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계엄·내란을 통해 군의 정치적 중립과 민주적 통제에 취약점이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한국에서 군사쿠데타 시대는 끝났다고 믿었는데, 국방 조직이 불법 계엄에 동원됐죠. 국방부가 '내란극복·미래국방 설계를 위한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를 가동하고 있습니다. 국방 업무 체계 전반을 점검하기 위해서죠. 그 중 헌법가치 정착 분과위원회에 필자도 위원으로 참여하는데요. 이 분과가 지난달 28일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에서 세미나를 열었습니다. 필자는 '문민 통제가 아니라 국민의 통제 개념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요지로 발제를 했습니다. 발제 요지를 소개합니다.
국방부 내란극복·미래국방 설계를 위한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 헌법가치 정착 분과위원회가 지난달 28일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 센터에서 '국방관련 헌법가치 정착 방안'을 주제로 특별 세미나를 개최했다. (국방부 제공, 뉴시스 사진)
이 문제를 논의하려면 '문민 통제'라는 용어부터 바로잡아야 합니다. 영어권에선 'civilian control of the military'라고 하는데요. 이것은 민간인이 군을 통제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국민이 선출한 권력이 적법 절차에 따라 군을 통제한다는 민주공화국의 기본 원리를 뜻합니다. 군만의 특수한 의무도 아닙니다. 군과 행정관료 조직, 검찰, 경찰 등 모든 국가기관에 적용되는 민주주의 원리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사용하는 '문민 통제'라는 용어는 말의 본뜻을 온전히 담지 못합니다. 태평양전쟁 뒤 일본을 점령한 맥아더 사령부가 'civilian control'을 일본에 적용하는데요. 이때 동양에 '문(文)과 무(武)'를 구분하는 전통이 있다는 일본인의 조언을 듣고 '문민 통제'라고 번역했다고 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문·무 구분은 무의미하죠. 이 번역 때문에 문민 통제를 이야기하면 "군이 왜 민간인에게 통제받아야 해?"라고 오해하게 됐습니다.
civilian control은 '국민의 통제' 또는 '민주적 통제'라는 개념으로 재정립해야 합니다. 국방부부터 용어를 바꾸면 좋겠습니다. 당장 생소하면 '국민의 통제'라고 적고 괄호 안에 '문민 통제'를 병기해도 됩니다.
국방 업무에 대한 국민의 통제는 어떻게 발전시켜야 할까요? 국방부는 그동안 군인이 맡던 주요 보직에 민간인 공무원 기용을 꾸준히 늘렸습니다. 국방개혁법 제정 이후 국·과장급 문민화 비율을 높였고, 문재인정부 시기에 실·국장급까지 확대했습니다. 2025년에는 64년 만에 순수 민간인 출신 국방부 장관을 임명했습니다. 국방 조직에서 군인과 공무원의 균형을 회복하고 조화를 이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다만 인사 구성은 민주적 통제의 일부이지, 전부가 아님을 알아둬야 합니다.
민주공화국에서 모든 정부 부처는 첫째, 업무에 국민 의사를 반영하며 둘째, 업무 전문성을 높인다는 두 가지를 목표로 세워야 합니다. 국방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첫째, 국방 업무에 국민 의사를 잘 반영하고 둘째, 군사 전문성을 강화해 외적의 위협에 대비해야 합니다.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두 목표를 동시에 추구해야 합니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20일 제35사단 신병교육대대를 방문해 장병들을 격려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뉴시스 사진)
그동안 한국 국방 분야에서는 '국민 의사를 업무에 반영한다'는 인식이 약했습니다. 오랫동안 군인 출신 장관을 임명한 데 따른 취약점이죠. 때로는 국방부가 '군을 대변하는 조직'처럼 인식되기도 했습니다. 이제 두 가지 업무 목표를 동시에 달성해 나가야 합니다.
첫째로, 국회의 국방 업무 관여 체계를 정비해야 합니다. 미국은 국방수권법(NDAA)과 같이 의회와 정부 사이에 군사력 사용 절차를 명확히 해뒀습니다. 우리는 전임 정부 때 우크라이나 군사 인력 파견을 놓고 국회 동의 대상이냐 아니냐를 다투기도 했죠. 국회를 통해 국민 의사를 반영하되, 업무 기밀도 유지하는 방법을 체계화해야 합니다.
둘째로, 시민사회와 소통을 강화해야 합니다. 국방 공론장을 구성하는 시민단체, 예비역 단체 등을 상대로 국방부가 적극적으로 정책을 설명하고 의견을 청취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 국방부 조직에 시민사회 소통 담당자를 두면 좋겠습니다.
셋째로, 문민 장관 시대를 맞아 국방부 조직과 장관의 군사 전문성을 시급히 강화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군인 및 민간인 출신으로 장관 자문그룹 운영 △합참과 국방부 사이에 업무분장 재점검 △장관 군사보좌관 계급 격상 △국방부 차관 의전 서열 조정 등을 검토하기 바랍니다. 국방부는 군정 업무를 맡고, 합참에 군령 업무를 위임하자고 일각에서 주장하는데요. 그릇된 생각입니다. 군정과 군령을 아울러 국방부의 군사 리더십을 강화해야 합니다.
국민의 통제를 성공시키려면 군이 자율통제 능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사회 다른 영역과 마찬가지로 구성원 스스로 전문 직업인으로서 자부심과 전문성, 윤리의식을 키우지 않는다면, 어떤 개혁도 이룰 수 없습니다.
이를 위해 군이 민주주의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운영하면 좋겠습니다. 콘텐츠의 범위는 △제복 입은 시민 개념 △민군 관계 △헌법과 인권 가치 △항일 독립전쟁 계승 △민주적 리더십과 토론 문화 △국민의 군대 개념의 역사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군이 사회와 단절된 섬 같은 존재가 아니라, 국민 속의 군대임을 강조하는 방향이죠.
12·3 계엄·내란을 통해 군이 입은 상처를 치유하고 신뢰를 회복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문민 통제'라는 잘못된 용어를 버리고, '국민의 통제' 개념을 세워야 합니다. 나아가 국방 업무 발전 방안을 재정립해야 합니다. 국방 업무 전반에 국민 의사 반영 장치를 강화하고, 군사 전문성을 함께 발전시켜야 합니다.

필자 소개/박창식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광운대에서 언론학 석사와 박사를 했다. 한겨레신문 정치부장 논설위원을 지내고 국방부 국방홍보원장으로 일했다. 뉴스토마토 K국방연구소장과 객원논설위원을 맡고 있다. 국방 생태계에서 소통을 증진하는 방법에 관심을 두고 있다. <국방 커뮤니케이션> <언론의 언어 왜곡>과 같은 책을 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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