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전체를 관통하며 프랑스 사회를 거대한 폭풍 속으로 몰아넣은 역사적 사건으로 제시된 건 드레퓌스 사건이다. 유대인 포병 대위 알프레드 드레퓌스가 간첩 누명을 쓰고 기소되면서 촉발된 이 사건은, 프랑스 사회를 정치적으로 양분하며 극한의 대립으로 몰고 갔다. 이 거대한 균열은 소설에서 사교계 살롱의 풍경마저 뿌리째 뒤흔든다. 평생 쌓아 올린 사회적 자본은 "드레퓌스에 어떤 입장이냐"는 단 하나의 질문 앞에서 무너지기도 한다.
소설의 주요 인물 중 그 사건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이는 샤를 스완이다. 스완은 예술적 혜안과 세련된 교양 등으로 사교계의 정점에 서 있던 인물이었다. 스완이 드레퓌스의 무죄를 지지하는 '드레퓌스파'임을 명확히 한 순간, 그가 유대인이라는 사실까지 더해져 그에게 사실상 사교계의 파문이 내려진다.
"게르망트 공작부인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스완이 드레퓌스파라니, 정말이지 믿을 수가 없군요! 그 세련되고 똑똑한 이가 어쩌다가 그런 품위 없는 무리에 휩쓸리게 되었을까요? 우리 가문이 그에게 베푼 우정과 신뢰를 생각하면, 그의 이러한 정치적 편향은 단순한 의견의 차이가 아니라 명백한 배신입니다. 이제 그를 우리 살롱에서 보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공작부인의 선언은 차가웠고, 한때 사교계의 왕자였던 스완은 이제 사교계의 평화를 깨뜨리는 위험한 ‘정치적 분란자’로 낙인찍혀 소외당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재구성)
가치소비 시대와 '행동주의'의 탄생
과거 기업은 사회적 갈등이나 정치적 논쟁에서 최대한 거리를 두며 '정치적 중립성'을 견지하는 것을 황금률로 여겼다. "(민주당원뿐 아니라) 공화당원도 나이키 운동화를 산다(Republicans buy sneakers too.)"라는, 나이키의 광고 모델이었던 농구 선수 마이클 조던의 유명한 농담처럼, 불특정 다수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기업에게 특정 진영의 논리에 가담하는 것은 스스로 시장의 절반을 포기하는 자멸적 행위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21세기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도래와 소셜 미디어의 확산은 이 오랜 금기를 조금씩 무너뜨리고 있다. 밀레니얼세대와 Z세대를 포함한 현대의 소비자는 제품의 기능이나 가격만을 보고 구매를 결정하지 않는다. 기업의 가치관과 도덕적 지향점을 검증하고,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기업의 제품을 구매(Buycott)하는 동시에, 사회적 책무를 다하지 않거나 침묵하는 기업의 제품을 거부(Boycott)하는 가치소비 경향 또한 존재한다.
가치소비와 'CEO 액티비즘'과 '브랜드 액티비즘'은 맞물린다. 이 두 액티비즘은 기업의 리더나 브랜드가 기후변화, 인종 차별, 성평등, 총기 규제, 이민자 인권 등 사회·정치적으로 고도로 민감하고 논쟁적인 사안에 적극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행동에 나서는 경영 전략을 뜻한다. 침묵은 중립이 아닌 방조나 기회주의로 해석되며, 이해관계자들은 기업을 향해 종종 "당신들은 어느 쪽에 서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드레퓌스 사건이 사교계를 도려내었듯, 고도로 분열된 현대 사회에서 정치적 사안에 목소리를 내는 행위는 극단적인 위험을 동반한다. 한 진영의 열렬한 지지를 얻는 대가로, 다른 진영의 격렬한 분노와 조직적인 불매 운동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버몬트주 벌링턴의 한 매장에서 열린 기념행사에서 벤앤제리스의 창업자인 제리 그린필드(왼쪽)와 벤 코언이 아이스크림 콘을 직접 떠서 손님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벤앤제리스는 브랜드 액티비즘의 성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기업이다. (사진=뉴시스)
'CEO 액티비즘'과 '브랜드 액티비즘'
'CEO 액티비즘'과 '브랜드 액티비즘'은 긴밀하게 엮이면서도 뚜렷한 개념적 경계를 형성한다. 이 두 행동주의는 사회적 합의가 완벽히 이루어지지 않은 논쟁적이고 분열적인 사안에 기업이 주체적으로 개입하여 대중의 행동과 의식의 변화를 유도하려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두 방식 모두 이윤 극대화를 넘어 사회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비시장 전략 유형에 속한다.
CEO 액티비즘은 기업을 이끄는 최고경영자(CEO) 개인의 도덕적 신념과 지위를 결합해 공적 영역에 직접 목소리를 내는 형태이다. 기업 조직 전반의 정체성을 개편하기보다, 리더 개인의 인격적 가치관을 외부에 표명하는 의사소통에 가깝다. 반면 브랜드 액티비즘은 필립 코틀러 등 경영학계가 정립하였듯, 제품의 생산 방식, 마케팅 전략, 지배구조 개편 등 기업 활동 전반에 특정 사회적 가치를 깊숙이 욱여넣는, 보다 구조적이고 상업적인 실천 체계를 의미한다. 따라서 리더 개인의 가치 표명이 기업 본연의 역사적 맥락이나 실제 경영 활동과 결합하지 못할 때 CEO 액티비즘은 브랜드 전반에 치명적인 혼선을 일으키며 신뢰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
이 분야의 저명한 학자인 듀크 대학교의 아론 채터지(Aaron Chatterji)와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마이클 토플(Michael Toffel) 교수는 이러한 액티비즘의 인지 역학을 실증적으로 규명했다. 이들의 연구와 관련 문헌을 종합하면 기업의 행동주의가 초래할 효과를 결정짓는 핵심 동인은 다음과 같다.
■진정성과 일치성=소비자는 CEO의 정치적 메시지 자체보다 그것이 기업의 실제 실천과 얼마나 부합하는가를 가장 먼저 검증한다. 메시지만 화려하고 조직 문화나 공급망 관리 등 실질적인 경영 운영이 부합하지 않으면 '위선적인 포장(Woke-washing)'이라는 역풍을 맞는다.
■이해관계자 가치 일치도=액티비즘의 효과는 기업 고유의 정체성과 핵심 고객군이 지향하는 이념과 가치관의 결합 강도에 비례한다. 기업이 소구하는 목표집단의 정치적 성향과 메시지가 긴밀하게 조화를 이룰수록, 액티비즘은 브랜드와 고객 간의 감정적 연대를 고도화하는 매개체로 작동한다.
■사회적 양극화 수준=다루고자 하는 주제가 지닌 사회적 휘발성의 크기다. 국가 이념, 성 정체성, 민감한 현대사 등 갈등이 극도로 심한 주제일수록 사소한 개입조차 거대한 인지적 진폭을 유발하며, 기업에 전이되는 잠재 위험을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증폭시킨다.
■핵심 비즈니스 적합성=주장하는 사회적 가치와 기업 본업 간의 상관성이다. 화장품 기업이 동물실험 반대를 외치거나 제조업 기업이 친환경 공급망 구축을 주장하는 것은 비즈니스 맥락 안에서 직관적으로 설득력을 확보한다. 반면 본업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거대 정당 정치 구도나 국가적 이념 갈등에 맥락 없이 개입하면 대중의 거부감을 자극한다.
경영학 관점에서 기업의 행동주의가 평판의 순상승으로 이어지는 동력은 진정성과 가치 일치라는 신뢰 자산에 비례한다. 반면 사회적으로 대립이 격화한 양극화 이슈를 건드리거나 본업과 무관한 주제에 쓸데없이 뛰어들면 위험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벤앤제리스와 버드라이트
현대 비즈니스 역사에서 이러한 액티비즘의 성공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모델이 아이스크림 브랜드 벤앤제리스(Ben & Jerry's)다. 벤앤제리스는 창업 이래 '연계된 번영(Linked Prosperity)'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기업 DNA에 내재화했다. 그들은 기후변화 대응, 인종 차별 철폐, 성소수자 인권 보장 등 민감한 사회적 현안에 한정판 제품 개발 및 브랜딩을 결합하여 거침없이 목소리를 냈다.
벤앤제리스의 독보적인 자산은 수십 년 축적한 일관성 있는 진정성에 있다. 이들의 행동주의는 일시적인 마케팅 기획이 아니라, 공정무역으로 원료 조달, 내부 임금 격차 최소화, 독립적인 사회공헌 이사회 운영 등 실제 운영 방식과 완전한 정렬을 이룬 상태에서 전개된다. 이에 따라 사회적으로 민감한 주제를 다룰 때 발생하는 보수 성향 소비자의 불매 위험에도 불구하고, 브랜드의 가치관에 공명하는 진보 성향 고객층의 압도적인 옹호와 충성도를 확보하며 견고한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반면 벨기에의 글로벌 맥주 기업 안해저부시 인베브(Anheuser-Busch InBev)의 브랜드 '버드라이트'는 비슷한 상황에서 리스크 통제 실패로 곤욕을 치렀다. 2023년 봄, 버드라이트는 트랜스젠더 인플루언서 딜런 멀베이니(Dylan Mulvaney)와 소셜 미디어 마케팅 협업을 진행했다. 브랜드의 전통적 소비층인 미국 교외 지역 보수 성향 노동자 계층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완전히 간과한, 마케팅상의 실수였다. 성소수자 권리라는 휘발성 높은 양극화 구도 속에서 보수 성향 소비자는 즉각 대대적인 불매 운동에 나섰다.
더 큰 문제는 사태 직후 경영진이 보여준 대처 방식에서 비롯되었다.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반발에 안해저부시 경영진은 멀베이니와 거리를 두는 듯한 모호한 사과문을 발표하며 책임을 회피한다는 의심을 받았다. 이것은 진보진영으로부터 "신념도 없이 트렌드에 무임승차했다가 불리해지니 배신한다"라는 더 큰 분노를 자아냈다. 메시지의 일관성과 진정성을 모두 잃어버린 버드라이트는 20년 넘게 지켜온 미국 맥주 시장 판매량 1위 자리를 내주어야 했으며, 주가하락 등 큰 피해를 보았다. 결국 본업과 연결되지 않은 표피적이고 유행에 편승한 액티비즘이 초래한 흑역사의 대표 사례로 남았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지난달 26일 스타벅스 '탱크데이' 사태 관련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국 비즈니스에서는 신세계그룹 계열사인 스타벅스코리아의 '탱크데이(Tank Day)' 사건이 두고두고 경영학의 액티비즘 실패 사례로 거론될 전망이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하자 정용진 회장은 당일 저녁 손정현 스타벅스코리아 대표이사를 즉각 전격 해임하고 관련 부서 임직원을 배제하는 강력한 인적 인적 쇄신을 감행하는 한편, 공식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어 신세계그룹은 스타벅스 국내 진출 27년 만에 처음으로 전국 1900여개 모든 매장의 문을 닫고 역사 교육을 받는 파격적 조치를 결정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브랜드가 입은 도덕적 평판과 기업가치의 훼손은 메우기 힘든 상흔으로 남았다. 브랜드 액티비즘은 CEO 액티비즘과 연관된다. 정 회장의 소셜 미디어 '멸공(滅共)' 발언이라는 사실상의 구조적 배경이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 사례는 앞서 살펴본 CEO 액티비즘 프레임워크가 경고한 치명적인 위험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유통과 리테일, 그리고 F&B 비즈니스를 영위하는 신세계의 사업 구조는 남녀노소, 진보와 보수를 막론한 대다수 국민 전체를 잠재 고객으로 삼는다. 따라서 극단적인 이념을 표방하거나 보편적인 역사적 합의선에 균열을 내는 행위는 목표 고객군과 '가치 일치'를 전면적으로 파괴하는 자멸적 선택이다. 둘째, '멸공'이라는 안보·이념 담론이나 '탱크데이'에 내재된 역사적 상처의 왜곡은 신세계가 영위하는 이커머스 및 오프라인 리테일이라는 본업과의 '비즈니스 적합성'이 제로에 가깝다. 소비자는 장을 보거나 커피를 마시면서 이념적 투쟁이나 역사적 비하의 내러티브를 기대하지 않는다.
이 사건은 리더 개인의 무절제하고 무분별한 이념 개입과 조직 내부의 검증 거버넌스 부재가 브랜드 평판을 넘어 기업 생존을 위협하는 이해관계자 리스크를 유발함을 실증했다. 정상적인 의견 표명이라기보다 혐오와 역사성 부재를 근거로 하기에 '액티비즘'으로 보아야 하는지도 논란이다.
가치 있는 방관자
초투명·초양극화 사회에서 현대 기업에게 완벽한 '기계적 중립'이란 불가능하다. 침묵은 방조로 해석되고, 섣부른 참여는 편향이라는 총포를 맞는다. 이제 무조건적인 회피로서 중립이 아닌, 정교하게 기획된 일관성 있는 가치 중립이 필요해 보인다.
유행하는 사회적 논쟁마다 징검다리 건너듯 개입하는 정치적 참견을 멈추고, 기업 고유의 존재 목적과 헌장에 부합하는 인류 보편의 가치(환경보전, 인권, 지속가능성)에만 선택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고도의 자기 절제의 태도가 긴요하다. 기업의 소통 부서는 리더의 개인적 신념을 전파하는 확성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기업의 이해관계자 지형이 감당할 수 있는 갈등의 한계선을 측정하고 조율하는 가치 필터가 되어야 한다. 기업의 목소리는 기업의 비즈니스 영토 안에서, 비즈니스와 관련한 윤리적 문제에 집중하며 표명되어야 한다.
프루스트가 드레퓌스 사건에 휩쓸린 사교계를 통해 묘사한 비극은, 세속적 허영과 진영 논리에 매몰되어 인간이 수십 년간 쌓아 올린 개인적 품격과 다양성에 대한 포용력을 한순간에 잃어버리는 내면의 붕괴였다. 현대의 리더와 기업 역시 동일한 심연을 마주하고 있다. 소셜 미디어라는 거대한 광장에서 대중이 던지는 이분법적 질문에 조급하게 답변하려다 스핀을 걸거나, 리더 개인의 가공되지 않은 신념을 정의로 포장하여 시장에 강요하는 행위는 결국 기업의 본질적 존립 기반인 이해관계자 신뢰 총체를 파괴하는 지름길이 된다. 눈앞의 이념적 유행에 영혼을 파는 기업은 지속 가능한 생명의 불꽃을 이어갈 수 없다.
[안치용의 Critique: 중립이라는 환상과 액티비즘의 심연]
소통의 영역에서 중립은 편리한 도피처였다. 그러나 갈등이 일상화한 초투명 사회에서, 기업의 어설픈 침묵은 더 이상 안전한 방패가 아닌 또 다른 형태의 정치적 표명이자 기회주의적 처신으로 격하될 우려가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뜻이다. 동시에 행동주의의 성패가 목소리의 크기가 아닌 내적 정렬의 정밀함에 달려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기업의 행동주의가 일시적인 마케팅 전술이나 위기 모면용 언어 장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기업의 헌장과 정체성, 그리고 그들이 대면하는 수많은 이해관계자와 정직한 관계 맺음에서 출발하는 실존적 윤리 결단이어야 한다. 시대의 폭풍 속에서 무원칙하게 마구 떠밀려 가라는 얘기가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가치의 나침반을 정립하라는 얘기다. 정용진 회장이 비즈니스 세계의 좋은 반면교사가 되었듯, 그 가치는 보편성과 상식에 입각한 것이어야 한다.
안치용 ESG비즈니스리뷰 발행인 겸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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