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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우리의 '1987'은 결코 지지 않는다
2018-01-09 06:00:00 2018-01-09 06:00:00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나요..”. 영화 ‘1987’에서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린 대사다. 그렇다. 우린 세상을 바꾸려 했다. 그렇지만 지금도 더디게 바뀌어가는 세상을 걱정하며 이러다 또 망가지진 않을까 걱정한다.
 
가진 게 많은 이들일수록 세상이 바뀌기를 원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지금도 갖고 누리는 게 많으니 굳이 세상을 바꾸어 혼란을 초래할 필요가 없다. 거기까진 좋다. 그래도 최소한 옳고 그름은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소위 70년대 명문고 출신들이 모여서 세상이 망가졌다는 한탄을 한다는 소릴 들으면, 그런 이들이 일구어 온 세상과 우리의 현대사가 왜 이 모양인지 알 수 있다.
 
공동체의 발전과 더불어 사는 삶의 소중함보다 어떻게든 권력자의 눈에 들면 부와 권력을 얻을 수 있고, 그것이 과거 선조부터 이어 온 출세의 욕망을 실현하는 당연한 지름길이라 믿어왔던 이들에게 독재정권이란 굴종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구현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통로였을 뿐이다.
 
그런 이들이 부끄러움보다 자부심을 앞세우고 여전히 돈과 힘을 갖고 있으니 세상은 쉽게 나아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 끊임없이 노력하면 결국 악은 무너진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우리가 못하면 자식들이 하고, 자식들이 못하면 손주들이 해내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당장 다스와 BBK의 실소유주를 둘러싼 논란을 떠올려보자. 맨 처음 문제를 제기한 정치인과 그에 맞서 자신의 소유권을 부정한 정치인은 대통령이 되었다. 똑같은 얘기를 했지만 한 정치인은 실형을 선고받아 감옥에 갔다.
 
지금은 어떤가. 실형을 복역하고 만기출소한 이는 연말에 복권되어 화제의 중심에 올랐다. 많은 이들이 과거 그가 수감되던 장면을 떠올리며 이제 진실을 밝히라 요구하고 있다. 대통령이 되었던 이들 가운데 하나는 이미 수감되었고, 남은 하나도 결국 수감될 것으로 예상하고 기대하는 이들이 절대 다수다. 우리가 마음을 합치고 촛불을 드니 이토록 빨리 세상이 변했다.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권력, 그들만이 쌓아올린 강고한 기득권의 철옹성도 시민과 언론의 각성으로 그 속살과 민낯이 드러났다. 학벌과 지위를 앞세워 거짓말을 남발한 이들은 결코 남달리 고귀하거나 존경받을만한 위인들이 아니라는 사실이 너무도 적나라하게 밝혀졌다.
 
세계 역사상 최초로 촛불을 들어 대통령을 탄핵하고 새 역사를 일구어가는 시민들. 그들에겐 30년 전 광장과 거리에서 함께 싸운 소중한 추억이 있었다.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 일구어 간 희망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아이들은 민주주의를 당위로 전제하는 세대가 되었다. 도저히 ‘촌스럽고 구린’ 정치와 권력을 방치할 수 없다며 즐겁게 촛불을 든 것이다. 그렇게 우린 2017년을 보내고, 다시 새해를 맞았다.
 
여기서 다시 떠오르는 목소리가 있다. 2001. 12. 10. 서울힐튼호텔에서 열린 한 정치인의 후원회 겸 출판기념회에서 그가 진심을 다해 외쳤던 말이다.
 
"조선 건국 이래로 600년 동안 우리는 권력에 맞서서 권력을 한 번도 바꿔보지 못했다. 비록 그것이 정의라 할지라도, 비록 그것이 진리라 할지라도 권력이 싫어하는 말을 했던 사람은, 또는 진리를 내세워서 권력에 저항했던 사람들은 전부 죽임을 당했다. 그 자손들까지 멸문지화를 당했다. 패가망신을 했다.
600년 동안 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권력에 줄을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그저 밥이나 먹고 살고 싶으면 세상에서 어떤 부정이 저질러져도, 어떤 불의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밟고 있어서 모른 척하고 고개 숙이고 외면해야 했다. (중략)
권력에 맞서서 당당하게 권력을 한 번 쟁취하는 우리 역사가 이뤄져야 만이 이제 비로소 우리의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이야기할 수 있고, 떳떳하게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는 대통령이 되었지만 새로운 역사의 꿈을 다 이루지 못했다. 이제 우리는 그의 목소리를 기억하며 또다시 세상을 바꾸려 한다.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과 앞으로 살아갈 사람들을 위하여 한 걸음 더 나아가려 한다. 그래서 우리의 새해는 결코 지지 않는 1987이 될 것이다.
 
 
최강욱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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