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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곤의 분석과 전망)박근혜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2017-10-16 06:00:00 2017-10-16 06:00:00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 ‘2라운드’를 앞두고 세월호 참사 보고일지 및 위기관리 지침 사후 조작 정황이 불거졌다. 세월호 참사 한참 뒤 여론이 악화되자 오전 아홉시 삼십분이었던 최초 보고 시간을 열시로 고치고 청와대 국가안보실의 책임범위도 소급해 축소했다는 의혹이다.
 
“큰 사고가 났을 때 대통령이 구조하라고 지시한다고 해서 구조하고, 그런 지시가 없다고 해서 안 하나? 핵심적 문제가 아니다”는 주장도 있다. 말인즉슨 틀린 말은 아니다. 돌이켜보면 참사 발생 자체를 청와대의 책임으로 돌리긴 어려울 뿐더러, 대통령이 처음부터 잘 지휘를 했으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이 참사의 규모를 키운 근본 원인이었을 게다.
 
참사 직후엔 여론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규제와 그 규제를 비웃는 편법과 탈법으로 점철된 연안 여객 운송 실태, 관피아의 본질, 한숨만 터져 나오게 만드는 해경의 실체, 괴담이나 다름없는 청해진 해운의 상황 등이 드러났다. ‘적폐 청산’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사람들의 입길에 오르기 시작했다. 물론 적폐 청산의 주체는 당시 청와대였다. 박근혜 대통령도 현장에서 유족들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장비와 인원은 모여 있는데 실효성은 없다는 이야기가 들려왔고, 경찰과 공무원들은 구조와 수습보다 ‘통제’에 더 관심이 있는 것으로 보였으며 청와대는 ‘세월호’라는 단어에 대해 점점 신경질적 반응을 보였다. 정부의 손가락은 유병언 일가를 향했지만, 떠들썩한 추격전 이후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와 더불어 민심도 달라졌다.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책임 추궁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7시간의 미스테리’에 대한 이야기도 돌았다. 그러자 청와대는 더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또 근본을 알기 힘든 보수단체들이 일제히 유족들을 공격했다. 신뢰와 공론은 무너졌다. 고의침몰설까지 제기됐고 정부와 보수진영은 ‘세월호’를 반정부의 표상으로 받아들였다. 민심은 쪼개졌고 보수진영도 정부 편에 서는 쪽과 이건 정부가 너무한 것 아니냐는 쪽으로 갈라졌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흐름이다. 수습과 위로, 성찰과 변화로 가기는 커녕 퇴행만 거듭했다. 청와대는 리더십과 능력을 발휘하긴 커녕 어느 순간부터 자기 무덤을 팠다. 비판자들을 ‘반정부 세력’으로 규정했고 그 폭을 점점 넓혀나갔다. 공영방송, 교과서, 정부 지원을 받는 문화계, 여당의 핵심을 틀어쥐려했다. 결국 이 흐름이 바로 탄핵의 시발점이었다.
 
과거 정부에선 대규모 참사나 정책적 오류들이 이런 식으로 귀결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여전히 문제가 많지만, 한국 관료사회는 우수한 편이고 위기 상황에선 국론도 뭉쳤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대규모 자연재해, 인재(人災)성 참사, 외부의 공격 등이 정권과 국가의 위기로 직결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오히려 국론 통합의 계기로 작용하곤 한다.
 
도대체 박근혜정부는 왜 그랬을까? 아마도 위기관리 능력의 부재가 국정운영 전반의 무능함을 노출시킨 것 같다. 스스로가 얼마나 무능한가에 깜짝 놀라면 불안감이 증폭되기 마련이다. 권력 중심의 불안감이 증폭되면 극소수를 제외하곤 전부 다 적대세력으로 보일 수밖에. 다수를 적대세력으로 상정하는데 나라를 제대로 운영할 수가 있나.
 
결국 위기 자체는 위기가 아니다. 위기관리를 통해 위기가 기회로 전환되기도 하고 진짜 위기가 되기도 한다. 박근혜정부가 산증인인 셈이다.
 
바보도 경험으로 부터는 배운다고 한다. 공무원, 언론, 사회가 여기서도 못 배우면 정말 답 없는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물론 지금 제일 많이 배우고 있어야 할 곳은 두말할 나위 없이 청와대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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