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강예슬 기자]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법원공무원 노조)와 법원행정처가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 현수막을 놓고 충돌했습니다. 법원공무원 노조가 조 대법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현수막을 대법원 경내에 내걸자 법원행정처는 현수막 자진 철거를 요청했지만, 노조에서 이를 거부한 겁니다. 대법원이 조기 대선을 앞두고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졸속으로 처리한 후폭풍이 노사까지 이어지는 모양새입니다.
앞서 법원공무원 노조는 지난 13일부터 대법원 동관 앞에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현수막을 내걸었습니다. 현수막은 검은색 바탕에 "사법부 신뢰 훼손! 조희대 대법원장은 사퇴하라!"라는 문구가 하얀색으로 인쇄됐습니다. 부고를 알리는 게시물 등의 디자인과 동일한 겁니다.
그런데 21일 <뉴스토마토> 취재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대법원 경내에 현수막이 걸린 이튿날(14일) 법원행정처장 명의의 공문을 법원공무원 노조에 보냈습니다. '대법원 청사 내 게시 현수막 자진 철거 요청'이라는 제목의 공문에서 법원행정처는 "대법원 청사 내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 게시대에 게시 중인 현수막을 자진 철거해주시기를 권고드린다"고 했습니다.
2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동관 앞에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
법원행정처는 또 "이와 같은 현수막 게시 행위는 공무원 노동조합 또는 그 조합원의 임금·근무조건·후생복지 등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한 활동에 포함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에서 보장하는 노동조합의 정당한 활동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공무원노조법 4조엔 공무원들의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있는데, 법원행정처는 현수막 게시가 정치활동이라고 본 겁니다.
법원행정처는 그러면서 "법원 청사 내 게시된 현수막은 사법부의 독립성·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침해할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법원공무원 노조는 지금까지 현수막을 철거하지 않고 있습니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 1일 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는 이재명 민주당 후보에 대한 선고를 열고, 무죄를 준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러자 대법원이 대선을 불과 한달 정도 앞두고 심리를 서두르며 정치적 판결을 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정치권과 법조계 일각에선 조희대 대법원이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옵니다.
실제로 법원공무원 노조도 지난 1일 대법원 선고 다음날 성명을 내고 "(이 후보에 대한 판결은)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지 9일 만에 이뤄진 사상 초유의 빠른 선고"라며 "희대의 재판 거래"라고 비판한 바 있습니다. 법원공무원 노조가 조 대법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현수막까지 게시한 건 이런 성명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법원공무원 노조는 현수막의 철거할 생각이 없다는 입장입니다. 노조 관계자는 "사법부의 독립성, 재판의 공정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무너뜨린 건 조희대 대법원장이지 노동조합의 현수막이 아니다"라며 "사법부를 위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조 대법원장은 하루빨리 사퇴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법원공무원 노조는 법원행정처의 현수막 철거 요청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내용을 담은 현수막을 서울·인천·수원·부산·대구 등 전국 22개 법원에 게시했습니다.
<뉴스토마토는> 법원공무원 노조가 법원행정처의 현수막 철거 요청에도 불구하고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를 요구하는 것에 대한 입장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법원행정처는 답변하지 않았습니다.
강예슬 기자 yea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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