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ELS 자율배상 시 제재 참작' 결국 공염불
2025-08-25 14:14:09 2025-08-25 16:04:32
[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금융당국이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의 불완전판매에 대한 과징금 산정 기준을 '판매금액'으로 설정한 가운데 제재 불확실성이 더욱 커졌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당초 당국은 홍콩ELS를 판매한 금융사가 불완전판매 피해 배상을 충실히 이행할 경우 제재 결정에 참작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금융사들은 책임 소재가 가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자율배상에 나서기까지 했는데도 불구하고 천문학적 규모의 과징금까지 물게 생겼습니다. 
 
'배상 노력 땐 제재 감경' 약속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권 노사는 금융당국이 홍콩 ELS 사태의 과징금 산정 기준을 '판매수수료'가 아닌 '판매액(투자원금)'으로 설정한 것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홍콩ELS 사태를 두고 노사가 같은 목소리를 낸 이례적인 일입니다. 
 
판매금액이 과징금 기준이 될 경우 은행권의 ELS 판매 규모 약 15조4000억원을 감안할 때 과징금이 7조원(기준액의 최대 50%)을 넘을 수 있습니다. 판매금액이 아닌 판매수수료 기준 예상 최대 과징금은 900억원 수준에 그쳤습니다. 
 
당초 당국은 홍콩ELS 관련 자율배상에 나서는 금융사에 대해 제재를 감면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불완전판매에 따른 금융소비자 피해를 신속히 줄이기 위한 일종의 인센티브입니다. 결국 은행권은 ELS로 손실을 입은 투자자에게 약 1조3000억원 규모의 자율 배상을 실시해 99% 이상 배상 절차를 마쳤습니다. 
 
홍콩ELS 판매사들은 당국의 가이드라인을 기반으로 배상을 진행했습니다. 금융감독원은 판매사와 투자자 간 분쟁이 조기에 해결될 수 있도록 판매사 검사 결과 확인된 내용 등을 기초로 분쟁조정기준(안)을 마련한 바 있습니다. 
 
판매사의 적합성 원칙과 설명 의무, 부당 권유 금지 등 3대 판매 원칙 위반 여부에 따라 손실액의 20~40%(기본 배상 비율)를 배상하도록 했습니다. 불완전 판매를 유발한 ‘내 통제 부실 책임’ 배상 비율은 판매사(은행·증권)와 판매 방식(대면·온라인)에 따라 3~10%p 가산하도록 했고, 투자자와 판매사의 책임 사유에 따라 45%p를 가감 조정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당국이 제시한 가이드라인에 맞춰 자율배상을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과징금이 부과될 가능성이 큰 상황입니다. 은행권 관계자는 "배상을 마무리했는데 과도한 과징금은 허탈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불완전판매 이슈에 대한 책임을 지고 행원들이 일일이 연락하고 한명씩 설득해가며 자율 배상한 노력들이 사라진 것과 다름없다"고 했습니다. 
 
금융감독 규정에도 제재 참작 사유가 명시돼 있습니다. '금융기관 검사 및 제재에 관한 규정' 제23조에는 '사후 수습 노력'을 기관 및 임직원 제재 감면 사유로 정하고 있는데요. '금융기관 검사 및 제재에 관한 규정 시행세칙' 제46조에도 '금융거래자의 피해에 대한 충분한 배상 등 피해복 노력 여부'를 제재 시 참작 사유로 정하고 있습니다. 
 
금융감독원은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판매사들이 자율배상에 적극 나설 경우 제재 결정에 참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사진은 금융감독원 내부에서 직원들이 지나다니는 모습. (사진=뉴시스)
 
정권 바뀌자 법률 해석 달라져 
 
금융소비자보호법 제57조는 불완전판매 등 위반 행위로 체결된 계약에서 금융사가 얻은 수입 또는 이에 준하는 금액의 50% 이내에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간 당국 내부에선 '계약으로 얻은 수입'을 판매 수수료로 해석할지, 전체 판매금액으로 볼지를 두고 논의를 해왔습니다.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소비자보호 강화 기조에 맞춰 판매액으로 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로써 '제재 감경 사유로 보겠다'던 금융당국 방침은 공염불이 됐습니다. 사실 과거 대규모 금융사고가 불거졌을 당시 자율배상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제재 감경에 반영되지 않은 전례가 있습니다. 지난 2020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당시 판매금액이 가장 많은 하나·우리은행은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 개최 전 수백억원을 선배상하고, 배상위원회를 꾸려 배상 절차를 진행했음에도 제재를 낮추는 데 실패했습니다. 
 
은행별로 홍콩ELS 판매금액을 살펴보면 KB국민은행이 8조1972억원으로 가장 많고, 신한은행 2조3701억원, NH농협은행 2조1310억원, 하나은행 2조1183억원, 우리은행 413억원 순입니다. 단순 계산으로는 8조원에 육박하는 과징금 제재를 받을 수 있는데, 대규모 과징금이 현실화될 경우 자본 비율 하락이나 배당 축소 등 재무 상황에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사후 수습 노력을 통한 제재 감면 규정은 기존에도 있었지만 사문화된 조항이라고 할 수 있다"며 "사회 분위기와 정부 정책 기조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 측면이 크다"고 했습니다. 다른 관계자는 "제재 참작 관련 제도가 제대로 정착됐다고 보기 힘들다"며 "당국이 구두 개입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수단에 그쳤다"고 지적했습니다. 
 
금융당국은 판매 과정에서의 투자자 보호 조치 이행 여부, 과징금 산정 기준 등을 바탕으로 제재 수위를 확정할 계획이지만 아직 구체적인 일정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금융당국 한 관계자는 "불완전판매 원천 차단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고자 하는 것이고, 판매사 입장에서는도 과징금 기준이 과도하다는 인식이 있는 것을 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과징금 책정에서는 자율배상안에 적극 참여한 부분에 대해서는 고려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3월15일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 모임 회원들이 투자 원금 전액 배상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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