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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변호사에게 거는 희망
2022-12-02 06:00:00 2022-12-02 06:00:00
2022년 드라마 중 최고의 화제작은 단연 지난 여름을 강타한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아닌가 싶다. 자폐까지 다루며 큰 반향을 일으켰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닐슨코리아 집계로 마지막 회에 무려 17.5%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종영했다.
 
9월 중순에 시작한 SBS 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도 최고 시청률 15.2%를 기록하며 만만찮은 인기를 끌었다. 아마도 우영우 변호사역을 맡은 박은빈씨나, 천지훈 변호사 역을 맡은 남궁민씨는 연말 시상식에서 몹시나 바쁘게 지낼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디즈니+를 통해 지난 9월부터 방영되고 있는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역시 대형로펌 에이스 출신 변호사와 좌충우돌 국선 변호사가 주연을 맡아 활약 중으로, 방영 초기부터 상당한 화제가 됐다.
 
최근 들어 드라마 주인공으로 변호사가 등장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예전에는 영화나 드라마를 막론하고 검사가 주인공인 경우가 많았다. 이제는 그 역할을 변호사가 이어받은 모양이다. 변호사인 필자로서는 퍽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왜 변호사일까? 
 
검사와 변호사는 같은 법조인이지만 극에서 그려지는 모습은 다르다. 검사가 등장하는 영화나 드라마는 검찰과 같은 커다란 조직이 등장한다. 거대 권력, 정치인과 기업가가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tvN에서 2017년 6월부터 한달간 시즌1이, 2020년 8월부터 10월까지 시즌2가 방영된 <비밀의 숲>이 최근 대표적 사례로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요즘 드라마에 등장하는 변호사는 일상의 문제를 다룬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봐도 그렇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주인공을 통해 우리 사회의 공정과 정의, 차별과 배제에 관한 문제를 제시했다. 기존 흔히 법조인이 등장하는 드라마에 등장할법한 굵직굵직한 정치나 경제 사건이 아니다. 치매 남편을 돌보다가 폭력을 행사하게 된 할머니, 형제들 간의 상속 분쟁, 도로를 만든다는 대의명분에 희생을 강요당하는 마을 주민의 이야기 등을 다룬다. 지금도 우리 서민들이 자주 부닥치는 일들이다. 거대 악과의 싸움도, 음모도, 액션과 복수가 없음에도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것이다.
 
<천원짜리 변호사>의 천지훈 변호사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 드라마에도 권력의 문제가 숨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극 초반 아파트 경비원에게 갑질을 일삼는 입주민에게 주연 배우 특유의 유머러스함을 통해 경비원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그와 동시에 갑질 입주민에 대한 통쾌한 복수로 시청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 주었다. 
 
법조인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들이 과거에는 거대한 문제들을 다뤘다면 지금은 일상의 문제들을 소재로 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거대 권력과 사건을 다루기에는 검사가 제격이었지만 일상적인 문제 해결에는 변호사가 더 적합해 보인다. 
 
다루는 소재가 달라지면서 추구하는 방향도 달라졌다. 검사가 추구하는 것이 거창한 ‘정의’와 같은 것이라면, 변호사는 우리 주변 일상의 ‘문제 해결’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듯하다. 검사가 거대 권력이나 조직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정의를 추구했다면 변호사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역할을 맡는다. 물론 이들이 때로는 비현실적인 암기력이나 사건 파악 능력, 때로는 육탄전을 불사하는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극적이기는 하지만, 변호사라는 직업을 통해 답답한 일상과 문제를 해결하는 데 치트키와 같이 사용하는 것이다. 그만큼 시청자는 우리 가까이에 있는 문제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과 그 문제들을 속 시원히 해결해주기를 원하고 나와 우리를 대변해 싸우고 나서 줄 수 있는 것을 원한다. 
 
대중은 갑질하는 사람, 공동체를 위협하는 사람,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에 분노한다. 깡통 전세, 직장 내 괴롭힘, 성희롱, 스토킹 등 일반 사람이 겪는 문제는 쌓여만 간다. 이러한 문제들과 개개인의 사연들은 삶 속에 실재한다. 사람들은 시시비비를 원하고 악인이 그에 합당하게 처벌받기를 바란다. 우리 일상에서 벌어지는 분쟁을 나를 대신해 치열히 싸워가며 해결하고,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냈다고 위로를 전하는 변호사의 진정성이 새삼 ‘사람 냄새’ 나는 풍경으로 보인다. 권선징악이라는 것이 멀리 있지 않다고 알려주는 희망처럼 느껴진다.
 
김한규 법무법인 '공간'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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