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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작’ 이성민 “실제로 북한 다녀온 느낌이에요”
촬영 전 만난 ‘흑금성’ 박모씨…“실제 위압감 엄청났다”
현장 분위기 실제 북한 절묘하게 묘사…”너무 놀랐다”
2018-08-07 06:00:00 2018-08-07 14:04:44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포털 사이트 인물 검색으로 본 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무려 70편의 영화와 드라마가 나온다. “도대체 이 영화 어디에 나왔지?”란 작품부터 “맞아! 그 역할!”이라며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작품까지 다양하다. 배우 이성민은 의외로 단역부터 지금의 위치까지 차곡차곡 자신의 경력을 쌓아온 대기만성형 배우란 증명이다. 올해 50세인 이 배우는 이제 충무로에서 단연코 캐스팅 0순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올 여름 극장가 ‘빅4’ 가운데 2편의 주인공이 이성민이다. 올 겨울 개봉하는 또 다른 블록버스터까지 포함하면 현재 충무로의 중심은 분명히 이성민이다. 물론 언제나 소탈하고 부끄러움이 많고 낯을 가리는 성격 탓에 주목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느낀다며 인상 좋은 아저씨 웃음을 터트린다. 이런 푸근한 느낌의 배우가 ‘공작’ 속 북한 고위 권력층 ‘리명운’을 연기했다니. 사실 좀 믿기지는 않는다.
 
배우 이성민. 사진/CJ엔터테인먼트
 
지난 달 31일 ‘공작’ 언론 시사회가 있었다. 시사회 이후 호평이 쏟아졌다. 이 기운은 인터뷰 날인 2일 오전까지 이어졌다. 이성민은 지난 5월 칸 영화제 상영 당시의 기분과 언론 시사회 날의 기분을 비교하며 안도의 한 숨을 쉬었다. 워낙 큰 규모의 제작비가 투입됐기에 스토리를 주축으로 끌어가는 주인공 중 한 명으로서의 부담감 그리고 새로운 형태의 장르 해법을 제시한 영화를 책임지는 배우로서의 부담감이 공존한다고 했다.
 
“기분 많이 좋아요(웃음). 다행이 국내 기자 분들이나 평론가님들 모두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아서 좋죠. 칸에선 글쎄 뭐랄까요. 좀 생경한 느낌이 강했어요. 정서를 이해한다기 보단 좀 다른 지점으로 관람하는 느낌이 강했죠. 그리고 칸에선 상영할 때 자막도 세 개가 한 번에 스크린에 나오니 보기도 불편하고(웃음). 국내 언론 시사회에선 저희가 생각했던 지점에서 웃고 즐기고 또 진중한 부분에선 공감하고. 한국 정서에 딱 맞게 보는 것 같아 좋았죠.”
 
모든 배우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영화 ‘공작’은 실제 사건이자 실존 인물이며 현재도 생존해 있는 암호명 ‘흑금성’ 박모씨의 실화다. 대한민국 국적으로 북한을 수시로 넘나들며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을 독대하는 등 상상을 초월한 활동을 해왔던 인물이다. 이를 토대로 시나리오가 쓰여졌다. 사실에 기반을 둔 팩션이고 그 ‘사실’이란 단어에 놀라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배우 이성민. 사진/CJ엔터테인먼트
 
“시나리오로 처음 보고 ‘이게 진짜였다고?’라고 반응이 나올 수 밖에 없었죠. 안그러겠어요(웃음). 이 사건이 실제로 보도가 될 때 탈주범 신창원 사건으로 온 나라가 뒤숭숭할 때였어요. 그때 슬쩍 지나가는 기사로만 저도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것 같지 이렇게 자세하게는 몰랐어요. 시나리오를 읽어보니 ‘김정일을 두 번이나 만났고’ 이러는 데 안 놀라겠어요. 하하하. 우린 영화에서도 항상 간첩은 북에서 남으로 오는 건데 이건 남에서 북으로 보낸 거잖아요. 이게 가능해? 이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죠. 그리고 실제로도 박 선생님을 뵈었죠. 위압감이 엄청나더라고요.”
 
실제 ‘흑금성’ 박씨를 만난 일화에선 이성민은 놀랍다는 듯 연신 혀를 내둘렀다. 당시 함께 만난 황정민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고. 더욱 놀라운 것은 이성민이 영화 촬영을 하면서 알게 됐단다. 극중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을 만나는 장면을 촬영하면서 시쳇말로 오줌을 지릴 뻔 했다고. 이런 상황을 실존 인물인 박씨는 태연스럽게 두 번이나 홀로 북한에서 독대를 했었다는 것이다. 그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박 선생님 기운이 정말 대단해요. 근데 그걸 제대로 알게 된 게 김정일 위원장 만나는 장면 찍을 때에요. 그 장면 찍는 세트가 천장이 굉장히 높게 제작돼 있는 곳이었거든요. 뭔가 공간이 좀 이상했어요. 기운이 눌리는 느낌? 나하고 정민이하고 딱 서 있고 저 쪽에서 ‘장군님 들어오십니다’ 이러는 데 와 그때 긴장감은 말로 표현이 안돼요. 오죽하면 정민이하고 나하고 둘이 ‘여기 공간이 좀 이상해’라며 고개를 저었다니까요(웃음). 아니 그리고 김정일 위원장 분장이 너무 똑같아(웃음). 진짜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니까요.(김정일 위원장은 배우 기주봉이 특수 분장을 하고 출연했다)”
 
배우 이성민. 사진/CJ엔터테인먼트
 
사실 이성민이 이 영화를 촬영하면서 가장 고충을 겪은 장면은 따로 있다. 바로 극중 ‘흑금성’ 박석영(황정민 분)과 리명운(이성민 분)이 처음 만나는 장면이었다. 북경 주재 북한 대외경제위원회 처장인 리명운이 중국의 ‘고려관’이란 식당에서 처음 박석영을 대면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남한 스파이 박석영과 북한 고위층 리명운이 서로를 염탐하기 시작한 첫 지점이다. 숨을 막힐 듯한 긴장감이 스크린을 찢는 느낌이었다.
 
“딱 그랬어요. 정말 숨이 막혀 죽을 정도였어요. 서로 식탁에 앉아서 대화만 주고 받는 장면인데 와 죽겠더라고요. 그 장면에선 자세도 못 바꿔요. 일반적으로 호흡을 바꾸거나 자세를 바꾸며 분위기를 환기 시키거든요. 배우들은. 그런데 그 장면은 그럴 경우 긴장감이 확 떨어져요. 몰입감 자체가 달라지죠. 영화 설정으로도 호흡이나 자세가 바뀌면 리명운이 흑금성에게 약점을 잡히게 돼 있어요. 결국에는 감독님과 상의해서 눈 깜빡이는 순간 숨 쉬는 지점까지 전부 다 계산을 했어요.”
 
배우들조차 느끼는 이런 긴장감은 연출을 맡은 윤종빈 감독이 선언한 ‘구강 액션’ 때문이다. ‘공작’에는 그 흔한 액션이 단 한 장면도 안 나온다. 스파이 첩보 영화이지만 총 소리 한 번 나오지도 않는다. 그저 배우들 영화 속 캐릭터의 주고 받는 대사가 만들어 내는 긴장감이 이 영화의 주된 동력이다. 그럼에도 그 긴장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 배경에는 우선 엄청난 대사량이 깔려있다.
 
배우 이성민. 사진/CJ엔터테인먼트
 
“하하하. 시나리오 처음 받고 한 번 읽고 첫 느낌이 ‘진짜 대사 많다’ 였어요. 정말 엄청났죠. 그리고 그 흔한 액션이 한 장면도 없어요. 감독님이 ‘대사를 칠 때 다이나믹하게 해달라’ ‘액션 장면처럼 대사를 해달라’ 이러는 데 그게 대체 뭔지. 하하하. 사실 시나리오 읽을 때도 그렇게 긴장감을 느끼지는 못했어요. 근데 막상 현장에서 촬영을 하니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죠. 아마도 이 영화가 주는 공간의 힘이 가장 컸어요.”
 
그의 말처럼 ‘공작’의 가장 큰 힘은 공간이었다. 김정일 전 국방 위원장 접견실, 북한 영변 장마당, 김 전 위원장 비밀 별장 등 실제 북한 곳곳에서 촬영을 한 듯한 모습이었다. 물론 제작진이 국내에서 헌팅을 통해 찾아낸 알려지지 않은 공간과 지역들이었다. 이성민은 이 공간들에 들어설 때마다 머릿털이 쭈뼛쭈뼛 서는 느낌을 받았단다.
 
“아니 지금도 생각해보면 실제 북한 다녀온 느낌이에요. 가는 곳마다 정말 놀라 자빠질 정도였다니까요(웃음) 특히 영변 장마당 장면은 진짜 똑같다고 하더라고요. 저희 자문해주시는 탈북자 분께서 장마당 촬영 날 아침에 현장을 돌아다니시면서 막 혼자 욕을 하시는 거에요. 알고 보니 북한에서 본인 겪은 장면이 생각이 나서 그러신 거더라고요. 실제로 딱 그 모습이래요. 그 분 설명에 윤 감독은 저 뒤에서 씩 하고 웃고. 하하하. 본인이 잘 했단 거지 뭐(웃음). 사실 윤 감독이 진짜 대단해요. 중국 ‘고려관’ 장면에선 아침에 현장에 갔는데, 보조 출연자 분들이 다 한복을 입고 대기 하고 계셔서 인사를 했죠. 그런데 대꾸를 안 해. 알고 보니 다 중국 분들이었어요. 윤 감독이 이미 오디션을 다 봐서 북한 사람처럼 생긴 현지인을 다 뽑아 놓은 거에요. 우리랑 그렇게 술 먹고 놀았으면서 언제 이런 걸 다 했는지. 참(웃음)”
 
배우 이성민. 사진/CJ엔터테인먼트
 
그는 ‘군도: 민란의 시대’에서 윤종빈 감독과 한 번 작업을 해 본 바 있다. 당시의 경험이 ‘공작’ 출연 결정의 큰 몫이 된 것 같단다. 물론 윤 감독도 이성민을 꼭 필요로 했다고. 두 사람은 단 두 작품이지만 이제 땔래야 땔 수 없는 충무로 최고의 콤비가 된 듯 하다.
 
“윤 감독을 보면 캐스팅의 절묘함을 아는 것 같아요. 저 배우와 이 배우가 만나 일으킬 화학 작용을 다 계산을 하는 것 같아요. 아니 이미 알고 있더라고요. 그러니 현장에서 디렉션이 거의 없어요. 그냥 ‘자 하세요’ 이게 다에요. 그리고 그걸 유심히 보면서 어떻게 요리를 할지 구상을 해요. 그러니 ‘공작’ 같은 영화도 가능한 것 같아요. 윤종빈이기에 가능했던 영화죠.”
 
김재범 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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