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로봇패권 경쟁)③석화 불황에 묶였다…로봇 소재 '뒷전'
미래 먹거리 로봇 소재 R&D 후순위로 밀려
일본·중국은 10년 전부터 '소프트 로보틱스' 선점
재무 구조 악화에 향후 공급망 미스매치 심화 우려
2026-03-12 12:00:00 2026-03-12 12:00:00
이 기사는 2026년 03월 10일 16:56  IB토마토 유료 페이지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글로벌 휴머노이드 시장이 격변의 시기를 맞고 있다. 중국은 과잉투자를 막기 위해 인위적 구조조정이라는 승부수를 던졌고, 일본과 함께 소재 강국으로서 로봇의 '근육'과 '피부'에 해당하는 핵심 소재 시장을 선점하며 하드웨어 주도권을 쥐고 있다. 반면 한국은 석유화학 업황 부진과 연구·개발(R&D) 지연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해 있다. 이에 <IB토마토>는 중국의 정책 선회가 우리 산업에 던지는 반전의 기회를 짚어보고, 소재·부품·제조 기업이 '원팀'으로 미래 로봇 패권을 거머쥘 전략을 모색해본다.(편집자주)
 
[IB토마토 권영지 기자] 국내 석유화학·합성고무 산업을 이끄는 '소재 강자'들이 전례 없는 업황 악화와 재무구조 악화라는 이중고에 직면하며 미래 로봇 시장을 겨냥한 신사업 투자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국내 주요 기업들은 대부분 로봇용 고기능성 소재 연구개발(R&D) 투자를 내년 이후로 미루는 분위기다. 로봇 양산 시대가 코앞으로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소재사들이 당장의 생존을 위한 비용 절감에 매몰되면서 자칫 글로벌 로봇 소재 공급망에서 소외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 (사진=연합뉴스)
 
업황 부진이 부른 '투자 절벽'…재무건전성 방어에 '혈안'
 
10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이 로봇 소재라는 신사업을 눈앞에 두고도 발을 떼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극심한 재무 여력 급감에 있다. 중국의 저가 공세로 인해 범용 제품의 수익성이 바닥을 치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수요 침체까지 겹치며 석화 업계의 불황은 장기화하는 양상이다.
 
실제로 롯데케미칼(011170)의 경우 지난해 매출 18조 4830억원을 기록했으나, 영업손실은 9145억원에 달하며 대규모 적자를 냈다. 이에 따라 롯데케미칼은 비핵심 자산을 정리하고 범용 사업 비중을 축소하는 등 재무건전성 확보를 위한 고강도 사업 재편에 사활을 걸고 있다. 롯데 측은 석유화학 불황이 2030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내부 판단 아래, 단기 수익과 연결되지 않는 로봇용 신규 설비투자에 대해 매우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금호석유(011780)화학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중국발 공급과잉 속에서 고부가 스페셜티 제품으로 수익성을 방어하고는 있지만, 현금흐름 관리와 재무건전성 유지가 경영 최우선 과제로 부상했다.'비용 절감' 기조 속에서 신사업 투자는 뒤로 밀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석유화학 업계의 한정된 투자 재원이 '전기차용 소재'라는 특정 분야에만 과도하게 집중되면서, 로봇 산업 등 차세대 시장 진출을 가로막는 비대칭적 구조가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현재 금호석유화학과 LG화학(051910) 등 주요 기업들은 내연기관차보다 약 30% 더 무거운 전기차의 하중을 견디고 연비와 마모 성능을 동시에 높여주는 고성능 합성고무인 '솔루션 스티렌 부타디엔 고무(SSBR)'의 기술 고도화와 양산 체제 구축에 전력을 다하는 모습이다.
 
이러한 쏠림 현상의 배경에는 수익성과 시장 성장성이 자리 잡고 있다. SSBR은 기존 범용 SBR 제품과 비교해 판매가가 약 25~30%가량 높아 기업의 수익성을 방어할 수 있는 핵심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꼽힌다. 실제로 글로벌 친환경 타이어 시장은 2025년 약 214억 7000만달러 규모에서 2035년에는 517억 7000만달러로 10년 사이 2배 넘게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기업 입장에선 당장 '돈이 되는' 곳에 자본을 우선 배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금호석유화학은 전기차 전환 가속화에 대응해 SSBR 생산능력(CAPA)를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으며, LG화학 역시 연간 약 8만톤 규모의 SSBR 생산 능력을 바탕으로 중국 등 글로벌 전기차 타이어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문제는 이처럼 '투자 여력'이 전기차 및 친환경 타이어 소재로 선제 배분되다 보니, 로봇 전용 신규 라인 구축이나 관련 소재 개발은 논의 단계에서부터 후순위로 밀려나기 쉬운 구조적 한계에 부딪혔다는 점이다. 로봇용 소재가 향후 거대한 시장을 형성할 것이라는 시그널은 감지되고 있지만, 당장의 실적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전기차라는 확실한 카드에만 집중하는 사이 미래 로봇 시장 선점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일본·중국 이미 '소프트 로보틱스' 결실…기술 격차 심화
 
한국이 주춤하는 사이, 일본과 중국 기업들은 이미 로봇용 고무 및 소재 분야에서 확고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일본의 브리지스톤 등은 2010년대부터 타이어 기술을 응용해 로봇용 고무 액추에이터와 인공 근육 등 '연성 구동 기술'을 연구해 왔으며, 최근에는 이를 활용한 소프트 로보틱스 상용화 사례를 쏟아내고 있다.
 
중국의 닝보 퉁푸(Ningbo Tuopu) 역시 자동차의 진동과 소음을 잡는 NVH 부품 기술을 바탕으로 휴머노이드용 액추에이터 충격 흡수 소재 분야로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이들은 이미 글로벌 완성차 및 로봇 제조사와 협업하며 공급망을 선점 중이다.
 
반면 한국은 같은 기간 R&D 자원을 타이어와 일반 자동차 소재에만 쏟아부었을 뿐, 로봇 특유의 움직임을 지원하는 고유의 소재 데이터베이스 구축은 미비한 실정이다. 글로벌 소프트 로봇 시장이 향후 10년간 약 18배(2034년 353억 3000만달러 전망), 연평균 약 34.8%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에서, 소재 기술력 부재는 뼈아픈 실책이 될 수 있다.
 
국내 로봇 제조사들은 양산 단계에서 국산 소재를 채택하고 싶어 하지만, 정작 국내 소재사들의 카탈로그에는 로봇에 특화된 제품이 거의 없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휴머노이드나 협동 로봇의 관절부 충격 흡수재, 로봇 손·피부용 유연 소재 등은 현재 해외 의존도가 매우 높은 상태다. 
 
이러한 '공급망 미스매치'는 로봇 양산 시기에 소재 수급 리스크와 원가 경쟁력 약화로 직결된다. 특히 테슬라와 같은 글로벌 선두 주자들이 로봇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통합 내재화하는 추세를 고려할 때, 핵심 소재를 외산에 의존하는 한국 로봇 산업은 장기적으로 구조적 약점을 안고 갈 수밖에 없다.
 
투자업계에서는 로봇이 자동차에 이은 새로운 합성고무 수요 분야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합성고무 수요의 60~65%가 자동차에 집중돼 있지만, 로봇용 개스킷, 씰, 패드 등에 들어가는 고기능성 고무 수요가 폭발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비록 롯데케미칼이 로봇과 우주항공 분야로 스페셜티 소재 개발 방향을 잡고 일부 테스트 판매에 나섰지만, 대규모 투자를 통한 시장 선점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금호석유화학 역시 R&D 투자액을 점진적으로 늘려왔지만, 여전히 주력은 SSBR 고기능화와 NB라텍스에 머물러 있는 상태다.
 
최근 벌어진 미국과 이란 전쟁도 국내 석유화학사들의 신사업 진출을 가로막고 있다. 국내 한 대형 석유화학사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미국과 이란 전쟁으로 석유가 들어오지 않고 있다. 재고가 한달 정도 밖에 안 남은 상태라 업계 전반이 본업으로 수익을 내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고객사 주문도 들어오지 않은 휴머노이드 부품 소재를 개발하는 것은 아직은 먼 이야기"라고 말했다. 
 
권영지 기자 0zz@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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