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평론가는 무대 뒤에 서야 한다
2026-07-24 06:00:00 2026-07-24 06:00:00
유시민 작가가 유튜브 ‘매불쇼’에 나와 이재명 대통령의 노선을 두고 매우 위험한 선택이며 실패로 끝날 것이라고 단언했다. 파장은 컸다. 청와대가 직접 수사·기소 분리 원칙에 흔들림이 없다며 진화에 나섰고, 여권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그의 발언 하나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평론가의 말 한마디가 국정 운영의 논란거리로 번지는 이 풍경, 과연 온당한가.
 
정치는 무수한 변수의 함수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국정원 보고부터 부처 실무 데이터, 여야 물밑 협상까지 거의 모든 정보가 수렴하는 지점이다. 반면 평론가는 그 정보의 극히 일부, 그것도 편집된 형태로만 접한다. 관찰자는 관찰자의 한계 안에 있다. 그런데도 평론가의 촌평이 실행자의 판단을 압도하는 순간 정치는 무대 위의 배우가 아니라 객석의 평론가에게 연출권을 넘겨준 꼴이 된다.
 
한국 문단은 이 위험을 이미 겪었다. 1970~80년대 문학과지성, 창작과비평 계열 평론가들은 작가의 등단에서부터 주목받는 작가까지 문예지 지면 배분을 사실상 좌우하며 ‘문단 권력’이라는 말을 낳았다. 평론가는 원래 텍스트를 해석하고 가치를 매기는 2차 창작자다. 그러나 지면과 인맥을 쥔 소수 평론가의 언어가 창작의 방향까지 규정하기 시작하자 정작 작품을 낳는 작가들은 평론가의 시선을 의식해 글을 쓰는 역전 현상이 벌어졌다. 창작이 비평에 종속된 것이다. 
 
평론가와 실행자는 애초에 다른 임무를 진다. 평론가의 무기는 거리다. 현장의 이해관계에서 한발 떨어져 있기에 구조를 읽고 방향을 짚어낼 수 있다. 실행자의 무기는 책임이다. 판단이 틀리면 정책의 실패로, 나라의 손실로 돌아온다. 이 비대칭이야말로 둘의 관계를 규정한다. 평론가는 조언할 수는 있어도 결정할 수는 없고, 결정하지 않기에 결과에 대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 그런 이가 결정권자보다 더 큰 발언력을 행사한다면 그것은 책임 없는 권력이다.
 
그렇다고 평론가가 입을 다물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좋은 평론은 실행자가 놓치기 쉬운 사각지대를, 정보의 과잉 속에서 오히려 안 보이는 큰 그림을 짚어준다. 다만 평론가는 자신의 말이 최종 판단이 아니라 하나의 참고 사항임을 알아야 한다. 유시민 작가의 오랜 미덕은 바로 그 절제에 있었다. 정계 은퇴 후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던 그가 이번처럼 대통령의 노선 자체를 실패로 단정하는 순간, 관찰자의 언어는 실행자의 언어를 흉내 내기 시작한다.
 
평론가는 거리두기에 충실해야 하고, 실행자는 최종 책임을 지는 주체로서의 자각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미지=챗GPT)
 
실행자 역시 평론가의 말에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정보의 총량에서 앞서 있는 쪽이 여론의 파장에 정책을 맞추기 시작하면 애초에 정보 우위가 무슨 소용인가. 문단이 그러했듯 정치도 평론가의 언어에 예속되는 순간 스스로 방향을 잃는다. 방향을 잃는 것은 단지 그들만의 실패가 아니라 국가의 실패, 국민의 실패로 이어진다.
 
결국 관건은 각자 제자리를 지키는 일이다. 평론가는 무대 뒤에서 방향을 제시하되 커튼콜에는 나서지 않아야 하고, 실행자는 평론가의 지적을 경청하되 결정은 자신의 몫으로 끌어안아야 한다. 그 경계가 무너질 때, 정치도 문학도 길을 잃는다.
 
백승권 비즈라이팅 강사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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