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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칼럼)작업복의 자부심 살려줘야
2018-11-21 16:25:34 2018-11-21 17:59:59
지난 15일 호주 포트헤들랜드 국제공항. 오후 6시30분 출발해 퍼스 국제공항으로 가는 국내선 여객기에 탑승하니 연두와 분홍의 형광색 물결이 가득했다. 주말을 앞둔 목요일이라 직장에서 업무를 마치고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입고 있던 작업복이었다. 남녀노소 상관없이 직장에서 입었던 작업복 차림 그대로 귀가길에 나선 것이었다.
 
항구도시이자 광산도시인 포트헤들랜드에는 이러한 작업복을 입고 몸을 쓰는 일을 하는, 블루칼라 직원들이 많다고 한다. 안전사고 위험이 높은 작업장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작업복은 멀리서도 눈에 잘 띄는 색상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호주 노동자들은 그런 작업복을 일상복처럼 입고 다닌다. 포트헤들랜드는 물론 퍼스 시내에서도 작업복을 입은 사람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자신의 이름이 박힌 톡톡 튀는 색상 작업복을 입고 다녀도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은 듯 했고, 사람들도 그런 모습에 특별히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취재를 지원해준 현지 교포에게 물어보니 호주에선 이런 모습이 전혀 문제될 게 없다고 한다. 호주에서는 일의 가치를 따지는데 있어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를 구별하지 않는단다. 불법이나 범죄가 아닌 이상 어떤 종류의 노동이라도 그 가치를 인정해 준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배관공이나 욕조 타일을 붙이는  기술이나 기능을 보유한 있는 사람들은 웬만한 사무원들에 비해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곳이 호주이며, 그런 기술을 보유한 사람을 우대해준다고 한다.
 
수년 전 남해지역 대형 조선소에서 일하고 있는 한 직원이 기자에게 씁쓸한 경험을 했다며 들려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자신을 비롯한 직원 몇 명이 갑자기 급한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는 상부의 지시를 받고 작업복을 입은 채 그대로 서울로 올라와야만 했다. 서울시내 거리를 걸어가는 도중 일행을 지나치던 주부가 자신들이 들으라는 듯이 아들에게 큰소리로 말하더란다. “너, 공부 열심히 해야 돼. 안 그러면 저 아저씨들처럼 된다.”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도 역시 조선소 직원의 딸이라고 밝힌 사람이 올린 질문 때문에 네티즌들이 갑론을박을 벌인 적이 있다. ‘우리 아버지가 OO조선소에 다니시는데 연봉이 OOOO만원이시거든요. 그런데 그 연봉이 그렇게 적은 액수인가요?’ 딸이 밝힌 아버지의 연봉은 결코 작은 액수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 질문에 달린 답글 중에는 작업복을 입고 일하는 직업에 대한 조롱에 가까운 내용들이 많았다. ‘몸으로 때우는 일을 하는데 그 정도도 못 받느냐’, ‘그럴 바에는 백수가 되겠다’, ‘아직도 그런 일을 하느냐’ 등 말이다.
 
기자가 호주에서 목격한 장면은 1980년대까지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 때만해도 출퇴근 할 때나, 친구들과의 약속장소에 나갈 때, 심지어 맞선을 볼 때도 작업복을 입고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서울 거리에서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을 볼 수 있는 장소는 노동조합 조합원들의 집회 현장 밖에 없어 보인다.
 
모든 사람들이 제조업을 살려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하지만 작업복을 입고 안전모를 쓰고, 안전화를 신고 일하는 이들의 자부심도 살려주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기자가 이런 얘기를 들려주자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그 정도는 바라지도 않는다. 우리 직업을 나쁘게 바라보지만 않아도 행복하겠다”고 말했다.
 
채명석 산업1부 재계팀장 oricms@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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