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5월26일 경남 창원 진해 해군잠수함사령부에서 열린 제1회 미래국방전략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조선소가 선체를 계획대로 제작해도 핵연료가 공급되지 않으면 핵추진잠수함의 시험과 인도는 영향을 받는다. 국제협상과 정부 승인, 원자로와 관급장비 공급은 조선소가 혼자 앞당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 지연이 계약서상의 납기 위반으로 처리되고 대기비용까지 기업에 남는다면 누가 안심하고 건조에 참여하겠는가. 핵잠 특별법은 이런 책임 없는 지연을 판정하고 계약을 조정하는 절차를 갖춰야 한다.
기간을 늘려 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숙련 설계인력과 기술자는 계속 확보해야 하고, 시설을 유지하며 제작한 장비를 보관해야 한다. 장기간 대기하면 재검사와 재시험이 필요할 수 있고 보험기간 연장 비용도 발생한다. 업체가 인력을 다른 사업으로 옮기면 재착수 때 공정 회복이 어려워질 수 있다. 일정 조정과 비용 조정을 따로 처리하면 사업이 늦어진 부담을 기업이 사실상 계속 떠안게 된다.
지연 사유는 구체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 정부 요구에 따른 설계·규격·시험과 안전검증 변경, 업체 책임 없는 신규기술 검증 지연, 정부 지정·승인 협력업체의 공급 지연, 핵물질 확보와 국제협상, 관계기관 승인 지연 등을 검토할 수 있다. 다만 이런 사유가 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자동 면책해서는 안 된다. 실제 주요 공정을 얼마나 늦췄고 조선소가 예방하거나 영향을 줄일 수 있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계약 전에 원자로·연료·관급품의 공급과 승인 일정을 정하고 담당을 명시해야 한다. 조선소의 공정과 대응 노력, 정부의 지시·승인 기록도 남겨야 지연 책임을 판단할 수 있다.
지연이 예상되거나 발생하면 조선소가 기간과 금액의 조정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정부도 확인한 지연에 대해 검토를 시작해야 한다. 필요한 자료가 갖춰지면 일정한 기한 안에 귀책 여부, 인정 지연일수와 추가비용, 조정방향을 서면으로 알려야 한다. 30일 처리 원칙과 불가피한 경우의 제한된 연장도 제안할 수 있다. 이 기간은 확정된 제도가 아니라 관계기관 협의를 거쳐 설계할 개선안이다.
책임 없는 지연이 확인되면 수정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계약기간과 금액, 공정과 지급조건을 함께 조정해야 약속이 현실에 맞게 바뀐다. 지연 종료일을 알 수 없다면 잠정 기간이나 공정 조정안을 먼저 정하고 원인 해소 뒤 실제 영향을 확인해 확정할 수 있다. 협상이 끝날 때까지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는 이유로 계약을 그대로 두면 업체의 부담만 누적된다. 중간 조정이 가능한 절차가 필요하다.
지체상금 처리도 이 절차와 연결해야 한다. 책임 없는 지연 여부를 조사하는 동안 해당 기간의 부과·징수를 유예할 수 있는 법률상 근거를 검토해야 한다. 조사 결과 업체 책임이 없다고 인정된 기간에는 지체상금을 부과하지 않고 이미 징수한 금액은 정산하도록 해야 한다. 반대로 기업의 귀책기간은 관련 법령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 외교 지연이 있다는 이유로 그 전에 발생한 업체의 공정 지연까지 함께 면제할 수는 없다.
대기비용 역시 실제 발생과 적정성을 검증해야 한다. 사업에 필요한 최소 인력과 시설 유지, 보관·재시험·보험 연장에 불가피한 비용을 확인하고 손실을 줄이기 위한 조치도 살펴야 한다. 정부 사유와 업체 사유가 겹친 경우에는 주요 공정에 미친 영향을 분석해 구분해야 한다. 일정 지연과 비용 증가의 인과관계를 확인하면 국가가 부담할 비용과 기업이 책임질 비용을 합리적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런 특례를 마련해도 다른 법률과의 관계가 불명확하면 집행 단계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특별법이 허용한 계약기간과 금액의 변경을 일반 계약규정이나 하위 지침으로 다시 제한한다면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진다. 최종 입법에서는 방위사업법과 국가계약법의 관련 규정을 대조해 충돌하는 조문과 우선 적용 범위를 특정해야 한다. 기존 제도에서 가능한 사항과 핵잠 사업에 추가로 필요한 특례를 구분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우선 적용은 특별법에서 정한 계약종류·원가·정산·기간과 금액 변경, 시설지원 등의 범위로 명확히 한정해야 한다. 안전과 환경, 핵비확산 의무 및 제3자 피해배상까지 일괄 배제하는 방식은 피해야 한다. 계약위험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일과 공공의 안전을 지키는 일은 함께 추진할 수 있다. 특별법이라는 이름만으로 모든 의무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며, 막연한 우선 적용 문구만으로 필요한 조정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정부가 사업을 중단하거나 축소하는 경우의 정산도 준비해야 한다. 업체 책임 없이 수행한 완료분과 진행분, 취소하기 어려운 발주비, 미회수 시설비와 계약 종료 비용을 확인할 기준이 필요하다. 이미 지급한 금액과 회수 가능한 자산 가치는 공제하고 예상이익을 일률적으로 보상하지는 않아야 한다. 자료와 설비의 인계조건까지 정해 두면 사업의 방향이 바뀌더라도 분쟁과 국가 역량의 손실을 줄일 수 있다.
핵잠 사업의 일정에는 조선소의 건조공정뿐 아니라 국가의 연료·협상·승인 일정이 함께 들어 있다. 정부가 맡은 과제가 늦어졌을 때 기업의 계약을 어떻게 조정할지 정하는 것은 사업관리의 기본이다. 국회와 정부는 특별법의 근거, 시행령의 절차와 표준 계약조건을 함께 완성해야 한다. 조선소에 참여를 요구하려면 책임 없는 지연이 손실로 자동 전환되지 않는다는 확신부터 줘야 한다. 국가의 책임이 계약에서 분명해질 때 핵잠 건조도 지속 가능한 사업이 된다.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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