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저PBR 정책, 소리만 요란하다
2026-09-17 13:57:07 2026-09-17 14:18:18
정부가 저PBR(주가순자산비율) 기업의 명단을 공표(Naming & Shaming)하기로 했다. 주가를 일부러 누르거나 방치하는 현상을 막겠다는 취지다. 코스피는 하위 25%, 코스닥은 하위 10%가 대상이다.
 
하지만 제도의 속을 들여다보면 맹점이 보인다. 우선 업종별 꼬리자르기다. 정부는 전체 상장사를 11개 업종으로 나눴다. 장치산업이나 금융업은 자산이 많아 구조적으로 PBR이 낮다는 이유다. 하지만 PBR은 결국 자본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는지 보여주는 시장의 성적표다. 특정 산업 전체가 주주환원에 인색해 다 같이 PBR이 낮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업종 내에서 하위권만 피하면 밸류업 압박에서 벗어난다. 기준을 턱걸이로 통과한 기업은 주주가치를 높일 유인을 잃는다. 사실상 면죄부를 주는 꼴이다.
 
절대적 기준인 'PBR 1'을 잣대로 삼아야 한다. PBR 1은 기업의 청산가치다. 주가가 청산가치에도 못 미친다는 것은 비정상이다. 주주가치를 보호해야 할 회사와 경영진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업종 내 얄팍한 상대평가가 아닌, PBR 1 미만 기업을 일괄 공표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또 인위적으로 주가를 누르는 주식을 공표할 경우 역효과만 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A기업은 막대한 자사주를 쌓아두고 있다. 법적 의무화로 원칙상 이를 소각해야 한다. 하지만 회사는 소각 대신 RSU(양도제한조건부주식)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성과 보상 명목으로 자사주를 오너 일가가 포함된 임원에게 넘기고 있다. 원래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지급되는 순간 잠들어 있던 의결권이 부활한다. 총수 일가는 개인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우호 지분을 늘려 지배력을 굳건히 다진다.
 
게다가 총수 일가는 막대한 상속과 증여를 앞두고 있다. 현행법상 상속·증여세는 주식의 시가를 기준으로 매겨진다. 주가가 낮을수록 내야 할 세금이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만약 A기업이 저PBR 기업으로 최종 낙인찍혀 시장에 실망 매물이 쏟아지면 어떻게 될까. 주가는 더 곤두박질친다. 소액주주에겐 재앙이지만, 승계를 앞둔 지배주주에겐 싼값에 지분을 넘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주가 부양을 의도한 정부 정책이 오히려 총수 일가의 승계 비용을 깎아주는 역효과를 낳는다.
 
일각에서는 이런 부작용을 막기 위해 저PBR 공표 기업에 한해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자는 제안도 나온다. 인위적으로 주가를 누르는 세력을 차단하자는 뜻이다. 일견 타당해 보인다. 저PBR주는 작전세력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
 
단순한 명단 공개와 망신 주기만으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오랜 병폐를 깰 수 없다. 겉핥기식 정책만 난무하니 시장의 피로감이 누적되고 있다. 기업가치를 망치는 재벌 집단의 소유와 지배 괴리, 대리인 문제 등 본질을 건드리지 않고, 보여주기식 정책만 요란하게 추진해서 면피하려는 금융당국의 속셈이 아닌지 우려된다.
 
 
이재영 자본시장정책부 선임 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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