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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코로나 이후 도시살이
2020-06-04 06:00:00 2020-06-04 06:00:00
코로나19 들어 가장 큰 충격을 받았던 순간을 하나만 꼽자면 유럽·미국 광범위 확산도 대구·경북 확진자 급증도 아니다. 질병관리본부에서 “코로나19 이전의 세상은 다시 오지 않는다”고 브리핑했던 장면이 떠오른다. 한 번 지나가는 조금 많이 큰 태풍일 뿐 잘 견디면 다시 이전의 일상이 올 줄 알았지만, 국가 최고의 감염병 전문기관의 답은 생각보다도 단호했다. 
 
코로나19의 최대 피해지역은 다름아닌 ‘도시’다. 수도권 확진자가 약 2000명에 달하는 이유도, 대구가 경북과 다른 양상을 보인 이유도 도시이기 때문이다. 인류가 개발한 문명의 집약체와도 같은 도시는 감염병을 보다 빠르게 전파하고, 보다 많은 이에게 확산되며 우리를 공포에 빠뜨리고 있다. 전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사는 세상에서 도시가 바뀌지 않으면 코로나 이전의 삶은 커녕 코로나 이후의 삶조차 담보하기 힘들다.
 
2일 열린 ‘CAC 도시정부 시장회의’엔 런던, 모스크바, 아테네, 자카르타, 토론토 등 이름만 대면 알만 한 세계 42개 도시 시장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장소가 서울 모처가 아니라 온라인이란 점이 현 시국을 반영하지만, 이를 감안해도 바쁘디 바쁜 도시 대표들은 바로 코로나19 때문에 모니터 앞에 얼굴을 맞댔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날 모인 도시 대표들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제안한 서울선언문을 채택했다. 감염병 도시협의체를 만들어 전문인력을 키우고 선제적으로 대응해 한 단계 높은 수준의 ‘도시’를 만들자는 논지다. 뉴노말이라는 알 듯 모를 듯한 말 대신 도시 간의 연대와 협력을 바탕으로 우리 삶의 터전이 되어버린 도시를 강화해 제2, 제3의 코로나19를 막아내야 한다고 도시 대표들은 입을 모았다.
 
이날 모인 도시들 모두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지난 3달여간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고 봉쇄 조치와 사회적 거리두기로 도시 기능이 상당부분 멈추었다. 다행히 대부분의 도시가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중이지만, 제한조치 해제와 경제 활성화도 바쁜 시점에서 도시 간의 연대를 외치며 각 도시 대표들이 함께한 이유는 단일 도시, 단일 국가의 힘만으론 감염병을 이겨낼 수 없음을 누구보다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온라인으로 마이크를 잡은 런던 시장은 “국제 커뮤니티로 시민을 보호하고 강력한 도시로 재탄생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진단키트를 수입해 화제를 모은 미국 메릴랜드 주지사는 “함께 노력하지 않으면 이 상황 극복할 수 없다”고 했다. 덕분에 푸른 하늘을 오랜만에 봤다는 자카르타 시장은 “미래를 위해 도시를 운영하는 방법을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모스크바 시장도, 앙카라 시장도, 빌바오 시장도 도시의 취약성을 회복시키기 위한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는데 뜻을 같이 했다.
 
도시는 무엇보다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서울이란 도시에 몇 개의 공공병원이, 몇 명의 의료인력이, 몇 개의 선별진료소가, 이를 위한 통신체계는, 의료장비 생산시설은, 실업자 구제는, 사회적 약자 보호는 얼마나 필요하고 어떤 돈으로 어떻게 갖출 것인가. 기존의 합의만으론 이미 부족하다고 각 도시 대표들이 증언했다. 이제 코로나 이후의 도시살이를 새로 만들 때다.
 
박용준 공동체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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