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ECB 양적완화..유로존 경기회복 기폭제 되나
글로벌 금융시장 '활짝'..각국 증시 1% 넘게 올라
구조개혁 주문 '빗발'.."통화정책 만으론 힘들어"
2015-01-23 14:26:28 2015-01-23 14:26:28
[뉴스토마토 윤석진기자] 유럽중앙은행(ECB)이 곤두박질친 물가를 끌어올리고 침체된 경제를 살리기 위해 600억유로 규모의 국채매입 카드를 꺼내 들었다.
 
각국 증시와 채권 시장은 이에 긍정적으로 화답하며 장밋빛 미래를 예고했고 11년래 최저치로 떨어진 유로화는 역내 수출업자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줬다.
 
그러나, 국채매입에 따른 위험부담을 각국 중앙은행이 짊어져야 해 그 효과가 미비할 것이란 비난과 구조개혁이 없이는 온전한 성장을 이룰 수 없을 것이란 회의론이 함께 제기됐다.
 
◇드라기 "매달 600억유로 자산 매입할 것"
 
(사진=로이터통신)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사진)는 22일(현지시간) 정례 통화정책회의를 마치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올해 3월부터 최소한 내년 9월까지 매월 600억유로의 국채와 대행기관 채권, 국제적·초국적 기관 채권을 매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드라기가 공개한 자산매입 프로그램은 시장 예상치인 500억유로를 훌쩍 뛰어넘는 것이었다. 총 매입규모는 1조1400억유로(약 1435조원)에 이른다.
 
드라기는 또 '최소한'이란 단서를 붙여 물가가 오르지 않을 경우 국채를 더 매입할 수 있다는 여지도 남겼다. 말 그대로 무제한 국채매입의 서막을 알린 것이다.
 
자산 매입은 19개 회원국 중앙은행이 자본 출자액 규모에 맞춰 채권을 사들이는 형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자본 출자액 규모는 독일이 25.6%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프랑스(20.1%)와 이탈리아(17.5%), 스페인(12.6%)이 그 뒤를 따랐다.
 
매입 규모는 매번 발행되는 채권의 25%를 넘지 않고 개별 발행자 기준으로는 33%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할 방침이다.
 
채권 매입에 따른 위험 부담은 ECB와 각국이 함께지기로 했다.
 
각국 중앙은행이 새로 매입되는 유럽기관 채권의 12%를 사들이고 ECB는 추가 자산의 8%를보유해 손실 발생 시 총 20% 수준에서 위험을 나눠서 지겠다는 것이다. 나머지 80% 위험부담은 문제가 발생한 개별 국가가 알아서 짊어지기로 했다.
 
아울러 2~30년 만기 국채가 매입 대상에 올랐다. 투기등급 채권의 경우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단행할 때만 매입을 허용한다는 원칙을 둬 사실상 그리스 국채를 매입 대상에서 제외했다.
 
◇글로벌 금융시장 화색..유럽·뉴욕 증시 1% 넘게 올라
 
ECB가 이처럼 포문을 열자, 각국 증시와 유로존 채권 시장이 긍정적으로 화답했다.
 
실제로 유럽 주요국 증시와 뉴욕 3대 지수는 모두 1%는 넘는 상승세를 보였다. 이탈리아의 MIB 지수와 포르투갈의 PSI 20 지수는 2.4%씩 급등했다.
 
독일을 비롯한 유로화 사용국과 영국 기업지수를 나타내는 FTSE Eurofirst300 지수는 이날 1.6% 넘게 올라 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토마스 디지넌 UBS 주식 전략가는 "당분간 투자자들은 위험을 감수하려는 성향을 보일 것"이라며 "ECB가 발표한 양적완화 덕분"이라고 말했다.
 
◇독일 증시 추이 (자료=인베스팅닷컴)
 
유로존 국채 시장에도 자금이 밀려들어 왔다. 특히, 프랑스 10년물 국채 금리는 0.6% 수준으로 역대 최저치까지 낮아졌고 독일 10년 만기 국채 금리도 이날 사상 최저치인 0.384% 찍었다. 또 스페인 10년물 국채 금리는 0.13%포인트나 하락했다. 이탈리아와 포르투갈 국채 금리도 줄줄이 내렸다.
 
안전자산인 금 또한 ECB 추가부양 소식에 힘입어 상승 폭을 키웠다. 이날 뉴욕상품거래소에서 2월 인도분 금 선물 가격은 전일보다 0.5% 오른 온스당 1300.70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종가 기준으로 지난해 8월15일 이후 최고치다.
 
ECB의 양적완화 결정으로 유로화 가치가 11년래 최저치로 떨어지자 자산 가치를 지키려는 심리가 확산되면서 금 매수세가 늘어났다는 분석이다.
 
이런 유로화 약세는 금 시장뿐 아니라 유로존 수출 기업들에도 호재로 여겨졌다. 통화 가치가 내려가면 다른 국가와의 가격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ECB, 유로존 경제 회복 도움될까?..포트폴리오 효과 '미비'
 
다만, ECB의 과감한 통화정책이 유로존 실물경제에도 온기를 더해줄지에 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ECB가 마련한 위험 부담 시스템이 예상보다 부실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나 스페인같이 부채 보유량이 많은 국가들은 애초부터 ECB가 19개 국채를 일괄 매입하고 그 부담도 홀로 져주기를 바랐다.
 
이탈리아 재무장관은 "위험부담은 유로존 모두가 공통으로 짊어져야 할 것"이라며 "부담을 따로 진다면 유럽 통합이 저해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런데 이번 안에 따르면 공동 위험 부담 비율은 20%에 불과하다. 각국 중앙은행이 12%를 지고 ECB는 고작 8%만을 책임진다. 나머지 80% 위험이 고스란히 각국의 부담으로 전가되는 구조다.
 
◇유로존과 미국의 실업률 추이 (자료=톰슨토이터)
이 때문에 '포트폴리오 효과(portfolio effect)'는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포트폴리오 효과는 위험을 분산시킬 때 사용하는 수법인데, 이는 독일 같은 유로존 우량국이나 유로존 전체가 이탈리아나 그리스 같은 부채국의 리스크를 책임져 줄 때 발생한다.
 
세계 최대 경제국인 미국이 살아난 데다 국제 유가 하락에 따른 소비지출 확대가 예상되나, 통화정책 만으로는 경제를 정상화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었다.
 
긴축을 통한 부채 삭감으로 정부의 대외 신뢰도를 높여놓지 않으면 아무리 유로화 유동성이 많아져도 기업 투자와 소비지출이 늘어나지 않을 것이란 점에서다. 역대 최고치로 치솟은 실업률을 낮추는 데도 구조개혁이 절실한 상황이다.
 
구조개혁을 시급히 진행해야 하는 국가로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와 같은 나라들이 꼽혔다. 이 둘은 유로존 2, 3위 경제국이란 타이틀이 무색하게 고용침체와 저물가에 시달리고 있다.
 
데이비드 라퍼티 글로벌 애셋 매니지먼트 전략가는 "유로존 경제는 저유가와 싼 유로화에 힘입어 올해 말부터 호전되기 시작할 것"이라며 "그러나, 재정정책이 병행돼야지 통화정책만으로는 성장률을 올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계최대 광고회사인 WPP의 최고경영자(CEO)인 마틴 소렐은 "우리는 이미 미국과 일본이 양적완화를 하는 모습을 지켜봐 왔다"며 "구조개혁 노력 없이는 국채매입 효과를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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