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안정훈 기자]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와의 협력을 강화하며 D램 시장에서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본격적인 준비에 나섰습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에서 SK하이닉스에 뒤처진 상황에서 차세대 제품인 HBM4 양산 준비가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고, ‘제2의 HBM’으로 불리는 소캠(SOCAMM)에서도 가장 많은 물량을 수주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D램 시장을 중심으로 초격차 회복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반도체대전(SEDEX) 2025’에서 마련된 삼성전자 부스에 고대역폭메모리(HBM) 실물이 전시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4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 2일 5세대인 HBM4의 ‘양산 승인’(PRA)을 마무리했습니다. 내부 품질 검증 절차인 PRA는, 제품 개발이 최종 단계에 도달했음을 뜻하는 과정입니다. 이미 엔비디아 등 주요 고객사에 HBM4 샘플을 공급한 가운데, 본격 양산을 위한 내부 준비를 마친 것으로 해석됩니다.
HBM4 시장 경쟁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으로 분석됩니다. 앞서 엔비디아는 내년 출시를 준비 중인 차세대 그래픽처리장치(GPU) ‘루빈’에 HBM4를 탑재를 준비하고 있으며, 구글 역시 8세대 텐서처리장치(TPU)에 HBM4 도입이 유력합니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내년 하반기부터 HBM 시장에서 HBM4의 비중이 HBM3E를 추월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미 삼성전자는 D램 시장에서의 지위 회복을 위해 HBM 경쟁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전력·발열 문제로 발목이 잡혔던 HBM3E는 전면 재설계해 엔비디아 퀄 테스트를 통과했고, HBM4는 업계 최초로 6세대(1c) D램 공정을 적용하는 등 연이어 승부수를 던지고 있습니다. HBM 경쟁에서 SK하이닉스에 밀리며 D램 시장 2위로 내려앉은 바 있는 만큼 반등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가 주도하는 인공지능(AI) 서버용 모듈 ‘소캠’에서도 경쟁력을 입증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최근 삼성전자는 엔비디아가 내년에 구매할 것으로 예상되는 200억기가비트(Gb) 규모의 소캠2 중 절반 수준인 100억Gb를 수주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SK하이닉스(약 60억~70억Gb), 마이크론(약 30억~40억Gb)보다 높은 수치입니다.
소캠2. (사진=삼성전자)
소캠은 저전력 D램(LPDDR)을 기판 위에 일체형 모듈로 구성하는 서버용 메모리로, 기존 CPU 주변에 개별 저전력 D램 칩을 배치하던 방식과 달리 하나의 묶음으로 구현해 대역폭을 높이고 전력 소모를 줄일 수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삼성전자는 아직 본격적으로 개화하지 않은 소캠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1세대 소캠 상용화 전부터 소캠2를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소캠2가 AI 데이터센터에서 새 메모리의 축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는 가운데 시장에서의 입지를 다질 발판을 닦은 셈입니다.
HBM4와 소캠2에서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했다는 평가 속에 증권가 전망도 긍정적입니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현시점부터는 범용 D램의 공급 가격이 시장 기대치를 넘어서고, 내년 주문형 반도체(ASIC)와 엔비디아향 HBM의 출하량 전망치도 상향 조정되면서 주가의 상승 모멘텀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삼성전자의 반도체 분야 전망을 긍정적으로 내다봤습니다.
결과적으로 엔비디아와의 협업 확대가 삼성전자의 반등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평가도 나옵니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HBM 등 메모리부터 파운드리까지 일원화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업”이라며 “엔비디아로서도 TSMC 외의 파운드리 다변화가 필요한 상황에서 매력적인 카드다. 삼성이 3나노에서 수율 문제로 고생했지만, 비싼 수업료를 내고 공부한 셈”이라고 했습니다.
안정훈 기자 ajh76063111@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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