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된 간첩)②(인터뷰)“증거는 없었고, 결론은 정해져 있었다”
민주노총 간첩단 사건 연루됐다 무죄 받은 신동훈 대표
"공안당국, 요란한 압수수색…증거는 단 하나도 안 나와"
'증거도 없이 압박·회유…이러면 누구든 간첩될 수 있어”
고부건 변호사 "국보법 사건은 ‘유죄추정의 원칙’ 적용"
2025-05-30 07:00:00 2025-05-30 07:00:00
[제주=뉴스토마토 강석영 기자] 국가정보원은 이른바 ‘민주노총 간첩단 사건’을 대대적으로 수사했지만, 신동훈 제주평화쉼터 대표가 북한과 연루됐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검찰은 신 대표에 대한 구속기소를 강행했습니다. 결국 신 대표는 최근 1·2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공안당국이 멈출 수 있었던 순간은 여러 번 있었습니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수사기관 요청대로 영장을 발부하며 폭주하는 공안수사를 수수방관했습니다. 대공수사권을 이관받을 경찰은 무력했습니다. 지난 23일 제주도에서 <뉴스토마토>와 만난 신 대표와 법률대리인 고부건 변호사는 공안수사의 민낯을 폭로했습니다. 두 사람과의 인터뷰는 고 변호사의 사무실인 법률사무소 부건, 세월호 제주기억관 등에서 6시간가량 진행됐습니다. 
 
다음은 두 사람과 나눈 일문일답입니다.
 
국보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됐습니까. 
 
신동훈 2023년 1월18일 아침, 어머니를 뵈러 가려고 제주공항에 들렀고, 출국장까지 왔는데 정장을 입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였습니다. 국정원 수사관들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휴대전화를 빼앗기고 신체 압수수색을 당했습니다. 압수수색 영장을 보고도 무슨 상황인지 몰랐습니다. ‘간첩’이란 말을 보고 놀랐습니다. 뭔가 착오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휴대전화 비밀번호도 풀어주며 압수수색에 최대한 협조했습니다.
 
압수수색 영장에 적시된 혐의는 무엇이었습니까. 
 
신동훈 영장에 ‘가능성’이란 말이 50여 차례 나오더라고요. 당시 중국 출장을 앞두고 있었는데, 영장에 ‘중국과 연관을 찾기 어려운 신동훈이 중국에서 북한 공작원을 접선할 가능성이 있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저는 사업 때문에 수시로 해외 출장을 다녔고 중국만 50여 차례 오갔습니다. 국정원도 일주일 전인 1월11일 제 출입국기록을 확인했습니다. 영장에서 판사를 속인 겁니다. 또 석모 전 민주노총 조직국장 외 다른 피의자 2명과 연락하지 않은 점도 압수수색의 근거가 됐습니다. ‘비밀통신 수단으로 연락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석 전 국장을 제외하고 나머지 셋은 서로 일면식도 없는데 황당했습니다.
 
지난 23일 제주도 제주시 세월호 기억관에서 만난 신동훈 평화쉼터 대표(왼쪽)와 그를 대리하는 고부건 변호사. (사진=뉴스토마토)
 
이 사건은 국정원이 동시다발적 압수수색을 언론에 공개하며 알려지기 시작했는데요.
 
신동훈 제가 운영하는 제주평화쉼터와 세월호 제주기억관을 압수수색 당했습니다. 압수수색 소식을 듣고 현장에 가니까 기자들이 먼저 와 있었습니다. 국정원이라는 글자가 크게 적힌 옷을 입은 수사관들로 북적였습니다. 그런데 바깥은 요란했지만 내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압수수색 시간은 짧았고, 오히려 포렌식을 기다리는 시간이 길었습니다. 수사관 대부분 앉아 있었습니다. 떠들썩했던 압수수색에도 저와 관련된 증거는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법원도 인정했고, 심지어 검찰과 국정원도 재판 과정에서 인정한 사실입니다.  
 
2023년 3월부터 진행된 국정원 조사는 어떻게 진행됐습니까.
 
신동훈 국정원은 첫 조사부터 조서 바꿔치기를 했습니다. 저는 수사관의 질문을 듣고 한참 생각한 다음 ‘답변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신상과 관련된 평이한 질문 속 예민한 내용이 2개 있었습니다. 석 전 국장과 북한 공작원이 처음 언급된 질문입니다. 저는 똑같이 진술을 거부했는데, 수사관은 유독 두 질문에 대한 답변만 ‘(눈동자를 좌우로 흔들며) 진술 거부’라고 기재했습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내용이어서 1시간가량 항의했고, 결국 삭제됐습니다. 하지만 조사가 끝나고 화장실을 다녀오니까 첫 조서로 뒤바뀌어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수사관을 경찰에 신고했지만, 다들 무혐의 처분을 받았습니다. 첫 조사를 받으며 국정원이 간첩 조작을 시도한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후부터는 경각심을 갖고 이후 조사에 임했습니다.
 
국정원 조사 과정에서 묵비권을 사용한 이유는 뭔가요?
 
고부건 국정원은 압수수색 내내 신 대표의 일거수일투족을 촬영했습니다. 국보법 사건 피의자에게 대단한 죄를 지은 것 같은 인상을 주며 위축시키려는 목적이죠. 국정원에 조사받으러 가면 피의자만 출입구부터 차를 태워 이동시키기도 합니다. 조사실까지 불과 100m도 안 되는데 피의자가 차 안에서 바깥을 못 보도록 커튼을 쳐놓습니다. 진술거부는 이런 수사기관과의 기싸움입니다. 한편으로 국보법 사건은 ‘유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기 때문에 1을 인정하면 10으로 부풀려집니다. 수사 과정에 협조하지 않음으로써 위법수사를 허용하지 않기 위한 의도도 있습니다.
 
국가정보원과 경찰이 2023년 1월18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소재 제주평화쉼터에서 압수수색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정원 첫 조사 이후 3월27일 구속됐고, 보석이 될 때까지 5개월가량 수감생활도 했는데요. 
 
신동훈 국가보안법 사건 피고인들은 독방에서 생활합니다. 방은 주먹 쥐고 양팔을 벌리면 딱 맞는 크기였습니다. 운동시간도 별도로 주어져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없었습니다. 독방에 누워서 매일 ‘나는 왜 여기 있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엔 ‘국보법이란 이런 것이구나’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국보법 사건은 다른 사건과 달리 유죄추정의 법칙이 작동하는 것이라서 공안당국이 마구잡이로 혐의를 던지면 누구든 간첩이 될 수 있습니다. 공안당국은 증거가 없어도 (제가 국보법을 위반했다고) 결론을 정한 겁니다.
 
고부건 압수수색 영장과 구속 영장을 남발한 법원도 문제가 있습니다. 법원은 영장 발부율이 90%가 넘어 ‘영장 자판기’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데, 특히 국보법 사건의 경우 영장 발부율은 100%에 가까울 겁니다.  
 
증거가 없는 수사기관은 어떤 식으로 조사를 이어갔습니까. 
 
신동훈 2023년 3월부터 5월까지 국정원에서 4차례, 검찰에서 4차례, 총 8차례 조사를 받았습니다. 수사기관은 제 사상을 검증하려 했습니다. 북한 정책에 대해 묻거나 철 지난 이적표현물 소지를 문제로 삼았습니다. 국보법으로 처벌하려면 ‘국가의 존립·안전 등을 위태롭게 한다는 인식’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수시로 저를 회유했습니다. 국정원 수사관은 ‘불기소 의견으로 올릴 수 있다’, ‘변호사 없이 이야기하자’고 했습니다. 검찰은 구속취소를 언급하며 진술을 종용했습니다. 검찰 수사에 협조하지 않자 일요일에 소환해 20~30분 만에 조사를 종료하기도 했습니다. 교도소로 돌아가려면 다른 수감자들 조사가 끝날 때까지 검찰 독방에서 기다려야 했는데, 텔레비전도 없고 눕지도 못합니다. 4~5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있게 하며 괴롭히는 겁니다.
 
'간첩단 의혹'과 관련해 압수수색을 마친 국가정보원 관계자들이 2023년 1월18일 오후 서울 정동 민주노총에서 압수물품을 들고 나오고 있다. (사진=뉴시스)
 
민주노총 간첩단 사건이 처음 알려진 시점은 국정원이 대공수사권이 경찰로 이관되던 과도기였습니다. 이 사건과 관련해 당시 경찰의 역할은 어땠습니까. 
 
신동훈 제주경찰청 안보수사과 소속 경찰이 사건 초기부터 저를 찾아왔습니다. 같은 제주도민이라며 정보를 캐내려고 했습니다. 국정원에서 조사를 받을 때 동석했지만, 경찰은 수사에 전혀 관여하지 못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지장을 찍으면 물티슈를 건네주거나 화장실 불을 켜주는 역할에 그쳤습니다.
 
윤석열씨가 12·3 비상계엄 선포 당시 대국민담화에서 ‘종북 반국가세력’을 언급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신동훈 저는 (간첩단 사건에 연루됐기 때문에) 이유를 알고나 죽지만 당시 감옥에 있던 (다른 피고인) 3명은 이유도 모르고 죽겠구나 싶었습니다. 이후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수첩에 적힌 수거 대상에 ‘간첩 혐의로 재판받는 놈들’이 포함된 걸 보고선 정말 구토를 쏟았습니다. 제주 4·3 사건 때하고 똑같았습니다. 구체적 증거나 혐의도 없이 빨갱이로 의심된다는 이유만으로 수만명의 도민들이 끌려가 집단학살 당했잖아요.
 
최근 항소심에서까지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어떤 기분인가요.
 
신동훈 저는 아직도 국보법을 위반했다는 피고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검찰 상고로 여전히 출국이 금지된 상태입니다. 특히 레드콤플렉스가 극심한 제주도에서 저의 삶은 엉망진창이 됐습니다. 국정원의 압수수색이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동네 주민들이 제주평화쉼터와 세월호 기억관 근처에 오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제주에서 빨갱이는 위험한 사람입니다. 빨갱이랑 지내고 돕다가 죽임을 당한 역사가 있지 않습니까. 국정원과 검찰은 제게 사과해야 합니다.
 
제주=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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