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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백현진·김오키…구겨진 일상 펴낸, 음의 대화들
서울 마포구 상상마당 라이브홀 '웃음꽃 가든'
2021-11-25 16:07:31 2021-12-08 09:56:37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한 두시 쯤 교보에서 나와, 30분쯤 걸어 너에게 갔지."
 
2M 높이 무대에서 던져진 투박한 독백은 돌맹이 같았다. 거칠고 험한 세상에 굴러다니다, 까끌까끌한 표면이 일부 침식되고 잘려나가는 듯한 아우성이 고막을 차츰 잠식해갔다.
 
20일 오후 5시경, 서울 마포구 상상마당 라이브홀.
 
그림과 음악, 연기를 넘나드는 종합예술가 백현진은 '으레 공연장이라면' 하고 짐작하는 모든 것들을 일거에 허물어 버렸다. 투박하게 전진하는 리듬과 춤, 노랫 가락은 한줄 한줄 여운이 긴 독립영화 대사 같았다. 
 
주인공은 '어머니처럼 뇌에 물이 차 아프다 하는 너'와 남산으로 향하고,('남산') 달콤한 모과향으로 불안한 세계를 연인과 이겨가며('너, 모과, 나, 그때'), "카스 네병 주세요" 외친 뒤 고독과 상실, 절망을 이야기한다.('고속도로')
 
마이크 스탠드를 갑자기 내동댕이 칠 때, 걸쭉한 목소리로 몇몇 가사들을 개조해서 부를 때, 색소폰(김오키), 기타(이태훈), 건반(진수영)이 포근한 잔향으로 독백의 감정 너울을 높여갈 때, 느꼈다.
 
'공연이 뭐였더라. 이런 유머, 난장, 온기?'
 
20일 서울 마포구 상상마당 라이브홀 '웃음꽃 가든' 무대에 오른 백현진.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백현진 공연 직전 김오키, 이태훈, 진수영이 김재호(베이스), 김다빈(드럼), 정수민(더블베이스), 김성완(알토색소폰), 이규재(플룻)와 벌인 40분 간의 프리 재즈 '판'도 빼놓을 수 없다.
 
어릴 적부터 힙합과 록을 좋아했고 구본승, 젝스키스의 백댄서로 활동하다, 스물다섯 살에야 재즈 세계에 빠져든 김오키는 한국 색소폰계의 이단아 같은 존재다. 자유분방한 태도로 재즈, 록, 힙합, 전자음악의 장벽을 허물며 지난해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악인' 트로피를 안았다.
 
이날 자신이 주축이 된 무대에서 김오키는 뛰어다니며 연주자들과 시종 귓속말을 했다. 늘 그렇듯 '다음은 어떤 키로, 몇 마디 연주하자'는 음의 대화였을 것이다. 
 
굵은 통에서 토해내는 색소폰 배음(倍音)은 높게 비행하는 플룻의 반짝이는 선율과 뒤엉켜 따뜻한 멜로 영화 같은 순간들을 몇차례 만들어냈다.('점도면에서 최대의 사랑') 
 
공연장을 나오다가 우연히 마주친 백현진은 2019년 노동당사 앞에서의 공연('DMZ피스트레인뮤직페스티벌')에 관해 기자와 얘기 중 "그때 우리는 이런 거(마스크) 없었잖아요. 건강하세요"라고 안녕을 빌어줬다.
 
볼을 크게 부풀려 쉼없이 만들어낸 이 음의 대화들처럼 구겨진 기형의 일상도 다시 쭉 펴질 날이 오겠지.
 
20일 서울 마포구 상상마당 라이브홀 '웃음꽃 가든' 무대에 오른 김오키.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이날 공연은 솔(Soul)과 펑크(Funk)를 기반으로 록, 재즈, 힙합을 섞어내는 3인조 밴드 까데호의 음반 레이블 '웃음꽃'에서 주최했다. 
 
미국의 젊은 레이블 에디션레코즈가 '재즈 거장' 커트 엘링을 영입해 올해 초 63회 그래미어워즈에서 주목받았다는 데 아이디어를 착안했다. 
 
관계자는 "한국에도 재즈와 그렇지 않은 음악의 영역을 가뿐히 뛰어넘으며 그 경계를 지우는 멋진 음악가들이 있다. 이번 공연을 통해 그러한 현상의 실체를 직접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했다"고 설명했다.
 
까데호를 비롯해 평소 교류하며 지내온 김오키, 백현진, 추다혜차지스, 이희문과오방신기 같은 팀들이 다음날까지 함께 또는 각자 개성 있는 무대를 꾸렸다.
 
※이 기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2021 인디음악 생태계 활성화 사업: 서울라이브' 공연 평가에도 게재된 글입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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