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성공적인 공격"이라며 자화자찬했지만, 대미 반격에 나설지 협상에 나설지를 결단하는 주체는 결국 '이란'입니다. 중동 상황이 '확전 시나리오'로 흐르는 최악의 경우 국제유가 급등으로 인해 세계 경제는 다시 한번 혼란에 휩싸일 전망인데요. 대외 의존도가 큰 한국은 그 충격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중동 긴장 최고조…유가·물류 리스크↑
미국이 21일(현지시간) 이란 핵시설 3곳에 대한 공습을 단행하자,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의 텔레그램 공식 계정은 한국시간으로 22일 지난 18일 방송된 그의 발언 일부를 다시 공유했습니다. "미국이 입을 피해는 이란이 입을 피해보다 훨씬 더 클 것"이란 내용입니다.
이란 혁명 수비대는 "이제 우리의 전쟁이 시작됐다"는 글을 올렸고, 이란 국영 TV의 한 앵커는 "지금부터 이 지역에 있는 모든 미국 민간인·군인은 정당한 표적"이라며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에서 5만 구의 미군 관을 받아들이겠다고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고 발언했습니다.
방송엔 중동 전역의 미군 기지를 강조한 그래픽도 노출했습니다. 지도 상단에는 "이란의 사정거리 안에!"란 문구가 삽입됐습니다.
미국의 공습은 제한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세계 주요 에너지 인프라가 밀집한 걸프만 지역에서 분쟁을 더욱 확대할 위험성을 키웠습니다. 바레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요 산유국에는 미 해군 5함대 본부 등 미국의 주요 군사 거점이 집중돼 있습니다.
예멘 후티 반군,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등 추종 세력과 이란이 집결해 미국·이스라엘에 맞서는 '중동전쟁'으로 확전하면, 국제 유가는 급등 수순입니다. 실제 이란·이스라엘 전쟁 직전(6월12일)에는 브렌트유, 두바이유,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모두 60달러대였지만 현재는 70달러를 돌파한 상태입니다. 이 수준에서 추가 상승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입니다.
전 세계의 시선은 '호르무즈 해협'으로 쏠립니다. 이 해협은 세계 석유 물동량의 5분의 1, 천연가스(LNG)의 3분의 1이 통과하는 주요 교통 요충지입니다. 이란 측은 '미국이 공식적·실질적 전쟁에 참전한다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경고해 왔습니다.
바레인에 미국 제5함대가 주둔하고 있는 탓에, 봉쇄가 오래 유지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이란은 해협에 기뢰 설치하는 등의 상호파괴 전략을 감행할 수 있습니다. 수출로 유지되는 자국 경제가 무너지는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세계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겠다는 계산이 작용할 수 있습니다.
앞서 영국계 투자은행 '바클레이스'는 이란의 수출이 절반으로 줄어들면 원유 가격이 배럴당 85달러까지 상승할 수 있으며, 더 큰 충돌이 발생하는 '최악의 시나리오'에서는 가격이 100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고 예상했습니다.
유가가 오르면 해운비 부담도 증가합니다.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지난달 초 1300선에서 이달 2000대로 상승했습니다.
이란 국영방송은 22일 미국의 이란 핵시설 공습 소식을 전하며 "이제 미국인과 미군 기지는 이란의 합법적 공격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화면 왼쪽에 표시된 지도는 중동 지역 내 미군 주요 기지의 위치. (사진=IRIB 방송 소셜미디어 캡처)
내수·수출 이중고에…치솟는 '유가·환율·물가'
내수·수출 부진이라는 '이중고'를 떠안은 한국 경제에 '중동 리스크 고조'는 치명타입니다. 이미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수출 분야는 트럼프발 관세전쟁 영향이 가시화되는 중입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5월 수출입 동향을 보면, 양대 수출국인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수출이 각각 8.1%, 8.4% 줄었는데요.
미국이 25%의 관세를 부과 중인 자동차의 5월 대미 수출은 작년 동월보다 32.0% 급감했습니다. 3월부터 25% 관세를 매긴 철강 대미 수출도 20.6% 감소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기업 비용마저 증가할 거란 점입니다. 한국처럼 에너지 수입 의존도(2023년 기준 93.8%)가 높은 국가는 유가가 오르면, 수입에 필요한 달러 수요가 늘면서 환율이 오르는 경향을 보이는데요. 지난 13일 원·달러 환율은 1355.0원으로 출발했지만,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소식이 전해지면서 장중 한때 1373원(종가 1369.6원)까지 올랐습니다.
결국 환율·유가 동반 상승은 수입 물가와 연동돼, 기업과 가계의 부담을 한층 가중할 전망입니다. 한국은 원유의 70% 이상, LNG 30% 이상을 중동에 의존하고 있으며, 대부분 호르무즈 해협에 의존합니다.
앞서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유가가 10% 오를 경우 국내 기업 비용은 제조업 0.67%, 서비스업 0.17%, 전 산업 0.38% 증가할 걸로 분석했습니다.
지난 2023년 중동에 추가 파견된 미군 병력이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 24시간 대응체계 돌입…"상황 악화 시 긴급 대응"
정부는 이날 중동 사태와 관련해 관계기관 합동 비상대응반 회의를 열고, 중동 현지 상황과 금융·에너지·수출입·해운물류 등 분야별 동향을 24시간 체제로 점검하기로 했습니다. 필요시 사전에 마련된 계획에 따라 즉각적인 대응에 나선다는 방침입니다.
특히 금융시장에서 국내 경제 펀더멘털과 동떨어진 과도한 변동성이 발생할 경우, 신속하고 과감한 조치를 취하기로 했습니다. 에너지 수급 관리에도 만전을 기하겠다는 방침입니다.
수출입과 물류 분야에서는 중동지역 수출 피해 기업에 대한 유동성 지원, 중소기업 전용 선복(화물 적재 공간) 등을 제공합니다. 물류 경색 우려 확대 시엔 임시 선박 투입 등 후속 대책도 마련해 대응할 방침입니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에너지, 수출, 물류, 공급망, 현지 진출기업 등에 미치는 영향을 긴급 점검했습니다.
산업부는 현재까지 국내 에너지 수급에 직접적인 차질은 없으며, 수출입·공급망에도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한국 선박은 정상 운항 중이며 이스라엘 등 중동 의존도가 높은 반도체 공정용 소재 '브롬' 등도 대체 수입이 가능하거나 재고가 충분하다는 판단입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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