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새도약기금이 참여 저조를 이유로 대부업권에까지 '저금리 자금'이라는 파격적 혜택을 열어주자 금융권 전반의 불만이 커지고 있습니다. 정책 실적을 끌어올리려는 조급함이 업권 간 형평성 논란을 키우는 데다 정작 대부업 구조조정 회피만 부추기는 등 실효성이 의문이라는 지적입니다.
새도약기금은 7년 이상 장기 연체된 5000만원 이하의 무담보 채권을 매입하여 빚을 탕감하거나 채무를 조정해주는 정책입니다. 가계 연체채권을 민간과 공공이 공동 매입하는 구조로 설계됐습니다. 그러나 주요 대부업체들은 "매입가율이 너무 낮다"며 참여를 미루는 상황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대부업만 받는 혜택…타업권 형평성 불만
28일 금융권 등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기존 '서민금융 우수 대부업자' 24곳에만 제공되던 은행 저금리 차입을 새도약기금 참여 대부업체 전체로 확대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현재 은행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로 자금을 빌릴 수 있는 대부업체는 서민금융 우수 대부업자로 지정된 24개사에 한정돼 있습니다. 이들 업체는 저신용자 대상 신용대출을 크게 늘리는 등 사회적 기여도가 일정 기준에 부합해야 합니다. 그러나 금융위원회는 새도약기금에 참여하는 대부업체라면 우수 사업자 수준의 혜택을 동일하게 부여한다는 방침을 내놨습니다. 이 때문에 다른 업권에서 "정책 성과를 만들기 위한 과도한 특혜"라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혜택이 사회적 기여도가 아니라 단순히 정부 정책 참여 여부를 기준으로 적용된다는 점에서 형평성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저축은행·캐피탈·카드사 등 다른 업권은 은행 저금리 차입 혜택을 받을 수 없는 반면, 새도약기금에 참여하는 대부업체만 해당 특혜를 받게됩니다. 동일 업권 내에서도 우수 대부업자보다 더 넓은 인센티브를 받는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우수 대부업자로 선정된 업체만 이용하던 혜택을 참여 업체 전체로 넓힌 것은 사실상 보조금에 가깝다"며 "정책 실적을 위해 금융질서를 흔드는 셈"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대부업은 원래 고위험·고금리 구조로 수익을 가져온 업종"이라며 "그런 업종에 공적 재원을 활용한 우대까지 얹어주면 특혜의 이중화"라고 했습니다. 이어 "저축은행·캐피탈·상호금융 등 다른 업권은 왜 이런 혜택이 없느냐는 형평성 문제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책 설계가 참여 유도에 집중되다 보니 인센티브가 본래 제도 취지와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실제로 일부 대부업체는 정책 참석 여부를 저울질하며 '정부가 더 좋은 조건을 내놓을 것'이라는 기대 내지는 압박 전략을 취하는 모양새입니다.
양측 갈등의 중심에는 매입가율이 있습니다. 정부가 액면가의 5% 수준을 제시한 반면, 대부업계는 "25%는 돼야 손실 반영이 가능하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의무 참여가 아닌 자율협약 구조라 강제성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협상이 장기전으로 흐를 것이라는 전망이 큽니다.
문제는 협상이 길어질수록 시장에 방치되는 장기 연체채권이 늘어난다는 점입니다. 대부업체가 매각을 미루면 미룰수록 회수 노력은 줄어들게 됩니다. 또 취약차주들은 빚 정리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채무불이행 상태에 방치될 우려가 큽니다.
연체채권을 낮은 가격에 넘기면 회계상 손실이 크게 잡히므로 대부업체들 입장에서는 버틸 명분이 생긴다는 게 금융권 안팎의 분석입니다. 당국이 혜택을 추가로 제시할수록 대부업체는 시간 끌기 전략으로 더 이득을 보게 됩니다. 민간 구조조정을 지연시키고, 공적 개입을 확대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새도약기금 출범식에서 이억원 금융위원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기념 현판을 제막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책 목적보다 실적에 급급
금융권 안팎에선 정책 목적보다 실적이 앞선 것 아니냐는 쓴소리가 나옵니다. 초기 민간 매입이 기대보다 부진하자 당국이 인센티브를 계속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하면서 정책 취지가 변질되고 있다는 견해가 적지 않습니다.
또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정책 효과를 위해 민간 사업자에 과도한 인센티브를 주기 시작하면 다른 정책에서도 선례가 될 수 있다"며 "초기 연체채권 매입이 저조한 상황에서 압박감이 있겠지만 대부업체에 저금리 자금까지 제공하면서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이 장기 정책에 바람직한지는 의문"이라고 했습니다. 정책 초기부터 총16조4000억원 매입이라는 양적 목표가 앞세워지면서 업권 간 형평성까지 흔들리고 있습니다.
새도약기금의 정책 목표는 취약차주 재기 지원이지만, 실제로는 대부업권 구조조정 지연과 부실채권 방치라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참여 저조를 이유로 대부업체에까지 저금리 자금이라는 강력한 인센티브를 열어준 조치는 정책의 원칙과 형평성을 훼손할 수 있는 만큼 건전한 매입 구조를 지키는 게 우선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김대종 세종대 교수는 "시장 안정화와 채무조정 정책은 단기 성과보다 지속가능성 중심으로 설계해야 한다"며 "지금처럼 채권기관 실적 중심으로 정책이 설계되면 초기에는 속도가 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이탈·버티기·도덕적 해이 문제가 더 심해진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특정 업종에만 혜택이 집중되면 다른 민간 사업자의 반발이 커져 정책 효과가 떨어진다"며 "동일한 경제적 목적을 가진 정책이라면 금융업권 전반에 걸쳐 일관된 기준과 혜택을 적용해야 한다"고 짚었습니다. 그러면서 "정책 실적만 강조되다 보면 업계와 정부 간의 불신이 확대되고, 이번처럼 갈등 구조가 형성되기 쉽다"고 했습니다.
김 교수는 "새도약기금 정책은 시장 질서·업권 형평성·장기 지속성 세 요소를 균형 있게 설계해야 하며, 지금의 방식은 업계의 협조를 이끌기 어렵고 오히려 반감만 확대될 수 있다"면서 "정교한 규율 설계와 업계 간 형평성 회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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