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재선거'서 다시 '부정선거'로…잠실 집회 흔든 '대진연 색출' 소동
'재선거' 외치던 현장, '부정선거' 구호로 선회
경찰 향한 '중국 공안' 의혹에 현장 대응 변화
선수·기자까지 의심…확산되는 '불신의 풍경'
2026-06-08 14:57:52 2026-06-08 17:10:08
[뉴스토마토 신유미 기자] '재선거 요구'라는 단일 대오를 유지하겠다던 잠실 올림픽공원 집회 현장에 주말을 지나면서 다시 부정선거 음모론이 등장했습니다. 현장에선 진보 계열 학생단체인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침투설'까지 확산, 시위 참가자들이 서로를 프락치로 의심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부정선거를 둘러싼 음모론이 또 다른 음모론을 낳으며 현장을 잠식하는 모습입니다. 현장의 구호도 결국 "부정선거"로 회귀했습니다.
 
8일 오전 10시 서울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서 '재선거'를 요구하는 시위가 나흘째 지속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대진연 침투설' 번지자…'재선거'서 '부정선거'로
 
8일 오전 10시, 올림픽공원엔 경찰 추산 약 1100명의 사람들이 모여 "부정선거, 재선거" 구호를 외쳤습니다. 이들은 지난 5일 오후부터 6·3 지방선거의 개표소인 이곳에 모여 나흘째 시위 중입니다. 주말까지는 주로 재선거 세 글자만 외치며 부정선거 세력과는 선을 그은 모습이었지만, 이날 현장에선 다시 부정선거라는 구호가 추가됐습니다. 현장에는 '사전선거를 폐지하고 수개표를 실시해야 한다'는 문구도 심심치않게 눈에 띄었습니다.
 
부정선거 구호가 제창된 데에는 또다른 음모론이 가세했기 때문입니다. 당초 집회가 시작된 직후 참가자들은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따른 재선거 요구에 집중하며 "재선거" 구호를 앞세웠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올림픽공원 현장에는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해 온 인사들과 단체들이 잇따라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보수 성향 유튜버와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물론, 모스 탄(한국명 단현명) 미국 리버티대 교수 등 부정선거를 주장해 온 인물·단체들도 현장을 찾았습니다. 이들의 발언과 통성기도, 집회 참여가 이어지면서 현장의 관심도 단순한 재선거 요구를 넘어 선거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확대되는 분위기였습니다.
 
이런 가운데 7일 밤부터는 이른바 '대진연 침투설'까지 확산됐습니다. 일부 참가자들은 "재선거" 구호만 외치자고 주장하는 자원봉사자들을 '대진연'와 연관 짓기 시작했고, 현장에서는 서로를 향한 의심과 공방이 이어졌습니다. 구호를 재선거로 통일, 부정선거와 선을 긋는 건 시위 참가자들을 이간질하려는 대진연의 계획이라는 주장이 나았다는 겁니다. 구호를 재선거로 통일하려던 온건파 참가자들을 향해선 '대진연 프락치'라는 의심까지 성행했습니다. 참가자들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기존의 "재선거" 구호는 다시 "부정선거 재선거"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우파 시민단체 소속으로 지난 5일부터 매일 현장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는 한 여성(29)은 "아직 근거는 못 찾았지만 일부 자원봉사자들의 얼굴과 대진연 회원을 대조한 사진이 디시인사이드 '미국정치갤러리'에 올라왔다"며 "자원봉사를 하는 저도 대진연으로 오해를 받아 욕을 많이 먹었다"고 했습니다. 이어 "자원봉사자들도 그런 비난을 받으니 힘이 빠지기 시작했고, 결국 이제는 부정선거라는 구호를 외치게 됐다"고 했습니다. 
 
다른 참가자도 "모두가 부정선거라는 구호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지금 현장엔 주최 측이 없는 만큼 자신이 자유롭게 외치고 싶은 구호를 강제로 통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오전 10시20분쯤에는 올림픽공원 1-5 게이트 앞에서 시위 참가자들이 핸드볼 선수들의 가방과 짐을 검사하는 소동도 있었습니다. 경기를 앞두고 감독과 중학생 선수들이 공을 꺼내 가려는 과정에서 빚어진 일입니다. 시위대는 공을 꺼내 가게 하는 건 허락했지만, "이 사람들이 핸드볼 선수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느냐", "선수를 가장한 선관위 직원이 섞여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막아섰습니다. 그러면서 학생들의 짐과 소지품을 샅샅이 뒤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 남성 참가자는 "양말도 벗겨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가 경찰로부터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받았습니다. 
 
8일 서울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서 '재선거'를 요구하는 시위가 나흘째 지속되는 가운데 '대진연은 재선거' '우리는 부정선거 재선거' 등의 글이 붙어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중국 공안' 몰이에…마스크 벗은 경찰들
 
이런 무차별적인 낙인찍기와 음모론 속에선 경찰도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시위 첫날부터 일부 참가자들은 경찰을 향해 신분증을 요구하거나 마스크를 낀 경찰들에겐 "중국 공안경찰 아니냐"라면서 시비를 걸기도 했습니다. 이런 논란을 의식한 듯 이날 경찰들은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모두 벗은 모습이었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일부 과격한 참가자들이 현장 경찰을 향해 '중국인 아니냐'며 대놓고 조롱하고, 그제는 세 시간 동안 근무 교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정도로 경찰관을 괴롭히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며 "이들을 최대한 자극하지 않고 마찰을 줄이고자 선글라스, 마스크 착용에 대해서는 현장 기동대의 자율적 판단에 맡기라는 지침을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일선 경찰은 "마스크는 경찰 얼굴 사진이나 영상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는 경우가 많아 인권 보호를 위한 것이기도 하고, 온종일 뙤약볕 아래 있으면 얼굴이 따갑기 때문에 착용하는 것"이라면서도 "최근 5년간 마스크를 벗으라는 지시는 받아본 적이 없다. 하지만 투용용지 부족은 국민 참정권과 관련한 민감한 문제이기도 하고, 자꾸 중국 경찰이라고 시비가 붙다 보니 일단은 시위 참가자들이 원하는 방향(마스크와 선글라스 탈의)으로 들어주는 방향이 된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8일 오전 10시 서울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서 집회 참가자들이 중학생 핸드볼 선수에게 몰려들어 짐을 검사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한편, 현장에선 탈정치를 주장하며 '시위대'로 불리기를 거부하는 모습도 있었습니다. 곳곳엔 '우리는 시위가 아니기에 피켓을 사용하지 않는다', '언론은 시민을 시위대로 본답니다' 등의 문구가 붙어 있었습니다. 때문에 참가자들을 어떤 언어로 규정하고 설명할 것인지를 두고 현장에서도 갑론을박이 빚어지기도 했습니다.
 
부산에서 왔다는 한 어르신(80)은 "친구들에게 여기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시위하고 있다고 설명하기 위해 사진을 찍고 공유하려는데, 이 친구들(자원봉사자)들이 시위대라고 부르는 것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더라"라면서 "시위가 무슨 부정적인 뜻을 가진 건 아닌데, 그러면 이 이 모습을 뭐라고 불러야 하느냐"면서 당혹스러워했습니다.
 
신유미 기자 yumix@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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