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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밥상을 차리며
2021-10-28 06:00:00 2021-10-28 06:00:00
음악평론가라는 직함을 달고 20년 가까운 나이를 먹었다. 그 시간 동안 남들보다 몇 십 배, 많으면 몇 백 배의 공연을 봤다. 프레스 티켓을 받고 공연장에 입장하면 객석에는 지인들이 있었다. 인사를 나누며 오늘 공연이 어떨까, 같은 한담을 나누며 시작을 기다렸다. 좀 친한 뮤지션의 공연이면 대기실에 놀러가 수다를 떨기도 했다. 이 공연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관계자들은 어떤 마음으로 무대에 임하는지 알 지 못했다. 애써 알려하지도 않았다. 듣기는 했으나 피차 일에 지나지 않았다. 다 된 밥상에 숟가락을 얻는 것도 아니고, 식사 중인 밥상에 제 숟가락 들고 끼어앉는 인생을 살았다.
 
얼마전, 몸담고 있는 회사에서 공연을 하나 올렸다. 처음 얘기가 나오고 내내 걱정이었다.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멈추지 않았다. 코로나19 때문이었다. 계획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크고 작은 공연과 페스티벌들이 취소됐다는 소식이 멈추지 않았다. 특히 10월 초에 발표된 거리두기 연장안으로 그랜드민트페스티벌이 작년에 이어 올해도 취소된 건, 공연계의 가장 두렵고도 아픈 뉴스였다. 우리가 하는 공연은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음에도 어쨌든 막을 올릴 수 있었다.
 
공연이란 밥상을 차리는 일을 함께 해야했다. 스스로 크고 작은 공연을 몇 개 만들어 본 적은 있지만 엄중한 의미에서의 공연은 아니었다. 수십에서 수백명이 움직이는 시스템 바깥의 작은 이벤트였을 뿐이다. 첫 날, 평소 출근 시간보다 더 이른 시간에 공연장으로 출근했다. 아예 새벽부터 나와서 회사에서 공연장으로 짐을 나르는 직원들에 비하면 늦은 시간이었지만, 페스티벌을 제외하고 그렇게 빨리 공연장을 방문해보기도 처음이었다. 사람과 장비로 가득찬 모습만 보다가 아무 것도 없는 무대와 객석을 보니 그리 광활해보일 수 없었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나갔다. 입구 주변에 포스터와 홍보물을 붙였다. 머천다이즈를 판매할 테이블을 설치하고 물품을 비치했다. 넓디 넓은 객석에 의자를 깔았다. 창고에서 수백개의 의자를 가져왔고, 하나 하나 펴서 오와 열을 맞춰 깔았다. 그리고 종이에 인쇄된 객석 번호표를 일일히 테이프를 동원해서 의자마다 붙였다. 내가 하는 일은 거의 대부분 책상에 앉아 디지털 기기를 활용해서 이뤄지지만 이 날은 어떤 디지털도 없었다. 아니 디지털은 커녕 기계 하나 없이 몸과 손을 동원해서 해야했다. 평소 하루에 걷는 게 1만2000보 내외인데, 공연 시작 한참 전에 1만5000보를 걸었다는 알람이 울렸다. 공연장 밖으로 나갈 일이 거의 없었음에도 말이다. 공연의 본질은 그런 것이다. 압도적인 인력과 압도적인 수작업의 총체다.
 
그 와중에 무대에선 리허설이 진행됐다. 코로나19 이전 가끔 리허설을 볼 때는 별 느낌이 없었다. 사운드를 체크하고 동선을 짜는 등, 말 그대로 ‘일’을 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그런 작업을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이 날은 달랐다. 모두가 오랜만에 서는 무대이기도 했지만, 옛 친구들이 함께 무대에 서는 건 더욱 오랜만이었기 때문이었다. 출연진 모두 그저 연주와 노래를 하는 게 아니라, 리허설 마저 설레여했다. 김현철, 장필순, 박학기, 함춘호, 유리상자, 동물원, 조규찬이 이틀에 걸쳐 무대에 오른 이 공연의 이름은 <아카이브 케이온:우리, 지금 그 노래>. 과거 동아기획과 학전소극장의 주역들이 함께 한 공연이었다. 둘째 날 리허설에서 모두 함께 부르는 ‘내일이 찾아 오면’을 위해 목소리를 맞추던 장필순은 다른 이들에게 말했다. “우리 오늘 진짜 재밌게 하자. 나 봐. 계속 웃잖아” 공연이 끝난 후, 동물원 멤버들은 서로에게  말했다. “앞으로는 작은데서라도 자주 공연을 해야겠어” 모두에게 오랜만에 찾아온 공연이었다. 관객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출연자든 관객이든, 코로나19 시대에 가장 철저하게 배척받은 ‘콘서트’라는 시간이 비로소 다시 돌아온 것이다. 비록 뒤풀이는 못했지만, 모두에게 여운은 깊었을 것이다. 마치 2분 정도 물에 빠졌다가 다시 호흡을 하는 이가 느낄 법한, 어떤 간절함과 소중함도 찾아왔을 것이다. 위드코로나 시대의 코앞에서의 절실한 예습이었다.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일일공일팔 컨텐츠본부장(noisepo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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