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비티·웹젠 확률 오류 자백 "컴플라이언스 시험대"
그라비티·웹젠, 개정법 시행 전 공지
확률 8배 차이 나거나 4년째 잘못 표기
법 시행 직전 준법 의지 알려 부담 낮춰
"게임 유저를 '소비자'로 인식한 계기 돼"
2024-04-03 17:05:44 2024-04-04 11:23:25
[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그라비티와 웹젠(069080)이 최근 게임 내 아이템 확률 표기 오류 사실을 밝혔습니다. 규제 시행 직전에 벌어진 '자백'을 두고, 법조계에선 확률형 아이템 규제가 게임사 컴플라이언스를 시험대에 올려놨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라그나로크 운영팀은 개정 게임산업법 시행을 앞둔 지난달 20일 아이템 확률 표기 오류 사실을 밝혔다. (사진=라그나로크 온라인 웹사이트 캡처)
 
확률 표기 '실수' 강조
 
3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그라비티는 지난달 20일, 웹젠은 21일에 각각 '라그나로크 온라인'과 '뮤: 아크엔젤'에 아이템 확률 표기가 상당수 잘못돼왔다며 보상안을 마련하겠다고 공지했습니다.
 
그라비티의 라그나로크는 200개가 넘는 확률 표기 수정 내역에서 0.1% 확률을 0.8%로 표기해온 아이템들이 발견됐습니다. 실제 확률이 표기 확률보다 여덟 배 낮았던 겁니다. 그라비티는 육성에 도움을 주는 프리미엄 아이템 제공으로 보상하고 있습니다.
 
그라비티 관계자는 확률 오류 발생 원인에 대해 '수작업을 통한 고지 내용의 오기입, 자료 전달 부분에서의 누락, 오래전 확률 공지가 등록된 아이템 내 구성품이 갱신됐으나 갱신 고지가 제대로 되지 않은 건"이라며 '의도적으로 아이템의 확률을 조작하지 않았다"고 답했습니다.
 
웹젠의 뮤는 '세트 보물 뽑기' 확률 정보가 2020년 6월27일부터 잘못 표기됐습니다. 웹젠이 게시한 기존 확률 표를 보면, 360~400 레벨에서 '레전드 장신구 세트석 패키지' 획득 확률은 0.29%로 표기돼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100회 이상을 시도해야 350회마다 아이템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1회부터 99회까지 시도해도 패키지를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웹젠이 뒤늦게 밝힌 겁니다.
 
이에 대해 웹젠은 전날, 이달 안으로 환불 신청을 접수하겠다고 안내했습니다. 환불 대상에는 2020년부터 판매한 세트 보물 뽑기도 포함됩니다.
 
웹젠의 뮤: 아크엔젤 아이템 확률 표기 오류 사과문. (사진=뮤: 아크엔젤 웹사이트 캡처)
 
웹젠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개정 게임산업법에 대비해 계속 전수조사하면서 틀린 내용에 대한 공지와 사과, 보상을 해왔다"며 "전수 조사를 한 번 더 했는데 그간 발견하지 못한 내용을 찾아냈다"고 해명했습니다.
 
뮤: 아크엔젤은 중국 37게임즈가 만들었습니다. 웹젠은 과거 37게임즈가 제공한 데이터에서 누락된 부분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이번 공지를 내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웹젠과 그라비티는 개정 게임 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게임산업법) 시행일인 3월22일 직전에 그간의 잘못을 자백했기 때문에, 게임산업법상의 처벌은 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게임사가 확률형 아이템 확률 표기 의무를 어기면 2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다만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결과에 따라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적용돼 과징금을 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전자상거래법 21조 1항은 사업자가 거짓이나 과장, 기만적인 방법으로 소비자를 유인하거나 거래하는 행위를 금지합니다.
 
공정거래위원회 전자거래감시과는 현재 두 회사의 아이템 확률 정보 조작 의혹 민원을 접수하고 관련 내용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앞서 공정위는 넥슨이 '메이플 스토리'에서 장기간 잘못된 아이템 확률을 공지해 소비자를 기망했다며, 지난 1월 과징금 116억원을 부과했습니다.
 
공정위 조사 결과 두 회사 모두 고의가 아닌 실수라고 인정 받았다 해도, 손해 배상 책임은 남아있다는 게 법조계 설명입니다.
 
이철우 게임전문 변호사는 "중국에서 넘어온 자료를 제대로 검수해 표기하지 못했다는 점만으로 의도적인 기만행위로 볼 수 없다고 할 수 있다"면서도 "지난해 컴투스 판결에서 법원은 실수로 인한 손해의 경우에도 유저에게 배상하게 했기 때문에, 전자상거래법 위반에 따른 과징금 부과는 아니더라도 일반 이용자에 대한 손해 배상 책임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올해 1월 게임사 넥슨에 '메이플스토리' 및 '버블 파이터' 내 '확률형 아이템'과 관련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116억원(잠정)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사진=연합뉴스)
 
고의 없이 법 준수 의지 보이면 '참작' 가능성
 
두 회사의 자백은 개정 게임산업법이 게임사들을 컴플라이언스 시험대에 올려놨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컴플라이언스는 법규나 모범기준 위반을 방지하는 기업의 지속적인 노력입니다. 이 같은 노력에 대한 각종 기록을 남겨두면, 법 집행 당국에 그간의 법 준수 노력을 납득시킬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 변호사는 두 회사에 대해 "법 시행 전에 스스로 문제를 고쳤다는 점을 보여줘서 게임산업법 적용은 피하게 됐다"며 "잘못을 감면해줄 수는 없어도 참작해줄 수는 있는 점도 고려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종일 법무법인 화우 게임센터장은 "컴플라이언스는 서비스의 신뢰와 안전도를 높이기 위해서 회사가 노력하는 사항"이라며 "게임사가 게이머를 '유저'로 인식하는 시선과 '소비자'로 인식하는 시선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게이머를 유저로만 볼 경우, MMORPG 같은 경쟁 게임에서 확률의 오표시는 모든 유저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므로 게임 경제 안에서는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며 "하지만 게이머를 소비자로 인식하면, 소비자가 신뢰한 서비스의 스펙과 실제 스펙에 차이가 있는 것이어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습니다.
 
또 "두 회사의 고백은 적어도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서는 '소비자'의 신뢰를 얻는 게 최우선이라고 선언한 것'이라며 "양사의 고백이 자백이라고 폄하되는 건 곤란한 일"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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