 3·1운동 시기에는 운동과 제암리 학살 사건을 알리기도 했다. 잡혀가는 학생을 빼내거나, 갇힌 운동가 위문도 마다하지 않았다. 총리대신 하라 다카시 등 정계 인사들에게 폭정 시정을 부탁하는 일이 잦았다.
 
일제는 그를 내치려고 학교에 압박을 가했다. 동료 선교사들이 “정치개입하지 말라”고 다그쳤지만 스코
필드는 동요하지 않았다. 일제의 소행으로 여겨지는 암살 시도가 2번 있기도 했다.
 
1919년 3·1운동 희생으로 유족이 된 여인들. 사진/스코필드기념사업회
 
1920년 계약이 끝나 캐나다로 돌아간 뒤에도 그는 조선으로 돌아오고 싶어했다. 월급 3분의1을 10년 모아 여비를 마련하려다 주변 도움으로 6년만에 조선을 다시 찾는다. 해방 후에는 한국 정부 초청으로 방한한 뒤 서울대와 계약을 맺었다. 급여 3분의2로 가난한 사람을 돕고 장학금을 조성했다. 그는 틈만 나면 희생·자유라는 3·1운동 정신 준수를 설파했다. 독재 정부 악행이 일제 같다고 비판하는가 하면, 교육 부패 문제를 꼬집기도 했다.
 
독립선언서 반출 ‘비밀 미션’
 
1875년 미국 태생인 앨버트 테일러는 금광 채굴기술자인 아버지를 따라 1897년 조선에 왔다. AP특파원이기도 했던 테일러는 조선인의 독립 의지를 세계에 알린다. 테일러 부부는 출산차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다가 침상 밑에 숨겨진 독립선언서를 발견했다. 수색당하지 않을 외국인 병실에 간호사들이 숨겨둔 것이었다. 테일러는 독립선언서를 신발 밑창에 숨긴 뒤 동생을 통해 일본 도쿄로 보냈고, 미국까지 전해져 3·1운동이 전 세계에 최초로 알려지게 됐다.
 
1942년에는 총독부에 의해 추방됐다. 한국에 돌아오기 위해 미국 특수부대, 국방부, 미군정에게 자신을 써달라고 편지를 보내는 등 노력하다가 1948년 심장마비로 인해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유언에 따라 부인은 같은 해 10월 유해를 한국 양화진 외국민 묘지에 안장했다.
 
앨버트 테일러(왼쪽)와 그의 아내 메리 테일러. 사진/서울시
 
딜쿠샤 복원·스코필드 전시관 설립
 
3·1운동 하루 전에 태어난 브루스 테일러는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부모가 살았던 한국의 딜쿠샤 복원을 요청해, 오는 2020년까지 복원 작업이 진행 중이다. 서울시는 3월1일 복원 공사 현장을 개방한다.
 
또 26일 개막식에 참석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돈의문 박물관마을에 스코필드 박사 상설 전시관을 설치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신태현 기자 htenglis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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