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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생육신과 의병장의 후예 맞습니까
2018-10-08 07:00:00 2018-10-08 08:25:04
최병호 산업1부 기자
어계 조여(漁溪 趙旅, 1420~1489) 선생은 조선시대 선비다. 벼슬길에 나갔지만, 세조가 조카 단종의 왕위를 빼앗는 모습을 보자 관직을 버리고 경상남도 함안에 낙향했다. 선생은 평생을 세상 밖으로 나가지 않았고, 세조가 관직으로 불러도 답하지 않으며 단종에 대한 의리를 지켰다. 역사는 어계처럼 부귀영화를 버리고 지조를 고수한 사람들을 생육신이라고 불렀다.

어계의 5대손인 대소헌 조종도(大笑軒 趙宗道, 1573~1597) 선생은 함안군수를 지냈다. 관직에 있으며 선정을 베풀어 칭송이 자자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조직해 왜군과 싸우다 순국했다. 어계와 대소헌의 유산은 대의명분과 의리를 중시하고 불의에 저항하며 한낱 이익에 연연치 않는 선비정신이다. 이는 함안에 대대로 뿌리내린 함안 조씨들이 물려받았고 자긍심으로 삼았다. 효성 창업주인 만우(晩愚) 조홍제 회장도 마찬가지다. 만우는 어계의 17대손, 대소헌의 12대손이다. 함안에서 태어나 선조의 내력을 듣고 자랐을 만우는 "대의를 먼저 생각하며 옳은 일은 신념을 굽히지 말고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술회했다. 또 집안 내력에서 배운 "꿋꿋하지 못하면 욕심이 있고, 옳지 않으면 곧 망함이 있으리라"는 말을 경영의 버팀목으로 삼았다.

하지만 최근 효성의 모습을 보면 어계부터 이어진 선비정신과 만우가 강조한 경영자의 자세는 무색해진다. 부귀영화를 사사로이 여기며 대의명분을 지키라던 가르침은 간데없다. 만우의 장남 조석래 명예회장과 손자 조현준 회장은 조세포탈과 횡령 혐의로 수년째 재판 중이다. 최근에는 회삿돈을 들여 만우의 호화 묘역을 조성한 사실도 확인됐다. 의리도 사라졌다. 효성 총수일가는 이른바 '형제의 난'을 겪으며 집안의 온갖 추문이 세상에 드러났다. 조 회장은 200억대 비자금 조성 혐의로도 재판을 받고 있다. 세인들에게 효성은 글로벌 기업으로도, 재벌로도 각인되지 않았다. 부도덕한 총수로 인해 매번 사고가 터지는 기업으로만 인식될 뿐이다. 그룹 이미지는 물론 재계순위도 1987년 16위에서 올해 25위까지 떨어지며 위상이 하락했다. 아무리 돈이 중요해진 시대고 재벌가라지만 생육신과 의병장, 기업가로 이어진 선조의 얼굴에 후손들이 먹칠하는 꼴이다.

올해 효성은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고 기업가치를 제고하겠다며 지주사체제로 전환했다. 하지만 그룹의 철학과 경영이념, 미래비전을 제시하고 결정하는 것은 결국 조 회장이다. 조 회장이 먼저 도덕성을 확립하고 경영자로서 솔선수범하지 않는다면 효성은 영원히 일류가 될 수 없다.

최병호 산업1부 기자(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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