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책임)전태일 분신 47주기에 생각하는 한국 비정규직의 현 주소
전체 임금노동자의 3분의1 비정규직…양적·질적 해법 모색해야
비정규직문제, 정부 정책 변화와 함께 CSR 강화로 풀어야
입력 : 2017-11-06 08:00:10 수정 : 2017-11-06 08:00:10
매년 11월이 오면 떠오르는 청년이 있다. 1970년 11월 13일,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이다. 하루 8시간 근무, 일주일에 한번은 쉬게 할 것, 모든 근로자에게 건강 진단을 받게 할 것…. 스물두 살 청년이 자신의 몸을 불사르면서 외친 고함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이것을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로 여길 수 있게 됐다.
 
그로부터 47년이 지난 2017년 대한민국은 과연 전태일이 꿈꾸던 모습일까. 2007년 7월 1일부터 시행된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즉 비정규직법이 시행 10년을 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1970년의 전태일의 나이와 비슷한 많은 이십대 청년들이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스스로를 취업시장의 ‘을’, ‘병’, 심지어 ‘정’이라고 자조한다. 아르바이트와 계약직 사원, 인턴을 하며 ‘갑질’을 견뎌내고, ‘열정페이’를 감내한다.
 
비정규직 비율, 최근 5년래 최고치 경신… 근로여건은 개선?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는 것은 비단 청년뿐만이 아니다. 비정규직 중 상당수가 여성, 장애인 등 사회적 취약계층이다. 사회전반이 풀어가야 할 과제일 수밖에 없다. 3일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전체 임금근로자(1998만3000명)에서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율이 최근 5년래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올해 8월 기준 정규직 근로자가 1334만1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1.2%(15만8000명) 늘어났고, 비정규직 근로자는 654만2000명으로 1.5%(9만8000명) 증가했다. 전체 임금근로자에서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율은 32.9%로 지난해(32.8%)보다 0.1%포인트 높아져 최근 5년 사이에 최고치를 보였다.
 
통계청은 시간제 근로자의 급증(전년대비 7.1% 증가)을 비정규직 비중이 커진 원인으로 분석했다. 시간제노동은 비정규직 중에서도 불안정한 형태로, 주당 36시간 미만 일하며 대부분 저임금에 사회보험 가입률이 낮다. 위와 같은 ‘불완전 취업’의 증가는 고용 한파 속에서 원하는 일자리가 아니지만 ‘생계유지’를 위해 비정규직에 뛰어들고 있는 구직자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일자리가 아니라, 언제든지 벗어날 수 있는 일시적이고 불안정한 취업이다.
 
이번 조사에서 비정규직 일자리를 비자발적으로, 즉 원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선택했다는 비율은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 가운데 49.9%인 반면, 정규직 노동자 가운데서는 이 비율이 22.8%로 떨어졌다. 비정규직을 자발적으로 선택했다는 51.1% 중에서도 20.5%가 ‘직장이동’ 이유로 선택한 것이어서, 사회의 일반적인 인식대로 자발적이고 양질의 비정규직 일자리는 매우 부족했다.
 
비정규직의 근로여건이 개선됐다고 조사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조사에선 최근 3개월 간 비정규직 월평균 임금이 정규직에 비해 대폭 상승했다고 밝혔다. 정규직 임금이 284만3000원으로 1.7%(4만8000원) 증가한 반면 비정규직 임금은 156만5천원으로 4.8%(7만1000원)나 늘었다. 최저임금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임금증가율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수준은 정규직의 절반을 살짝 상회하는 정도이다.
 
또한 비정규직의 사회보험 가입률(건강보험·고용보험·국민연금)이 소폭 상승하고, 현 직장의 평균 근속기간이 적은 정도로 늘어난 것은 일면 긍정적인 신호로 읽혔다.
 
비정규직에 관한 지표상의 호전에도 불구하고 올해 초, 노동계와 국책연구기관이 상반된 주장을 펼치는 등 견해 차이는 여전하다. 민주노총은 지난해 12월 발표한 ‘비정규직법 시행 10년을 말한다’는 제목의 정책보고서에서 “비정규직의 규모와 차별실태가 여전하고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고용개선 효과가 미흡할 뿐만 아니라 간접고용과 특수고용의 권리보장 문제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통계청의 자료에 기반하여 정책보고서를 발간한 한국노동평가원은 국내 비정규직 비중이 2004년부터 하락세이다가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계기로 2009년 8월 34.9%까지 다시 상승한 뒤로는 지금까지 꾸준히 하강세인 것으로 분석했다.
 
수치상으로 일면 개선이 있으나 개선정도가 미미한 수준일뿐더러 고용의 질에서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게 중론이다.
 
한국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지난 6월 13일 국제노동조합총연맹(ITUC)이 발표한 ‘2017년 세계권리지수(ITCU Global Rights Index)’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노동자의 폭력과 억압 증가(Violence and repression of workers on the rise)’라는 제목의 이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최하위 등급인 “노동자의 권리보장이 없는(No guarantee of rights)” 5등급 국가다. 세계권리지수는 세계 139개국을 대상으로 국제적으로 공인된 97개 지표를 가지고 각 나라 노동자 권리에 대한 억압 수준을 표시한다. 우리나라는 2014년 첫 조사부터 올해까지 4년 연속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
 
노동구조 개혁, 기업이 직접 책임을 져야할 때
새 정부는 일자리를 핵심 과제로 꼽았다. 비정규직 처우개선, 정규직 전환은 일자리 문제의 핵심이다. 최근 국회는 노동권 신장을 위한 노동관계법 개정 논의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 정책 5년 로드맵의 10대 중점 과제의 하나로 ‘비정규직 남용 방지 및 차별 없는 일터 조성’을 내세웠는데, 이에 호응하여 현재 비정규직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개정안이 여럿 발의돼 있다. 근로자퇴직급여 기준을 바꿔 1년 미만 근속 노동자가 퇴직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거나, 육아휴직 자격을 ‘고용보험 가입기간 1년’으로 완화해 비정규직 육아휴직의 기회를 늘리는 등 비정규직 차별을 없애는 방향의 논의가 진행 중이다. 임금체불에 대해 징벌적 배상제도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을 핵심으로 한 노동문제 해결에 정부의 이 같은 역할이 중요하지만 기업의 적극적인 참여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데에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인적자원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와 노동문제에 관한 전향적 자세는 이미 세계적인 추세로 자리잡고 있다.
 
올해는 유럽연합(EU) 내 종업원 500명 이상 기업들이 비재무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시해야하는 첫해였다. 환경·사회·거버넌스(ESG)로 표현되는 기업의 사회책임은 더 이상 권고사항이 아닌 필수로 통용되며, 이때 ‘노동’은 책임의 핵심분야이다. 전 세계에 발표된 기업의 사회보고 중 70%가 GRI(Global Reporting Intiative)의 가이드라인을 준용하며,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GRI 기준을 따르고 있다.
 
지난해 10월, GRI는 기존 가이드라인보다 강제성이 짙은 ‘표준(standard)’을 공표하였고, 내년 7월 1일부터 GRI를 준용하여 사회보고를 작성하려면 반드시 표준을 적용하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세계의 더 많은 기업들이 자사의 노동 조건 및 관행을 보고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통계청 통계만으로 알 수 없는 세부지표를 통해 노동 시장과 구조에 기업이 얼마나 긍정·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이행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한국 기업들 또한 이러한 흐름을 피해갈 수는 없다.
 
그러나 국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논의수준이 피상적인 수준에 그쳐 나아갈 길이 멀다. 사회보고를 시행하는 절대숫자가 부족한 가운데 그동안 강제성과 영향력이 낮았던 만큼 사회보고 자체가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2015년 발표된 한국노동연구원의 ‘국내 지속가능경영보고서의 노동/인권 분야에 대한 실태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노동지표에서 ‘노사공동 보건안전위원회가 대표하는 직원 비율’(LA6)과 ‘중요한 사업 변동 사항에 대한 최소 통보 기간’(LA5)처럼 민감한 지표는 공개수준이 낮거나 의도적인 비공개가 많았다. 반면 ‘고용 유형, 고용계약 및 지역별 인력 현황’(LA1), ‘임시직 직원에게는 제공하지 않고 상근직 직원에게만 제공하는 혜택’(LA3), ‘심각한 질병에 관해 직원 및 그 가족 지역주민을 지원하기 위해 교육, 예방 및 위험관리 프로그램’(LA8)에 대한 지표의 공개수준은 점수가 높았다. 쉽게 실천할 수 있거나 민감하지 않은 사항들이었기 때문이다.
 
인권 분야 지표도 상황은 비슷했다. 전반적으로 노동지표에 비해 보고점수가 낮고 ‘해당 없음’ 비율이 높았으나, 노동 분야와 마찬가지로 보고하기 까다로운 지표(인권 교육, 인권 점검)에 대해서 미보고 혹은 ‘해당 없음’이라고 기재했고, 강제노동(HR7), 아동노동(HR6), 결사 및 교섭의 자유(HR5) 등 보고가 수월한 지표들의 점수가 높았다.
 
안치용 한국CSR연구소장은 “정부의 정책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동시에 기업의 동참을 끌어내야 한다”며 “당장은 기업의 사회보고의 충실도와 신뢰도를 높이는 한편 사회보고를 확대하는 ‘공시’를 확대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5년 11월 8일 오전 서울 청계천 전태일다리에서 열린 전태일 열사 45주기 추모대회 모습. 사진/뉴시스
이주인 KSRN기자
편집 KSRN집행위원회(www.ksr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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