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영진 기자]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로 저축은행 업계 전반에 불황기가 계속되면서 인수합병(M&A) 시장도 좀처럼 활기를 띠지 못하고 있습니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PF를 통해 몸집을 키우고 수익을 끌어올렸던 저축은행들이 이제는 PF 부실로 연체율 상승과 대손충당금 적립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수익도 좀처럼 나지 않고 있어 M&A 시장에서 매력이 떨어지는 상황입니다.
1일 저축은행업계에 따르면 OK금융그룹은 시장에 매물로 나온 상상인저축은행과 약 8개월간 인수 협상을 진행했지만 결국 무산됐습니다. 주식매매계약(SPA) 직전 단계까지 이르렀지만, 세부 조건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 2023년
우리금융지주(316140)와 인수 협상이 불발된 데 이어 상상인저축은행 M&A가 두 번째로 좌초된 셈입니다. 또한 OK금융은 페퍼저축은행 인수도 추진 중이지만 가격 협상 과정에서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매수자와 매도자 간 가격 협상이 길어지는 이유는 부동산 PF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저축은행들은 부동산 시장이 비교적 안정됐던 시기를 지나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PF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당시엔 부동산 경기 호황과 맞물려 PF를 통해 자산을 빠르게 늘릴 수 있었고 역대급 순이익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79개 저축은행 자산 규모는 2018년 말 69조원 수준에서 2022년 말 139조원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당기순이익도 △2018년 1조1185억원 △2019년 1조2723억원 △2020년 1조4054억원 △2021년 1조9654억원 △2022년 1조5957억원 등으로 꾸준히 증가세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2022년 말 '레고랜드 사태' 이후 부동산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2023년에는 5559억원 당기순손실을 기록했고, 이후에도 부동산 경기 침체가 지속되며 손실 기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매도자 입장에서는 저축은행의 규모가 커진 만큼 가격을 쉽게 낮추기 어렵습니다. 이전에도 증자 등으로 자금을 투입한 전력이 있고, 과거 충분한 수익을 거둔 경험도 있기 때문에 지나치게 낮은 가격에 매각하면 손실이 커질 수 있습니다. 반면 매수자 입장에서는 저축은행 수익성과 연체율이 악화된 상황에서 추가 자금 투입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높은 가격으로 협상하기 어려운 처지입니다.
결국 저축은행 M&A는 피인수기업의 재무 상태가 양호하거나 매각 가격이 낮은 곳에서만 이뤄지는 형국입니다. 교보생명은 지난 4월 SBI저축은행 인수를 결정했습니다. SBI저축은행은 부동산 PF 호황기에 PF 비중을 크게 늘리지 않고 소매금융을 중심으로 운영해 건전성이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또한 KBI국인사업은 지난달 적기시정조치를 받은 라온저축은행을 인수하기로 밝혔습니다. 라온저축은행은 자산건전성이 좋지 않지만 매각가가 100억원 수준으로 상상인저축은행(1200억원 내외)과 페퍼저축은행(2000억원 내외)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합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3월 저축은행 자율 M&A 활성화를 위해 구조조정 범위 확대 등 2년간 M&A 규제를 완화하는 조치를 시행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6·27 부동산 규제,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3단계가 시행되면서 부동산 시장이 주춤한 상황입니다. 저축은행 업황이 빠르게 개선되기 어려운 상황인 만큼 주인을 기다리는 상시 매물만 10여곳에 달합니다.
저축은행업계 관계자는 "부동산 시장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저축은행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매수자와 매도자 간 가격 협상이 관건인데, 매수자도 마냥 낮출 순 없다"고 말했습니다.
유영진 기자 ryuyoungjin1532@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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