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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누진제 완화 뒷감당 자신 있나
2018-08-16 06:00:00 2018-08-16 06:00:00
김의중 정치부장
누구나 한 번쯤은 아파트 경비실을 찾거나 적어도 지나쳐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1평에서 4평 남짓한 비좁은 공간이다. 작은 창문에 통풍도 잘 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폐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머무는 건 꿈도 못 꾼다. 이곳을 지키는 사람은 직장을 퇴직하거나 연로한 경비원들이다. 최저임금을 받아 어렵게 생활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경비원에게 가장 힘든 계절은 여름이다. 올해 111년 만의 기록적 폭염은 벌써 35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경비원들은 하루의 대부분을 내리쬐는 태양 아래서 보낸다. 쓰레기 처리와 분리수거, 청소, 주차관리 등 할 일이 태산이다. 잠시라도 숨을 돌리러 경비실에 들어올 때면 기다리는 건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아닌 햇볕에 달궈진 펄펄 끓는 찜통이다.
 
그나마 단지가 크거나 최근 지어진 아파트 경비실의 환경은 조금 낫다. 에어컨과 선풍기가 있는 곳이 많고 공간도 넉넉한 편이다. 하지만 세대수가 적거나 취약지역의 아파트일수록 환경은 더욱 악화해있다. 에어컨이 없거나, 있어도 주민들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켜지 못한다. 심지어 일부에선 전기세가 나간다며 에어컨이 설치돼 있음에도 켜지 못하도록 비닐로 꽁꽁 싸매놓은 곳도 있다고 한다. 경비실에 에어컨이 구비돼 있지 않은 아파트들은 최근 에어컨 설치를 위한 찬반 주민투표를 진행한 곳이 많은데, 부결된 곳도 더러 나오고 있다.
 
각박한 현실이다. 경비실은 취약계층이나 에너지 빈곤층으로 분류돼있지 않아 복지 사각지대다. 정부 차원의 지원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얘기다. 일부 지자체에서 경비실에 미니 태양광을 무료로 설치해주는 사업을 하고 있지만, 오롯이 기대기엔 전기 생산량이 턱없이 부족하다.
 
전기요금 문제는 비단 경비실에 그치지 않는다. 벌이가 넉넉지 못한 가정에선 여름만 되면 전기료 걱정에 한숨부터 나온다. 그러자 정부는 7~8월 주택용 전기료 누진제를 완화하고, 누진제 완화 방안을 중장기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국회도 뒤늦게 누진제를 손보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땜질식 처방이고 포퓰리즘 정책일 뿐이다. 전기 수요 구조를 알고 나면 누진제를 폐지하거나 완화하는 데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다. 국내 전기 사용량은 산업용, 상업용이 전체의 80%가량을 차지하고, 주택용은 주택은 13%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 13%에만 누진제가 적용된다. 가게들은 에어컨을 켠 채 문을 열고 장사하는 데 집에서는 전기료 걱정에 손을 떨며 에어컨을 켜야만 하는 이유다.
 
그러나 문제는 수요와 공급이다. 누진제 폐지로 늘어나는 전기 수요를 과연 정부가 감당할 능력이 될까. 아니라고 본다. 당장 누진제를 완화한 올여름만 해도 전력수요가 170만~200만kW 늘어날 것이라는 게 정부의 예측이다. 전력 수요는 고공행진을 하는데 전력예비율은 한 자릿수다. 이런 상황에서 누진제 완화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전문가들은 올해 폭염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한다. 최고 수준의 온실가스 배출과 꼴찌 수준의 재생에너지 생산 비중으로 볼 때 앞으로도 매해 폭염 기록을 갈아치울 공산이 크다. 언제까지 한시적으로 전기료를 깎아주고 어영부영 넘어갈 셈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전기료 인하로는 절대로 냉방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감당할 수준에서의 전기료 인하는 필요하지만, 요금을 내려 많이 쓰게 하자는 발상은 과감히 접는 게 맞다. 온난화를 부추기는 곳에 요금을 더 걷고 재생에너지 사용은 더욱 독려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폭염을 불러온 기후변화에 대응한 에너지 전략을 내놓는 게 정부가 할 일이다.
 
김의중 정치부장(zer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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