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와인스타인’, 그는 성폭행이 습관이라고 말했다
침묵이 만든 끔찍한 성추문…할리우드의 어두운 면 드러나
“습관이 돼서 그래”…와인스타인의 충격적 발언
피해자 중심 아닌, 가해자 중심의 사건 전개 인상적
입력 : 2019-09-09 10:00:00 수정 : 2019-09-09 10:00:00
[뉴스토마토 김희경 기자] “그때 왜 제 가슴을 만지셨어요?” (피해자)
“미안해. 내가 습관이 돼서 그래.” (하비 와인스타인)
 
2017년 10월, 전세계 여성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할리우드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이 30여년간 저질렀던 성추문 사건이 그 시발점이었다. 그는 영화사 ‘미라맥스’ 설립자이자, ‘와인스타인 컴퍼니’ 회장이었다. 그에게 성범죄를 당했다고 고백한 피해자 수만 100여명에 이르렀고, 그 중에는 우리가 잘 아는 유명 여배우들도 다수 드러나 충격을 안겼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 이 순간에도, “나도 같은 일을 당했다”(Me Too)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할리우드란 화려한 이름 아래 드리워진 그림자는 더욱 어둡고 음험했다.
 
영화 ‘와인스타인’은 우르술라 맥팔레인이 메가폰을 잡고, BBC가 제작을 맡은 다큐멘터리다. 영화의 원제는 ‘Untouchable’(건드릴 수 없는). 지난 30여 년 간 할리우드에서 군림했던 하비 와인스타인의 권력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알 수 있는 표현이다.
 
영화 ‘와인스타인’ 스틸컷. 사진/㈜스톰픽쳐스코리아
 
제작진들은 약 60년에 이르는 하비 와인스타인의 일대기를 담았다. 특히 영화 초반에는 어떻게 그가 영화계의 갑(甲)의 위치에 올라갔는지를 설명한다. 와인스타인은 1952년 뉴욕 퀸즈의 한 보석 상인 집안에서 태어났고, 불과 27세에 동생 밥 와인스타인과 함께 영화 제작사 ‘미라맥스’를 설립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데뷔작 ‘저수지의 개들’ 배급을 시작으로 ‘굿 윌 헌팅’ ‘반지의 제왕’ ‘킬 빌’ ‘시카고’ 등을 제작했다. 그와 함께 일을 했던 사람들은 와인스타인이 사업 아이디어나 추진력에 있어선 상당한 재능을 보였다고 입을 모았다. 그들은 “그는 한 번 계획을 세우면, 이뤄낼 때까지 밀어붙인다”라고. 그리고 이런 와인스타인의 성격은 피해자들을 다룰 때도 똑같이 드러났다.
 
와인스타인은 자신의 성욕을 채우기 위해서라면 누구든 이용했다. 함께 일하는 회사 직원, 비서, 심지어는 영화계 관계자나 배우, 언론계 종사자까지 건드렸다. 20대 초반에 인턴으로 입사한 대학생을 호텔방으로 부르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뉴스 앵커에게 키스를 거절당하자 앵커 앞에서 자위 행위를 하는 추악한 행동을 했다.
 
영화에선 몇몇 피해자들이 직접 등장해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당시 할리우드의 명예를 얻고 싶었던 배우는 와인스타인에게 피해를 당한 뒤에도 혹여 불이익을 당할까 오히려 그에게 호의적인 연락을 계속해서 취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런 배우에게 돌아온 것은, 또 한 번의 성폭행이었다.
 
영화 ‘와인스타인’ 스틸컷. 사진/㈜스톰픽쳐스코리아
 
‘와인스타인’은 가해자 중심 위주 전개로 흘러간다. 물론 피해자들이 직접적으로 증언한 에피소드들도 있지만, 최대한 자극적인 것을 덜어내고, 유명 피해자들의 실명 언급도 최소한으로 줄였다. 대신 대중들이 잘 몰랐던 와인스타인의 추악한 모습을 더욱 강조했다. “내가 (여자 가슴을 만지는 게)습관이 돼서 그래” “내가 이 지역의 빌어먹을 보안관이라서 기쁘다”란 녹취 파일은 시사회 당시 앉아있던 관객들에게 허탈한 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여자 가슴을 만지는 게 습관이라는 말만 들어도 그가 여성을 어떤 식으로 대하는 지 짐작할 수 있다.
 
와인스타인은 자신의 영화적 입지가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할 무렵, 또 한 번 여성을 이용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페미니스트’ 선언이다. 그는 2015년 대학 내 성폭력을 다룬 다큐멘터리 ‘더 헌팅 그라운드’를 배급했고, 선댄스 영화제에 열린 여성 행진에 직접 참여했다. 힐러리 클린턴과 같은 정치계 유명인사들과 함께 페미니스트 행사에 참여하며 자신이 페미니스트라는 걸 보여주는 추악한 행보를 보여줬다.
 
참고로 페미니즘은 2019년에도 복잡한 사상 중 하나로 손꼽힌다.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페미니스트와 같은 노선을 걷고 있는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는 서로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만큼 페미니즘은 여성들에게도 낯설고 복잡하다. 하지만 와인스타인은 자신의 권력을 위해 그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고, 뻔뻔하게 활동을 해왔다. 그런 행보를 보이는 와인스타인을 그저 지켜봐야 했던 피해자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상상조차 가지 않을 만큼 참담하다.
 
영화 ‘와인스타인’ 스틸컷. 사진/㈜스톰픽쳐스코리아
 
그는 자신이 건드린 여배우들을 향한 2차 가해도 서슴지 않았다. 한때 할리우드에선 “와인스타인 영화에 주연으로 들어서는 여배우들은 와인스타인과 동침한 것”이란 루머가 돌았다. 그 소문에는 기네스 펠트로, 안젤리나 졸리, 레아 세이두 같은 유명인들도 포함됐다. 와인스타인은 이에 한 술 더 떠서 행사장에서 그녀들을 만나 다정하게 스킨십을 하는 모습을 기자들 앞에 보여주게 한다. 이를 통해 루머의 중심을 자신이 아닌 여배우로 향하게끔 만들고, 여배우들의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을 낳게 했다.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피해자들을 완벽하게 무너뜨리는 악마였다.
 
이 영화는 와인스타인이 이렇게 성폭행을 습관적으로 하는 모습을 강조하며, 그의 이런 범죄 행위를 수십년간 묵인해왔던 미국 사회에 의문점을 던졌다. 피해자나 제보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와인스타인이 끝이 아니다” “전세계적으로 와인스타인 같은 사람들은 더 많다” “와인스타인만 처벌받고 끝나서는 안된다” 등의 메시지를 던진다.
 
실제로 와인스타인은 그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이 영화는 또 다른 얼굴의 와인스타인들을 향해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다. 세상에 영원한 범죄는 없고, 피해자들은 이제 침묵이 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단순히 가해자를 직접적으로 옹호하는 행위뿐만 아니라, 가해자의 실체를 목격하고 침묵하는 것만으로도 가해자를 돕는 것이라는 걸 알려준다. 피해자들은 계속해서 연대할 것이고, 그만큼 가해자들은 계속해서 드러날 것이다. 자신의 권력을 부당하게 사용하면 안된다는 걸 새삼스럽게 다시 알려준다. 추악한 권력자들은 아직까지도 존재하고 있으니, 다시 한 번 마지막 경고를 날리는 셈이다. ‘당신도 와인스타인 꼴이 나고 싶지 않다면, 그만 두라’는 메시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비 와인스타인은 시작에 불과하다. 시작이어야만 한다. ‘미투운동’ 여파가 계속되고 있는 지금, 우리 사회에선 얼마나 많은 와인스타인이 있는지 알게 됐다. 영화는 그를 본보기 삼아 전세계적으로 자정작용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 사회 와인스타인은 누구인가? 왜 우리는 와인스타인이 습관적으로 성폭행을 하도록 만들었는가? 우리 근처의 와인스타인은 왜 드러나지 않고 있는가? ‘와인스타인’을 보면서 우리 사회에서 일어났던 미투 운동 이슈를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됐다. 가해자들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는 것이, 과연 우리 사회를 발전시키는 것에 도움이 되는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영화 ‘와인스타인’은 오는 26일 개봉된다.
 
영화 ‘와인스타인’ 스틸컷. 사진/㈜스톰픽쳐스코리아
 
김희경 기자 gmlrud1515@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 김희경

뉴스토마토 김희경 기자입니다.

  • 뉴스카페
  • email
  • face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