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디지털자산 전문 매체 <디지털애셋>에서 작성했습니다.
[디지털애셋 박범수 기자] 전통금융사들이 가상자산(디지털자산)시장 진입을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이는 금융과 디지털자산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국내에서도 금융사의 디지털자산거래소 인수 등이 진행되면서 이런 흐름이 나타나는 중입니다. 다만 국내에서는 2017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금가분리(금융과 가상자산 분리)' 정책 기조 탓에 해외보다는 이런 흐름이 더딘 편입니다. <디지털애셋>이 전통금융시장과 디지털자산시장의 결합 사례를 살펴보고, 두 시장이 양방향으로 융합되고 있는 현상을 분석했습니다.
전통금융과 디지털자산시장의 융합을 시각화했다.(이미지=디지털애셋)
'무기한선물'로 회색지대 공략
전통금융사들이 디지털자산시장에 진입하는 사례는 주로 전통금융상품이나 자산을 블록체인에 올리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 연결고리가 되는 건 무기한선물 계약입니다. 무기한선물이란 디지털자산시장의 특수한 상품으로, 만기가 존재하지 않고 대신 펀딩비라는 구조를 통해 가격 차이를 조정합니다. 펀딩비는 거래소가 이용자의 포지션 비율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이용자에게 부담하는 수수료입니다. 만기가 없는 구조이고 규제 회색지대에 있어 주요 전통금융사들은 시범적으로 무기한선물 계약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의 디지털자산거래소 EDX마켓(EDXM)은 자회사 인터내셔널 법인을 통해 4월 초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원달러 환율 추종 무기한선물 계약을 출시할 계획입니다. 이 상품은 기존 역외선물환(Non-Deliverable Forward, NDF) 상품을 블록체인에 올리는 구조인데요. 고노 카이 EDXM 인터내셔널 최고경영자(CEO)는 "스테이블코인 무기한계약은 은행 거래 없이 실시간 결제가 가능하고 포지션을 체결하는 데 드는 비용도 훨씬 저렴해서 NDF보다 훨씬 효율적"이라고 말했습니다. EDXM은 2022년 9월 시타델증권, 찰스슈왑, 피델리티 등 월가 전통금융사들이 합작해 만든 기관용 디지털자산거래소입니다. 전통금융사들이 손을 잡고 디지털자산 시장을 향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셈입니다.
S&P글로벌도 지난 18일 "S&P500 지수를 기반으로 한 무기한선물 계약을 하이퍼리퀴드에서 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이퍼리퀴드는 DEX(Decentralized Exchange·탈중앙화거래소)로, 중개자 없이 개인 간 거래가 이뤄집니다. 캐머런 드링크워터 S&P다우존스지수 최고제품 및 운영책임자는 이번 계약 출시에 대해 "디지털 거래 환경에서 핵심 벤치마크의 접근성과 활용도를 확대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습니다.
증권사, 은행 등 금융사들의 업종을 불문한 적극적인 사업 확장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미국의 대형은행 모건스탠리는 지난 19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수탁사 등 구체적 내용이 담긴 BTC(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증권신고서를 제출했습니다. 미국 대형 수탁사 스테이트스트리트도 지난 1월 토큰화 금융을 지원하는 디지털자산 플랫폼을 출시했습니다. 증권시장에선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모회사 인터컨티넨털익스체인지(ICE)가 글로벌 디지털자산거래소 OKX에 지분을 투자(규모 미공개)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의 디지털자산거래소 크라켄.(사진=챗GPT)
크라켄, 리플랩스, 서클의 도전
반대로, 디지털자산 기업들도 활발하게 전통금융 분야에 진출하고 있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지점은 금융의 중심으로 평가받는 은행업에 진출을 시도하는 사례인데요. 대표적으로 미국의 디지털자산거래소 크라켄의 연방준비제도(Fed, 연준) 계좌 승인이 꼽힙니다.
크라켄의 은행 자회사 크라켄파이낸셜은 지난 4일 연준으로부터 제한적이지만 마스터계정 개설을 승인받았습니다. 결제 접근만 허용하는 제한형 계정 승인이긴 하지만, 디지털자산거래소 중 이런 승인을 받은 건 크라켄이 최초입니다. 신시아 러미스 공화당 상원의원은 "크라켄의 계정 확보로 21세기 금융 시스템이 새롭게 규정됐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크라켄뿐 아니라 XRP(리플) 개발사 리플랩스와 스테이블코인 기업 서클도 지난해말 미국 통화감독청(OCC)으로부터 신탁은행 설립 예비인가를 받았습니다. 조너선 굴드 OCC 청장은 지난 17일 <월스트리트저널>에 "새롭게 진입하는 업체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며 우호적 태도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디지털자산거래소 코인베이스는 미국 빅테크 기업 7곳(M7) 주가를 추종하는 무기한선물 상품을 미국 외 지역에서 출시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단일 플랫폼에서 전통금융상품과 디지털자산을 한 번에 거래하는 '슈퍼앱'도 추진 중입니다.
제도권 바깥에 있는 탈중앙화거래소(DEX)들도 무기한선물을 이용해 전통자산 거래 수요를 흡수하기 위해 뛰고 있습니다. DEX인 라이터, 팬텀 등은 삼성전자, 하이닉스 등 주요 국내 주식을 추종하는 무기한선물을 출시해 현재 거래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바이낸스도 한국 증시 ETF, 일본 증시 ETF 추종 무기한선물을 출시했습니다.
미래에셋의 코빗 인수 ‘주목’
국내에서 금융과 디지털자산 융합으로 꼽히는 사례는 미래에셋컨설팅의 디지털자산거래소 코빗 인수입니다. 미래에셋은 지난 2월 코빗 지분 92.06%를 약 1335억원에 취득하기로 했습니다. 시장에서는 미래에셋의 목표가 하나의 플랫폼에서 다양한 자산을 다룰 수 있는 슈퍼앱을 만들려는 것인데, 코빗 인수도 이를 위한 인프라 확보 차원으로 보고 있습니다. 현재 코빗은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에 미래에셋 인수 관련 임원변경 신고를 했고, 미래에셋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기업결합 심사를 받는 중입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 사례를 제외하고는 특별히 주목할 만한 시장 융합 사례가 등장하지 않고 있습니다. 2017년부터 이어진 '금가분리' 기조 때문인데요. 현재는 금가분리 완화를 뒷받침하고 예측가능성을 높여줄 기본법 입법마저 지연되고 있습니다. 해외에선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데 반해 국내 전통금융사와 가상자산업계는 운신의 폭이 여전히 좁은 셈입니다. 시장에서는 미래에셋의 코빗 인수 등을 계기로 금가분리 완화 기조가 본격화할 수 있을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 김단 법무법인 로백스 변호사는 "개인 위주의 국내 디지털자산시장 특성상 투기적 위험이 금융으로 전이될 걸 우려해 금가분리가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지금은) 디지털자산과 전통금융이 융합하는 글로벌 추세를 따른 규제 설계가 필요하다"고 짚었습니다.
박범수 기자 cmsbumsu@digitalasset.wo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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