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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규제 혁신은 백년하청인가
2018-07-12 07:00:00 2018-07-12 07:00:00
전재경 사회자본연구원장
 
 
언제부터인지 모든 정부는 출범 초부터 규제 개혁을 내걸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권이 끝날 무렵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처음에 없앴던 것만큼의 규제가 다시 생겨났다. 수많은 위정자들과 재계가 한결같이 규제 개혁을 갈망했는데, 왜 현실은 이럴까. 부지런한 정치가와 행정가들이 필요한 규제를 만들어낸 다음, 효용이 다 됐는데도 이를 없애지 않고 자리를 떠났기 때문이다. '규제하는 것'을 업무로 맡은 당국 입장에서 볼 때는 '불필요한 규제'란 없다. 하지만 규제 받는 쪽에서 볼 때는 규제란 만들기보다 없애기가 더 어렵다. 왜 이런 숨바꼭질이 지속될까. 규제의 패러다임을 바꾸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의 규제개혁은 속도전으로 나타난다. 언론 보도를 보면 문재인 대통령은 "경쟁국들은 뛰어가는데 우리는 걸어간다. 혁신성장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 혁신에 속도를 내달라"며 "지체된 규제 혁신은 구호에 불과하다. 우선 허용하고 사후에 규제하는 네거티브 방식도 속도를 내달라"고 주문했다. 이런 상황에서 '규제혁신점검회의'가 준비 부족을 이유로 취소되자 규제 개혁 전문가들은 잔뜩 긴장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공무원들이 몸을 사리고 나서지 않으면 아무리 대통령이 규제 혁신을 강조해도 시늉을 내는 데만 그칠 수 있다"고 말할 정도다.
 
규제는 비판과 주문만으로 개혁되기 어렵다. 규제의 속성을 간파하고 규제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규제는 국가경제와 기회 균등, 혁신, 기업가 정신의 촉진, 환경 등의 다양한 정책을 수행하는 데 중요한 수단이다. 그러나 사회와 경제의 급속한 변화와 더불어 혁신을 저해하고 무역과 투자, 경제효율에 불필요한 규제는 장애가 된다. 더 나아가 시대에 뒤떨어진 규제는 아예 문제로까지 인식되고 있다. 오늘날 세계의 모든 국가들은 자국의 규제와 국민의 사회경제적 이익을 효율적으로 촉진하기 위한 프로세스를 재검토할 책임을 진다. 규제 완화를 추진함과 동시에 잔존한 규제들에 대해서는 질과 비용의 효율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용기 있는 개혁에 착수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국가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규제를 포괄적으로 이해하려는 입장에서는 규제를 "국가 및 국가로부터 권한이 이양된 기관이 기업과 시민, 국가 자신에게 부과하는 법률·명령·기타의 것"이라고 정의한다. 규제에는 정부가 기업과 시장의 결정에 직접 개입하는 경제적 규제(가격과 진입규제 등), 사회적 규제(건강, 안전, 환경 등을 수호하는 규제), 행정적 규제(정부의 형식적 절차) 등이 있다. 규제제도 개혁이란 이런 것들 중에서 규제의 질을 향상하고 규제를 개선하거나 새 규제를 창설하는 것, 관리 공정을 향상하는 것 등을 말한다. 또 규제철폐(Deregulation)란 규제제도 개혁의 일부로, 어떤 분야에 대한 규제를 전부 또는 부분적으로 철폐하는 것이다.
 
그동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중심으로 "정부를 국민에게 되돌려 줘야 한다" 또는 "정부를 국민의 등에서 떼어놓아야 한다"는 구호로 표상되는 몇 가지 접근들이 이뤄졌다. 규제의 부정합성이 확인되고 규제가 더 이상 정당화될 수 없는 경우에는 규제를 완화하자는 게 핵심이다. 특히 경제분야의 규제에 대해 계획요건이나 기타 명령통제형 규정들보다 이행기준과 같은 시장형 유인규제를 채택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정부 조직이 규제기구를 조정·감독하고 행정절차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는 것도 이런 접근 중 하나다. 
 
국내에서도 그간 투명성을 강화하고 행위기준을 보완하는 한편 규제 시스템의 일원화와 효율 증진, 공중 참여의 확장과 같은 대안이 제시된 바 있다. 규제개혁 당국도 "규제 개혁에는 마침표가 없다"는 슬로건과 함께 중단 없는 개혁을 표방했었다. 그러나 그보다 현명한 접근이 요구된다. 규제 관련 법제가 규제 개혁 정책에 충분히 호응하지 못하고, 규제 개혁이 지체되고 있는 현실도 인식해야 한다. 법제 개혁에 힘을 쏟아야 한다. 정부와 시장, 공동체가 협동해서 규제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야 하는 이유다.
 
패러다임을 재편하기 위해서는 규제와 규제 개혁의 모형을 정부 모형과 시장 모형, 공동체 모형 등으로 구분해야 한다. 특정 규제가 어느 모형에 해당하는지를 파악한 다음 부정합 규제는 제거해야 한다. 부정합 규제를 폐지하기 어렵다면 다른 법령으로 이관하거나 규제 체계를 재조정하는 방법도 있다. 모든 기존 규제들을 모형별 본질에 충실하게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시장 모형과 공동체 모형에 적합한 규제 질서를 재구성하자는 것이다. 나아가 정부와 시장 또는 정부와 공동체 등 양자, 다자(정부와 시장, 공동체) 간 동의를 얻는 협동규제를 실시해야 한다. 왜곡된 법률들을 바로잡고 통치에서 협치로 나아가지 않는 한 규제 혁신은 백년하청이다.
 
전재경 사회자본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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