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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중국이 만만해 보이는가
2019-02-07 06:00:00 2019-02-07 06:00:00
서명수 슈퍼차이나 대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국을 방문,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4차 북중 정상회담'을 한 지 한 달이 지났다. 노영민 전 주중대사가 대통령 비서실장 임명장을 받으러 귀국한 지도 한 달이 지났다. 그 사이 북한은 리수용 북한노동당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친선예술단을 베이징에 보내 북중 우의를 다지는 공연을 펼쳤다. 지난달 28일에는 시 주석이 펑리위안 여사와 함께 공연을 본 뒤 예술단과 기념촬영을 하는 등 북중 밀월관계는 더욱 깊어지고 있다.
 
그 사이 우리 정부는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기는커녕, 주중대사 부재 상태를 한 달째 방치하고 있다. 2월 말 예정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의 역할과 위상은 과거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주중대사는 중국을 상대로 전방위로 뛰어야 할 야전사령관과 같다. 정부가 중국을 만만하게 보거나 무시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주중대사를 하루라도 빨리 보내지 않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중국을 만만하게 보는 것이 아니라면, 주중대사의 역할과 위상을 그다지 중요하게 보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문재인정부의 초대 주중대사는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다. 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그를 주중대사에 보임한 것은 그만큼 문 대통령과 우리 정부가 중국을 중시한다는 정치적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역대 정부에서도 주중대사는 대통령의 측근이나 실세급 인사를 보냈다. 그러나 실세라도 중국을 잘 모른다면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노 전 대사 역시 그런 평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인물난인가, 아니면 주중대사의 역할에 대한 안이한 판단 때문인가. 노 전 대사가 주중대사로 재임하면서 중국 고위인사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북핵문제는 물론이고 양국 현안 해결의 막후 해결사 역할을 제대로 했다면, 한시라도 하루라도 빨리 후임 대사를 보내야 한다는 절박함을 가졌을 것이다. 1년4개월 만에 비서실장으로 금의환향(?)한 그는 김 위원장의 방중이 예고됐고, 그가 베이징에 도착한 시각에 비서실장 임명장을 받고자 한국에 돌아왔다. 노 전 대사는 지난해에도 김 위원장이 방중했을 때 개인적 사정으로 한국에 있었다. '주중대사가 현지에 있어 봤자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무용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야전사령관이 중국 현지에서 긴박하게 돌아가는 북핵문제와 북중관계의 현장을 지휘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주중대사 부재 한 달째, 정부가 후임 인선을 서두르는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외교부의 3월 정기 공관장 인사 때까지 기다려봐야 한다는 관측이다. 그때는 늦다. 2차 북미 정상회담 등 후임 주중대사가 업무파악도 하기 전에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굵직굵직한 현안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정말 주중대사가 없어도 괜찮은 것일까. 업무공백 우려에 대해 정부는 "주중 대사관에 외교적 경험을 갖춘 직원이 있기 때문에 필요한 외교 업무를 담당하는 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주중대사 역할은 주중 한국대사관의 차석인 공사가 대리하고 있다. 정부가 이런 인식이라면, 제대로 된 주중대사를 찾을 의지가 없다면, 차라리 비워 둘 것을 권한다. 공사가 대사 업무를 맡아도 공백이 없다고 강변하는 정부는 주중대사의 역할을 대사관 직원관리 정도로 보는 것은 아닌가 하는 한심한 인식수준을 보여준다. 인물난이라기보다는 주중대사의 역할이나 중국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은 아닌지 우려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우리 주중대사의 역할이 미미하거나 기대에 못 미쳤던 다른 원인은 총선에서 떨어진 정치인들의 보신용 자리로 활용해서다. 중국을 잘 모르는 인사들을 실세랍시고 임명했던 그릇된 인식도 있다. 이명박정부에서 류우익 전 주중대사는 대통령 비서실장을 하다가 중국에 갔다. 박근헤정부에서는 총선에서 낙선한 권영세 전 의원이 초대 주중대사로 임명된 데 이어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보내기도 했다.

주중대사가 중국어를 잘 구사할 수 있느냐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임명장을 받고서야 인사말을 배우거나 '朋友' 같은 대중가요를 익히며 대중 외교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직업 외교관 출신인 김하중 전 대사는 김대중정부 말인 2001년 10월부터 참여정부 내내 주중대사를 역임했다. 최장수 주중대사로 꼽히지만 재임 중 현지에서 박사과정에 등록, 논란을 빚기도 했다. 미국과 다른 서방국가는 현지 언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대사는 보내지 않는다. 한중관계는 물론이고 한반도 주변 정세를 읽을 줄 알고, 중국을 잘 이해하고 능력 있는, 다음 총선에 출마하지 않고 현 정부 내내 일할 수 있는 그런 주중대사는 없는가.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didero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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