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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글로벌경쟁, 고종 그리고 ‘시카고박람회’
2017-10-26 08:00:00 2017-10-28 17:18:00
1893년 5월1일 미국 시카고에서는 만국박람회가 열렸다. 우리나라는 내세울 상품도 없는 데에다 행사참석비용의 마련조차 어려웠지만 두 명의 대표자를 보내기로 했다. 나머지 필요한 인력은 현지의 유학생을 활용하기로 했다. 당시 고종은 대한제국의 황제라 칭하며 일본, 러시아, 청나라는 물론 서구열강의 틈바구니에서 국제적 위상을 높이려 안간힘을 다하고 있었으므로 국제박람회 참가는 ‘국가’의 지위와 존재감을 인정받으려는 몸부림으로써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시카고박람회장에 설치된 행사장의 모습은 참담했다. 대한제국의 전시관을 둘러본 미국 '뉴욕헤럴드'지의 한 기자는 “고종이 싸구려 폐품만 보내왔다”고 혹평을 했을 정도였다. 자동차, 전기제품은 물론 기관차까지 등장한 박람회에 우리는 고작 자수병풍, 짚신, 가죽신발, 장기판, 도자기 등을 보냈다. 관람객들은 대한제국 전시관에 ‘소품은 있는데 정작 출품한 상품이 없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고종은 물론 대한제국의 대표단으로 참가한 사람들의 기분은 어떠했을까? 서방 선진국과의 격차에 좌절과 처참함을 느꼈거나 아니면 근대화의 필요성과 강한 추진의지를 다졌을 것이다. 박람회에서의 그런 모습은 당연한 것이었다. 시카고박람회 당시 대한제국에는 변변한 근대식 공장조차 없었다. 하지만 시카고에서의 좌절과 참담함은 산업화의 계기가 되어 불을 지폈다. 이에 더해 미국에서 전깃불을 보고 도깨비불이라며 놀랐던 '서유견문록'의 저자 유길준이 돌아온 이후 대한제국은 빠르게 일본과 서양문물을 습득하기 시작했다.
 
1899년에야 제조업체가 생기기 시작했지만 1904년까지 222개, 1930년에 이르러서는 4000개를 넘어섰다.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주춤하던 우리의 기업은 1970년대부터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이제는 세계적인 기업을 비롯해 제조업체만도 13만개에 이른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서 무역 규모가 1조달러가 넘는다. 국민소득도 3만달러에 이르렀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물론 G20의 회원국이기도 하다.
 
기술력에서도 상당한 도약을 했다. 한국기업의 우수한 기술과 상품들이 선진국의 경쟁사들과 어깨를 겨루고 있다. 특히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각국의 기술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전기 및 자율주행차, 3D프린터, 사물인터넷, 가상·증강현실(AR·VR), 드론 등에서 뒤지지 않고자 노력하고 있다. 대한제국의 시카고박람회참가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매년 1월 미국의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되는 세계최대의 첨단제품경연장인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The International Consumer Electronics Show)’에서는 우리기업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모습이 과거에 비해 격세지감이지만 결코 여기서 만족할 일은 아니다. 4차 산업혁명이 전개되는 가운데 지구촌의 기술과 산업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한 해법의 모색에 고군분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신기술·신상품으로 해외시장을 선점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창업과 중소벤처기업의 성장 또한 ‘국내’보다 글로벌시장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124년전 국제적 고립을 면하고자 온갖 노력을 다하며 신문물과 산업화에 목말라했던 대한제국의 모습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과거 도전적으로 해외시장을 누비던 기상과 의지를 다시 불태우고 새로운 분야의 기술개발에 온힘을 다해야 한다. 결코 해외선진기업들의 아이템을 따라하는 추격자전략이나 국내시장경쟁에 안주하는 우물 안 개구리의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된다. 더욱 심기일전(心機一轉)해서 세계시장으로 진출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지금보다 더 많은 세계 1위의 상품과 기업을 만들어내야 한다. 우리가 말레이시아나 태국 등을 제치고 오늘을 이룬 것이 피눈물 나는 노동과 교육의 결과였다면, 이제는 열정과 창의성으로 블루오션으로 나가야 한다. 지금 우리가 되새겨야 할 것은 고종이 국제박람회에 ‘폐품’이라도 내보냈던 절박함 그리고 투철한 모험과 개척정신이다. 벤처정신으로 해외를 향하자.
 
이의준 벤처기업협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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