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참 작전부장 양진혁 육군 소장이 5일 오후 서울 국방부 브리핑실에서 25사단 DMZ 지뢰 폭발 상황 관련 합참 합동 현장조사 TF 최종 조사 결과 발표 브리핑에서 MDL 이남 북한군 지뢰를 제거하는 영상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9월21일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 지뢰 폭발로 우리 장병 3명이 크게 다쳤습니다.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국방부와 유엔군사령부는 북한군이 매설한 지뢰에 의해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판단하고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규정했습니다. 국방부는 북한의 사과와 책임 있는 조처를 요구했습니다. 북한은 책임을 부인했습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 한반도 안보 체제의 취약성이 드러났습니다. 세 가지를 짚어보겠습니다. 첫째, 73년째에 이른 정전 체제의 불완전성입니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 당시 협정 당사자 양쪽은 군사분계선(MDL)을 따라 나무 표지판 1292개를 심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며 대부분 유실되고 현재 181개쯤 남았다고 합니다. 애초 200m~300m 간격으로 심었던 표지판 간격이 2~3km로 벌어졌습니다. 수풀이 우거진 현장에서 뚝 떨어진 표지판들을 연결해 경계선을 특정하긴 매우 어렵겠죠. 1960년대에는 남북 군인들이 담력 훈련을 한다고 제각기 침투해 표지판을 옮겨 심었다고도 합니다. 남은 표지판조차 정말로 제자리에 있는 것인지 믿기 힘든 거죠.
정전협정 부속 문서로 군사분계선을 표시한 5만분의 1 지도는 지금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도에 그은 군사분계선이 현장에선 어디인지를 두고서는 경계 부대 군인들이 "저기쯤 될 것이다"라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온 것 말고는 이렇다 할 자료가 없습니다. 심지어 한국군과 북한군, 유엔군사령부가 인식하는 군사분계선 위치가 서로 다릅니다.
이런 배경에서 남북 대화가 끊어졌습니다. 북한은 '적대적 두 국가' 관계를 선언했습니다. 2024년부터 북한은 군사분계선 일대에 철책과 방벽을 설치하고 지뢰를 매설하는 '국경선 요새화'를 하고 있습니다. 남과 북이 충돌하고 군인들이 다시 희생될 염려가 매우 큰 상황입니다. 우발적 충돌이 전면적인 충돌로 치달을 수도 있습니다.
국방부와 통일부는 남북 군사당국 회담을 통해 군사분계선 위치를 재확인하자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필요하죠. 북한이 응답하지 않는데요. 북한은 태도를 바꿔야 합니다.
군사분계선 위치 확인만으로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본래 비무장지대는 군사적 충돌을 막는 폭 4km 완충 공간으로 설정했습니다. 지금은 지뢰와 철책, 군사시설이 밀집한 위험지대가 됐습니다. 이름과 현실이 정반대입니다.
이제는 '선 대신 면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군사분계선이라는 선을 놓고 서로 물러설 수 없다고 맞서는 방식에서 벗어나, 비무장지대라는 폭 4km 구간 전체를 실질적인 군사적 완충과 평화 협력의 공간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 정상회담을 열었고, 딸린 조처로 9·19 남북 군사합의를 맺었습니다. 이 합의에 비무장지대 안 감시초소 철수, 유해 공동 발굴, 적대행위 중단 등의 조처를 담았고 남과 북이 소통하면서 상당 기간 합의를 실천했죠. '선'을 놓고 다투는 대신에 '면' 범위에서 평화를 유지했죠.
윤석열 정부 시절에 남과 북이 심하게 갈등을 빚었습니다. 이 와중에 9·19 군사합의가 무력화됐습니다. 이번 같은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려면 무엇보다 9·19 군사합의를 복원해야 합니다. 아울러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1일 충남 계룡대 활주로에서 열린 제78회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열병 차량에 탑승해 사열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둘째, 군 통수권자의 위기관리 자세가 중요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사건 이후 대북 강경론에 편승하지 않았습니다. 10월1일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을 낮추는 실질적 조치를 이어가고, 인내심을 갖고 남북 관계를 풀겠다고 밝혔습니다. 정부는 북한의 정전협정 위반을 규탄하고 지뢰 제거와 외교적 대응에 나서면서도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와 같은 군사적 긴장 고조 조치는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일각에서는 남북 갈등이 생길 때마다 강경하게 대응하라고 주장합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미국 합참 수뇌부와 정치권 일각에서 쿠바를 공습하고 침공하자고 주장했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은 군사적 압박을 유지하되 소련과 협상할 통로를 열어뒀습니다. 전면 핵전쟁 문턱까지 갔던 위기를 외교적 타협으로 해결했습니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와 존 스토신저 교수의 명저 『전쟁의 탄생: 누가 국가를 전쟁으로 이끄는가』를 보면 명확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적대와 불신이 겹칠 때 내가 자그마한 선제 행동을 하면, 상대는 공격 준비로 받아들입니다. 그것을 보고 나는 더 큰 공포심에 사로잡혀 더 큰 행동에 들어갑니다. 어느 쪽도 전쟁을 원하지 않았는데 전쟁으로 미끄러져 들어간 사례가 역사에 많습니다. 국가 지도자가 일시적 여론에 편승하지 않고 냉정하게 위기를 관리하는 게 중요하죠.
셋째, 유엔군사령부는 정전 관리 책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정동영 장관은 지난 10월7일 국정감사에서 한국 정부가 북한의 철책과 전술도로 설치, 지뢰 매설이 정전협정을 무력화할 수 있다고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지만, 유엔사가 안이한 태도를 보였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유엔사는 지난 6월 북한이 이런 행위를 해도 군사분계선 북쪽에 머물고 중화기를 반입하지 않는다면, 정전협정 위반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러다가 이번 사고 이후 군사분계선 남쪽에서 북한 지뢰가 발견되자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뒤늦게 판단했습니다. 유엔사는 정전협정 관리 주체를 자임하면서도 필요한 조처를 미리 하지 못했습니다.
한국군과 유엔사가 사용하는 군사분계선 자료부터 정밀하게 대조하고, 위험 구역에 대한 공동 조사와 정보 공유를 강화해야 합니다. 나아가 유엔사의 실패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제도 개선을 해야 합니다. 한반도 평화를 만드는 책임은 남북한에 있습니다. 비무장지대 관리에서 한국 정부의 책임과 권한을 실질적으로 강화해야 합니다.

필자 소개/박창식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광운대에서 언론학 석사와 박사를 했다. 한겨레신문 정치부장 논설위원을 지내고 국방부 국방홍보원장으로 일했다. <뉴스토마토> K국방연구소장과 객원논설위원을 맡고 있다. 국방 생태계에서 소통을 증진하는 방법에 관심을 두고 있다. <국방 커뮤니케이션> <언론의 언어 왜곡>과 같은 책을 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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