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정부, 조선 빅 3에 자구계획 요구…해운은 조건부 자율협약 진행
정부 "밑 빠진 독 물 안붓는다" 경고…관치 분위기에 은행권 '긴장'
2016-04-26 16:35:41 2016-04-26 16:35:41
[뉴스토마토 이종용기자] 정부와 채권단이 조선과 해운은 경기민감업종으로 두고, 건설은 부실징후기업, 철강과 석유화학은 공급과잉업종으로 각각 재분류하는 등 5개 취약업종을 재조정했다. 조선·해운업에 집중해 구조조정을 본격화 하겠다는 것이다. 대형 조선 3사에는 인력감축과 자구계획안을 요구하고, 해운은 조건부 자율협약을 진행하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특히 금융당국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하지 않겠다고 강조하면서 채권은행들은 반기는 분위기를 나타냈다. 다만 시장 자율을 강조하던 기조에서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 드라이브 분위기가 감지되면서 긴장하는 분위기도 보인다.
 
임 위원장은 26일 열린 '제3차 산업경쟁력 강화 및 구조조정 협의체' 회의에서 "조선 및 해운, 철강 등 전통 주력산업의 경영여건이 구조적으로 악화되고 있으며, 이러한 흐름은 조만간 개선될 전망이 없다"며 "경쟁력 없는 산업은 경쟁력을 보완하거나 시장에서 퇴출하는 등 구조조정을 통해 새로운 산업구조로 변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해운업에 대해 조건부 자율협약 방식으로 정상화를 지원하기로 했다. 현대상선은 이미 발표된 대로 용선료 인하, 사채권자 채무조정, 협약채권자의 조건부 자율협약 등 3개 과정을 거쳐 정상화 방안을 추진한다.
 
용선료 인하 협상과 사채권자 채무조정에 성공할 경우 채권단은 자율협약에 따라 정상화 방안을 지원하고, 만약 협상이나 채무조정에 실패할 경우 구조조정 원칙에 따라 처리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용선료 협상 실패 시 사실상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란 의미다.
 
임 위원장은 "지난 1월부터 이어져 온 용선료 협상에서 현대상선과 채권단은 선주들에게 합리적인 용선료 수준을 밝혀왔다"며 "용선료 절감 없이는 아무리 다른 계획을 세워도 살아남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5월 중순 까지 의견이 나오지 않으면 후속 조치에 들어갈 것"이라며 "채권단만 부채를 경감하는 손실을 입을 것이 아니라 선주들도 손실을 분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달 25일 조건부 자율협약을 신청한 한진해운도 현대상선과 동일한 방식의 정상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채권단은 세부방안 보완을 협의하고서 실무협의를 통해 자율협약 개시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 관계자는 "현재 자율협약을 신청한 한진해운에 구체성 있는 보완책을 내놓으라고 돌려보낸 상태"라며 "어떻게든 살려주겠지라는 의식이 팽배해 구조조정 작업이 더뎠는데 당국 수장이 강력한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업의 경우 저유가 지속, 선복량 과잉 등에 따라 해양(플랜트)과 상선 분야에서 수익성 하락 추세가 지속한다고 보고 경기민감업종에 잔류시켰다.
 
대형 3사 가운데 대우조선은 이미 정상화 방안을 추진 중이지만 당초 계획한 것에서 추가로 인력 감축을 추진하고, 급여체계 개편과 비용 절감을 수립하도록 했다. 현대·삼성중공업은 주채권은행이 중심이 돼 회사 측에 최대한의 자구계획을 제출하도록 하고 자구계획 집행상황 관리를 시작하기로 했다.
 
이미 정상화 방안을 이행 중인 중소형 조선사도 계획대로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지속하기로 했다. STX조선은 올해 하반기 중 경영정상화를 지속하거나 회생절차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마련한다.
 
삼성중공업과 경영협력을 추진중인 성동조선은 신규 수주가 계속 저조할 경우 근본적인 대책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SPP조선과 대선조선은 이미 수립된 통폐합·매각 계획을 단계적으로 추진키로 했다.
 
정부는 일각에서 제기하는 조선-해운업체 간 합병 방안에 대해서는 '시기상조'라고 못 박았다. 임 위원장은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합병 가능성에 대해 "양사의 경영 정상화 방안이 어느 정도 가닥을 잡게 되면 채권단을 중심으로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선업 대형 업체 통합 등에 대해서도 "정부 주도로 합병을 강제하거나 소위 빅딜을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구조조정의 원활한 지원을 위해 국책은행의 자본확충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적극적인 구조조정을 위해서는 국책은행의 건전성 보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수출입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은 지난해 말 10.0%다. 산업은행의 경우 14.2%로 비교적 높지만, 조선·해운·철강 등 구조조정 대상 기업에 빌려준 자금 규모가 큰 편이다.특히 지난해 수은은 대우조선해양에 총 12조5000억원을 빌려줬고, 산은의 4조1000억원까지 합치면 두 국책은행의 대우조선 여신 액수만 16조6000억원에 이른다.
 
정부가 두 국책은행에 출자를 할 경우, 국무회의 동의만으로 진행할 수 있는 현물출자 방식이 가장 유력하다. 특히 과거에 비춰볼 때 공기업 주식을 이전하는 현물출자 형태를 우선으로 검토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행이나 기획재정부가 출자하는 방식도 논의되고 있다.
 
국책은행 관계자는 "정부에서 마냥 자본을 늘려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두 기관에 대해서 최근 감사원의 감사가 진행됐으니 적어도 부실기업 책임문제를 짚고 가겠다는 것이라 일부 경영진의 문책이 불가피해보인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금융당국은 상시 구조조정 체계를 가동해 조선 해운업을 제외한 타 업종에 대해서도 구조조정에 나서기로 했다. 조선 해운사의 여신이 미미해 구조조정 여파가 적은 시중은행들도 방관하기는 힘들게 됐다. 
이는 지난 3월 초 재입법된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에 따른 것으로, 앞서 진웅섭 금융감독원 원장 또한 신한·우리·KEB하나·국민·농협 등 주요 은행장이 참석한 간담회를 열고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며 기업 구조조정의 타이밍을 강조한 바 있다.
 
이를 위해 금융당국은 대기업만을 대상으로 올 하반기 신용위험평가를 한 차례 더 실시한다. 금융감독원이 진행하는 기업신용위험평가는 대기업(4~7월), 중소기업(7~10월)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신용위험평가는 A·B·C·D 등급으로 나뉘는데 C·D등급을 받게되면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 대상으로 분류된다.
 
특히 이번 대기업 신용위험평가는 평가 대상이 확대, 기존의 평가보다 강화된 기준이 적용돼 주목된다. 기존에는 영업활동 현금흐름과 이자보상배율 등을 평가했지만 이번에는 완전자본잠식 기업과 취약 업종 기업 등도 추가된다.
 
세부평가의 경우 경기변동 민감도와 성장전망 등도 반영, 전망이 어두운 기업들도 대규모로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공급과잉 업종으로 분류되고 있는 철강, 석유화학이 상시 모니터링이 필요한 산업으로 분류되고 있으며, 전자업종 또한 지난해 이어 올해도 관심 업종이다.
 
이미 은행들은 여신 심사 강화 등 건전성 관리에 나서면서 기업 대출에 깐깐한 성향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의 금융기관 대출행태서베이 결과에 따르면, 대출태도지수는 작년 말 -3에서 2016년 1분기 -6, 2분기 -9로 점차 대출 문턱을 높이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조선 해운 업종의 자율협약 신청기업에 대한 위험노출액은 미미하고 손실처리가 이미 이뤄졌다"며 "하지만 기존 취약업종에 더해 추가적인 구조조정 대상 산업을 꼼꼼히 들여다보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정부는 임종룡 금융위원장 주재로 26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금융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제3차 산업경쟁력 강화 및 구조조정 협의체 회의를 개최했다. 사진/금융위원회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