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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과실 탐내기 전 육성지원이 먼저
2018-09-13 06:00:00 2018-09-13 06:00:00
보건복지부가 오는 2020년까지 바이오헬스 분야에서 42000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국내 재계 서열 1위 삼성이 그룹차원에서 바이오산업을 포함한 4대 산업에 25조원을 투자해 대규모 일자리 창출에 앞장서겠다고 발표한지 한 달여 만이다.
 
이쯤 되면 제약·바이오업계를 포함한 헬스케어산업이 확실히 국가 차원의 차세대 성장 동력 산업으로 인정받은 듯하다. 대통령 직속으로 '일자리위원회'까지 만들어가며 일자리 문제 해결에 무게를 실은 정부 입장에선 보증된 효자처럼 보일 법도 하다.
 
하지만 한 편으론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마치 사회에 나와 자리를 잡기도 전에 집안의 미래를 짊어져야 한다는 부담을 안은 우등생을 보는 기분이다.
 
국내 헬스케어산업의 가능성은 최근 글로벌 무대에서 속속 검증되고 있다. 지난 2015년 한미약품의 대규모 기술수출 계약을 비롯해 최근 바이오시밀러 대표주자 셀트리온의 선진 시장 입지 강화까지 글로벌 대형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이다.
 
그동안 국가 산업 경쟁력을 견인해 온 전통 제조업들의 성장세가 주춤한 상황에서 헬스케어산업으로 국가 차원의 기대감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가능성 수준이 아닌 본격적 경쟁력을 펼쳐야 하는 국내 헬스케어산업의 발목을 잡아왔던 요인이 깐깐한 정부 규제였던 점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국내 헬스케어산업이 100년이 넘는 산업(제약 기준) 역사에도 불구, 국제무대에서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이 최근 수년 사이인 점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단기적 출혈을 불사하고 R&D 투자에 매진해 온 기업들 스스로가 이뤄낸 결과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 헬스케어시장은 물론, 한 수 아래로 여겨지던 중국조차 국가의 전폭적 지원사격에 앞서 맹추격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갈 길 바쁜 국내 산업은 여전히 원격의료 규제와 회계감리, 보수적 약가정책, 원료 물질 수입 기준 등의 규제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최근 들어 헬스케어산업이 주목받으며 산업 육성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구체적이고 효율적인 규제 개선 방안 보다는 정부 투입자금 규모 내세우기에 바쁜 수준이다. 성장 탄력을 받기 위해 정부가 깔아주는 멍석이 필요한 헬스케어산업은 때 이른 일자리 창출 보은만 강요받고 있는 셈이다.
 
파격적이라고 할 만한 삼성의 대규모 투자 계획 역시 주요 계열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고의 분식회계 의혹으로 전방위 압박을 받고 있던 당시, 이재용 부회장과 김동연 경제부총리의 만남 직후 발표된 내용이다. 당시 삼성은 바이오산업 규제 완화를 요청했고,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받아낸 뒤 곧바로 투자 계획을 내놨다.
 
헬스케어산업은 이미 최근 10년간 평균 2.7%의 고용 증가율을 기록하며, 전체 제조업 평균(1.3%) 대비 2배가 높은 일자리 창출 기여도를 보여 왔다. 현 정권의 핵심 현안 중 하나인 청년고용률 역시 45.5%로 전체 산업 평균(23.4%)의 두 배에 이른다. 한국고용정보원이 향후 10년간 중장기 인력수급 전망을 기준으로 예측한 고용증가율 1위 업종 역시 의약품제조업이다. 억지로 쥐어짜지 않아도 산업 성장에 맞춰 자연스럽게 일자를 늘려나가고 있는 셈이다.
 
가파른 고령화 사회 진입 속 제약·바이오산업이 차세대 '황금 알을 낳는 거위' 산업으로 성장하리란 전망을 의심하는 시선은 많지 않다. 하지만 그 거위가 채 자라기도 전에 배부터 가르려는 우화 속 우행을 나서서 범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정기종 중기부 기자 (hareggu@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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