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시론)대한민국 정치와 정당에 있어서 상실의 시대, 지금 이 순간
2023-05-31 06:00:00 2023-05-31 06:00:00
2023년 5월 14일, 태국 총선에서 엄청난 파란이 일어났다. 진보 정당 전진당(MFP)이 하원 500석 중 151석을 차지하며 제1야당이 되었다. MFP의 대표는 43세의 피타 림짜른랏으로 애초에 그는 총리 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1위에 오르며 태국 정치의 큰 전복적 변화를 예고하였다. 스페인의 포데모스의 창당과 이를 통한 스페인 정치 혁신, 에마뉘엘 마크롱을 통한 프랑스의 정치 혁신에 이어서 현대 세계 정치사에 있어서 주목할만한 정치 변혁의 모습이다.
 
태국은 총리 선출 시 하원 의원 500명 외에 군부가 임명한 상원의원 250명도 함께 참여하기 때문에 상·하원 합동 투표에서 과반인 376석 이상을 확보해야만 총리가 될 수 있다. 이에 태국 내에서 엄청난 돌풍을 일으킨 피타 림짜른랏은 376석 이상을 확보하기 위해서 연립정부를 구성할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피타 림짜른랏은 다시 한 번 리더십과 협상력에 대한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다. 연정이 구성되고 피타 림짜른랏이 총리가 되는 과정까지 험난한 길이 놓여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군부 정권 하의 태국 정치를 크게 변화시켰다는 점에서 피타 림짜른랏과 MFP의 돌품은 우리나라 역시 배울 점이 많다.
 
우리나라는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시대적 이념을 앞세워 국민의힘과 민주당, 이렇게 단 2개의 당이 여당과 야당을 나눠 가지며 수십년의 정치 구도를 형성해 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양 당이 국민을 대변하거나 국민의 갈등을 해소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적대적 공존을 통해서 기득권을 유지하기에 바쁘다. 그야말로 대한민국 정치와 정당에 있어서 “상실의 시대”이다. 
 
산업화 시대를 대변하는 국민의힘은 사회적 안전망이 유지되는 경제 발전을 추구하기는커녕 빈부격차가 극대화 되는 무분별한 경제 발전만을 추구하고 있고, 당내에서는 대통령의 눈치만 보는 자와 다음 총선에서 어떻게 해서든 공천을 받고자 하는 자의 세력 다툼 등으로 인해 제대로 된 정당의 기능을 상실했다. 민주화 시대를 대변하는 민주당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과거 차떼기 선거를 연상케 하는 돈 봉투 사건은 물론 서민 정치인은 자처한 자의 가상화폐 투기 사건 등은 민주당 역시 더 이상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기득권 유지”를 위한 정치를 하는 집단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현재 우리나라 정당은 그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고, 극소수의 정치인 집단만 추종하는 팬덤 속에 취해 시민과 완전히 괴리된 정치에만 몰두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이분법적인 이념 또는 목표 지향적인 이념을 넘어서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고 인정되는 사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치는 이러한 다양성을 포용하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고 이용하고 있다. AI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기 직전이기에 인간의 온정은 느끼기 힘들어 졌고, 세대간, 지역간 디지털 양극화는 너무나 심해져서 정책적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외교적으로 커져만 가는 미중 갈등 속에서 한국은 외교적으로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 그 어떠한 정당도 진정성 있게 해법을 제시하려고 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일자리는 소멸하고 있고 단기간 일용직, 플랫폼 노동직 자리만이 늘어나고 있는 사회가 되었다. 높은 건물의 테헤란로와 광화문에 피곤함에 찌든 넥타이 부대는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채 일에 치여 하루를 살아가고 있고, 배달대행 노동자와 같은 다수의 불안정 노동자들은 최대한 빠르게 배달을 하여 먹고 살고자 목숨을 걸고 오토바이를 운전하고 있다. 이중적 사회구조는 더 심각해지고 있는데 우리나라 정치와 정당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 밤도 어둠이 깊어 가고 차가운 바람 소리만 들린다. 어둠이 지나가서 해가 뜨는 것이 아니라 해가 뜨기에 어둠이 사라지는 것인데, 우리는 어둠이 지나가기만을, 그리고 누군가 빛을 비춰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의 정치와 정당이 작은 빛이라도 비춰 줄 것이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어둠이 깊어가고 있다. 
 
폴란드 시인 쉼보르스카의 “두 번은 없다”라는 시가 있다.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두 번은 없는 우리의 삶 속에서, 스페인에 포데모스가 있었듯, 프랑스에 마크롱이 있었듯, 태국에서 피타 림짜른랏이 큰 혁신을 만들어 내고 있듯, 우리 사회 역시 어둠을 물리쳐 줄 변화와 혁신이 필요한 때이다. 우리 정치와 정당에 이러한 기대를 하는 것은 헛된 바람일까. 새로운 변화와 시도 속에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고 삶이 조금 더 풍요로워지는 내일을 기대한다. 
 
안희철 법무법인 디라이트 파트너 변호사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