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영진 기자]
롯데손해보험(000400)이 금융감독원 불허 방침에도 불구하고 후순위채 조기상환권(콜옵션) 행사 의지를 고수하면서 갈등이 커지고 있습니다. 한국예탁결제원도 롯데손보 강행에 제동을 걸고 나섰는데요. 전문가들 사이에선 롯데손보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통해 향후 유사 사례 등장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금융당국, 콜옵션 행사 배경 의심
9일 금융권에 따르면 롯데손보가 보험업감독규정을 따르지 않고 '투자자 보호'를 내세워 콜옵션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내세운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콜옵션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만큼 금융당국과 정면 충돌하는 양상입니다.
보험업감독규정 제7-10조에 따르면 후순위채는 만기 전까지 임의로 상환할 수 없습니다. 다만 지급여력비율(K-ICS), 대체 자본 발행 등 엄격한 조건을 충족한 경우에 한해 금감원장의 승인을 받아 조기상환이 가능합니다. 핵심은 모든 요건을 갖추더라도 금감원장의 승인이 있어야만 조기상환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후순위채 조기상환은 금감원장 승인 없이 원칙상 불가능하다"며 "롯데손보가 강행한다는 것은 대놓고 감독규정을 위반하겠다는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이어 "예탁원에 거부권을 행사할 뿐 당국이 직접적으로 막을 순 없다"며 "추후에 강행한다면 강력한 제재가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앞서 이세훈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롯데손보가 다른 손보사와 달리 지배구조가 재무적 투자자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장기적 안정성보다는 단기 주주 이익 극대화를 우선적인 목표로 둔 게 아닌가"라며 "적정 수준 자본 비율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일반 계정을 사용한다는 것도 우려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롯데손보는 지난 8일 금감원이 콜옵션 행사를 불허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콜옵션을 예정대로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롯데손보는 입장문을 통해 "콜옵션 행사를 연기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상환을 위한 충분한 자금 여력을 확보한 상태에서 8일 콜옵션을 행사해 공식적인 상환 절차를 개시했다"고 밝혔습니다.
금감원이 롯데손보의 콜옵션 행사에 반대하는 이유는 콜옵션을 진행할 경우 지급여력비율이 150% 아래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롯데손보 지급여력비율은 지난해 1분기 184%에서 2분기 173.07%, 3분기 159.77%, 4분기에 154.59%로 연달아 떨어졌습니다. 다른 손보사와 달리 회계상 유리한 '예외 모형'을 적용하고 있음에도 금융당국 권고치(150%)에 가까운 수준입니다. 금감원에 따르면 롯데손보가 '원칙 모형'을 적용할 경우 지난해 말 기준 127.4%까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예탁결제원도 롯데손보 콜옵션 행사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예탁결제원 관계자는 "후순위채 상환은 5년이 지나고 건전성 요건에 부합한 경우 승인해왔다"며 "금융사가 투자자에게 상환할 때 예탁원을 통해 증권사 계좌로 내는 구조"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금감원 승인이 나지 않는 이상 예탁원도 조기상환을 집행하기 어렵다"고 보충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제2 롯데손보 막아야"
롯데손보가 금감원장의 승인 없이 콜옵션 행사 의사를 밝힌 것은 보험업계에서도 이례적인 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대부분 보험사는 규제 산업이라는 특성상 금융당국과 정면으로 맞서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입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롯데손보가 매물로 나온 마당에 당국과 충돌해서 좋을 게 없다"며 "규제 산업에서 이렇게 부딪히는 것은 전례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관계자도 "당국 의지가 강한 만큼 합의가 더 필요할 것"이라며 "이번 같은 사례는 앞으로도 보기 드물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신용평가사들 역시 이번 사태를 예의 주시하는 분위기입니다. 롯데손보를 평가하고 있는 한국기업평가는 "건전성 요건 미충족에 따른 승인 거절로 조기상환이 지연된 것은 최초"라며 "이번 사태로 재무 건전성의 안정적 관리가 전제돼야 한다는 게 재각인됐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어 "이번 지연으로 롯데손보에 대한 신뢰도에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번 사안을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제2, 제3의 롯데손보가 등장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아울러 금융당국과 협의 없이 무리하게 진행할 경우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이어집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롯데손보가 승인 없이 강행하는 건 보험 규제의 정당성과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며 "이번 사례가 용인된다면 다른 금융사들도 유사한 방식으로 규정을 무시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김 교수는 "시장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면서 투자자들도 불확실성에 직면한다"며 "금감원은 제재를 통해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부연했습니다.
한상용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콜옵션을 한다는 입장은 이해하지만, 보험사 존재 이유와 소비자 보호가 우선돼야 한다"며 "앞으로 사태가 어떻게 해결되느냐에 따라서 하나의 사례로 남게 될 것"이라고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한 연구위원은 "지급여력비율 150%를 맞출 수 있는 수준을 넘긴 후에야 진행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롯데손보는 수익성과 건전성도 낮은데 이런 사태도 터져버리면 매물로 매력이 없어질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번 사태를 엄정하게 조치해 제2의 롯데손보를 방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진은 서울 롯데손보 본사 건물. (사진=뉴시스)
유영진 기자 ryuyoungjin1532@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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