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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방망이 처벌' 먹고 자라는 '산업스파이' 범죄
기술유출 범죄 계속 증가…실형 선고 7% 내외, 무죄는 27% 수준
법조계 "범죄수익 더 달콤…처벌 수준 높이고 입증책임도 완화해야"
2020-06-02 06:00:00 2020-06-03 08:26:30
[뉴스토마토 왕해나 기자] 기술유출 범죄가 날로 늘어나고 있음에도 법적 처벌은 집행유예나 벌금형에 그치고 있다. 이런 '솜방망이 처벌'이 기업이나 국가에 막대한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범죄를 키운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일 경찰청 등에 따르면 2015년 301명이던 산업기술 유출 검거 인원은 2016년 326명, 2017년 336명, 2018년 352명, 지난해 381명 등으로 증가 추세다. 경찰청의 수사기법 발달로 인해 검거율이 늘어난 덕분이기도 하지만 기술이 곧 '돈'이 되는 시대라 관련 범죄가 기승을 부린다는 분석이다.
 
10년 넘게 지식재산권 범죄를 다뤄온 법률사무소 다감의 유영호 변호사는 "수사기법의 발달로 인해 디지털 포렌식을 하면 범행을 특정할 수 있게 됐지만 그만큼 기술유출 방법도 교묘해지고 고도화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자동차·IT 산업에서 이용되는 핵심 기술을 빼돌린 일당이 경쟁업체에서 해당 기술로 제작한 금형제품과 증거물. 사진/뉴시스
 
사회·국가 자산에 대한 인식 변화와 범죄수준에 비해 이에 대한 사법적 판단은 한참이나 뒤떨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기술 유출 범죄는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영업비밀누설 등)'과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처벌 받는다. 이를 기준으로 한 사법연감 통계를 살펴보면 최근 3년 동안 산업기술 유출 관련 사건 중 실형이 나온 사건은 7% 정도다. 집행유예와 벌금형이 27~30%로 대부분을 차지했고 무죄도 25~27%나 나왔다. 
 
최근 몇 달간 전국 각급법원에서 나온 판결문을 봐도 기술유출 사범에게 약한 처벌을 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인천지법 형사7단독 임윤한 판사는 지난 3월 서울반도체의 공정기술팀에서 기술 개발 업무를 하다가 퇴사하면서 거래처였던 회사와의 연구사업에 사용할 목적으로 기술을 유출한 김모씨에 대해 징역 8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유출된 기술은 색좌표 집중도를 높이는 발광다이오드(LED) 패키지의 핵심기술로서 서울반도체는 이를 개발하는데 3년의 시간과 370억원의 비용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해외 기업으로 기술 유출을 시도한 이들에게도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수원지법 형사15부(재판장 송승용)는 지난 2월 중국 길림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의 성능평가를 해 달라는 부정한 청탁을 들어주고 현금 600만원과 향응을 제공받은 한편, 회사가 보유한 OLED 기술을 훔쳐 중국 동종 업체에 이직하려고 한 A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공범 5명 중 3명에게는 집행유예를, 나머지 2명에게는 무죄 판결을 내렸다.
 
무죄가 선고된 사례도 나왔다. 대전지법 천안지원 형사2단독 김애정 판사는 코닝정밀소재로부터 6~7세대 액정표시장치(LCD) 기판유리 설계도면 정보를 유출한 혐의를 받은 B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는 중국 기업인 동욱집단유한공사로 이직을 하기로 결심하고 퇴사 직전 관련 설계도면을 83회 열람했다. 이직한 이후에도 현직인 후배 D씨에게 설비 정보 등을 요구해 전달받았다. 
 
법원은 이들의 기술유출 의도가 강력하게 의심되거나 실제 기술유출 시도를 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하지만 언제 어떤 정보를 어떻게 유출해 피해 기업에 얼마만큼의 손해를 끼쳤는지 특정되지 않았다는 점을 양형의 이유로 삼았다. 유 변호사는 "법원의 지적재산권 영업비밀에 대한 가치 평가가 좀 낮은 것이 처벌이 낮은 이유 중 하나"라면서 "대기업은 영업비밀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갖춰놓는데 중소기업들은 속수무책"이라고 말했다. 
 
해외 수준으로 기술유출에 대한 처벌 수준을 높이거나 범죄사실을 인정하는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법무법인 민후의 김경환 대표변호사는 "범죄로 인한 처벌 수준보다 범죄를 통해 얻는 이익이 많으니 범죄가 지속된다"면서 "미국에서는 기술유출 범죄에 대해 징역 10년 이상도 선고하고 있는 만큼 처벌 강도를 지금보다 몇 배 올리는 것이 범죄를 줄이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또 "기술유출로 인한 피해 정도를 피해회사가 증명해야 하는데 가해자들은 발각되는 순간 증거를 인멸해버리는 경우가 많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법원이 기술유출에 대한 입증책임을 완화할 필요성도 있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왕해나 기자 haena0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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