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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원인요법으로 근본 시스템 재편해야
2018-09-11 06:00:00 2018-09-11 06:00:00
아파트 값 광풍이 불면서 최저임금 시비가 약간 묻혔다. 광풍이 태풍으로 돌변하지 않는 한, 연말효과론을 내세우면서 소득주도 성장을 주도하는 청와대 정책실장이 시간을 벌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민심은 아침저녁으로 변한다. 대통령의 인기가 높을 때 약점을 보강해야 한다.
 
최근의 최저임금과 부동산시장을 바라보면서 대통령이 만능해결사 맥가이버인가라는 궁금증이 인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을 배경으로 전폭적인 지지를 획득하였으나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이 넓지 않다. 입법개혁 없이 정부가 행정만으로 취할 수 있는 대책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를 탓하기 전에 촛불혁명론에 비추어 몇 가지 짚어야 할 것들이 있다. 먼저 시장은 공정하고 공평한가? 그렇지 않다고 본다. 다수 경제정책은 완전경쟁시장을 모형으로 가정하고 정책을 입안하지만 실제 시장은 불완전경쟁이 기저를 이룬다. 하도급의 공정은 아직 요원하다. 시장의 담합도 여전하다.
 
공동체는 진실한가? 그렇지 않다. 토건 개발을 지향하는 일부 지역공동체는 관광활성화에 필요한 인프라를 건설할 능력도 없이 100% 국세가 투입되는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을 오로지 지역주민들의 손에 맡기라는 태도를 취한다. 대도시 값비싼 아파트의 일부 주민들은 아파트 값이 떨어질까봐 허위매물신고제를 악용한다.
 
부자들은 관용(자비)을 실천하는가? 부자의 덕목은 좌우를 불문하고 자선에 있다. 그럼에도 사회공헌은 공유가치창조(CSV)로 나가지 못하고 자사재단에 돈을 출연해 폐쇄회로로 굴린다. 표가 잘 나지 않는 사회공헌은 명목에 그치거나 임직원들의 자원봉사 활동에 의존한다. 다국적 기업이라고 하여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불신과 아집의 홍수가 넘치는 시장과 공동체에서 정의와 복지를 위하여 정부가 쓸 수 있는 정책수단들은 무엇일까? 만능공구는 없다. 정책 하나로 모든 문제를 단칼에 해결할 수는 없다. 균형을 잡는 중용의 정책이 필요하다. 많이 오해하지만 중도는 중용이 아니다. 중용은 스케이트를 타듯이 좌파가 우파정책을 수용하고 우파가 좌파정책을 수용하면서 전체적으로 일정한 방향성(법적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좌파 콤플렉스를 벗어나야 한다. 좌우합작이 절실하다. 모든 것을 정부가 알아서 해결해달라는 온정적 가부장식 계획경제의 구습에서 벗어나야 한다.
 
최저임금 사태를 바라보면서 "주머니돈이 쌈짓돈인가"라는 의구심이 든다. 소득주도성장이 원용하는 바, 케인즈가 주장하였던 유효수요론은 "중소 자영업자들의 주머니에서 일용 아르바이트생들의 주머니로 돈(소득)을 이전하라"는 뜻이 아니다. 유효수요의 원천에 주목해야 한다. 
 
소득주도성장만 돋보였고 산업구조의 재편을 지향하는 혁신성장이 잘 보이지 않았다. 재래식 산업의 성장정책도 아쉬웠다. 폐지, 고철, 유리병 등의 '고물'이 '순환자원'으로 개편되면서 자본화·대형화되어 영세사업자 내재 노인들의 손을 벗어났다. 순환자원보다 폐기물 개념이 앞서 청년들의 자존심을 해쳐 취업을 가로막았다.
 
면허나 자격증이 없으면 서비스산업에 발을 디딜 수 없다. 기득권이 자리잡은 보건 내지 유사의료 시장에 새로운 서비스 직종들이 기형적으로 자리매김했다. 경험 많은 할머니들이 맡았던 '산파'라는 직종은 오래 전에 사라졌다. 침, 뜸, 정골요법과 같은 전통지식은 모두 한의로 통합되었다. 마사지는 피부관리로 둔갑했다.
 
우선 급하더라도 대증요법은 한계가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원인요법에 따라 근본 시스템을 재편해야 할 것이다. 규제체계인 법제를 개혁하지 아니하고서는 경제가 자유롭지 못하다. 행정가나 공무원들은 자기가 필요한 만큼의 규제를 만들어 쓰고 그대로 그 자리를 떠난다. 철 지난 법은 적폐가 되기 쉽다. 규제 패러다임의 혁신이 필요하다.
 
당국은 광풍에 기여하는 시중의 유동성을 잡겠다고 나서지만 그 이전에 과세의 원천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보유세(재산세 및 종합부동산세)와 거래세(취득세 및 양도소득세)는 당초 길항관계를 이룬다. 상속세와 증여세를 그대로 두고서는 세제개혁이 불가하다. 세계 으뜸의 복잡한 세제도 대폭 단순화되어야 한다.
 
석유·외환·곡물 시장등에서의 선물(先物)거래를 본받아, 청약저축·분양보증·전매권 등과 연동되어 있는, 주택 선분양제는 폐지되든가 예외적으로 운용되어야 한다. 계획관리도 못하는 상황에서 자금 없이 아파트를 지을 수 있도록 허용하고 투기의 근원을 방치함은 모순이다. 공공신탁 등을 통한 공유지 확대가 선행되어야 한다.
 
즉효약은 없으니 시차를 고려해야 한다. 바닷물 온도는 한 철 늦게 변하듯이, 효과발생 전까지는 자기호흡으로 버텨야 한다. 외교·국방만으로는 양극화를 해소할 수 없다. 대통령이 총리, 정책실장, 사회수석, 기재부장관, 국토부장관, 법제처장을 한 자리에 모아 자기철학과 신념을 보여야 한다. 묘수는 있으나 신(神)의 한 수는 없다.
 
전재경 사회자본연구원장(doctorch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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