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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문제, '즉·강·끝'만 부여잡고 있으면 될까요 Ⅱ
(황방열의 한반도 나침반)'트럼프 2기' 국방장관 유력 후보 "북미 군축협상론 왜 안 되나?"공개 발언
2024-03-22 06:00:00 2024-03-22 06:00:00
 
북한이 지난 19일 오전과 오후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신형 중장거리 극초음속 미사일용 다단계 고체연료엔진 지상분출 시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0일 보도했다. 이날 지상 시험에는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참석했다.(사진=연합뉴스)
 
<동아일보> 16일 자에 따르면, '트럼프 2기'가 현실화할 경우 국방장관 후보로 꼽히는 크리스토퍼 밀러 전 국방장관 직무대행이 미국 일각에서 제기된 북미 핵군축협상론에 대해 "나는 ‘왜 안 되느냐(Why not)?'라는 의견에 찬성하는 편"이라고 답했습니다.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뉴스입니다. 그는 "(북핵은) 이미 호리병 밖으로 빠져나온 지니(genie out of the bottle)처럼 보인다. 이제 기대가 아니라 현실에 기반을 두고 협상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밀러 전 대행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0년 11월9일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을 전격 해임하면서 대행으로 발탁한 인물입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재선이 무산된 상황에서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미군 병력을 추가 감축하라는 지시를 충실히 이행,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해 말 라디오 인터뷰에서 “정권 말기에 밀러 전 대행이 아주 잘해줬다”며 자기 국방장관 후보로 직접 거명해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트럼프, 재집권시 핵보유 용인…북핵동결·제재완화 구상" <폴리티코> 보도, 맞았나?
 
그런 인물이 북미 간 군축협상에 찬성한다고 나선 겁니다. 이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북한의 핵 보유는 용인한 채 핵 동결 대가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협상을 고려하고 있다는 지난해 12월 13일(현지시간) 미국의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 보도와 같은 맥락입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즉각 이를 부인했으나 이는 '선거용 부인'일 뿐이고, 실제 의중은 이 보도와 같을 것이라는 시각이 많았는데, 이번에 밀러 전 대행이 공개적으로 같은 발언을 한 겁니다.
 
<동아일보>는 지난 2월에도 트럼프 2기 국무장관 1순위로 거론되는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국가안보보좌관이 "김정은은 트럼프의 리더십 아래 강력해진 미국과 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트럼프가 북한은 물론 중국, 러시아에도 최대치의 제재를 가해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낼 것"이라고 했다고 보도했는데요. 북미 간 핵군협 협상까지 나간 밀러 전 대행과는 차이가 있지만, 현 바이든정부의 '전략적 인내'나 '점잖은 무시'와는 크게 다른 대북정책을 구상하고 있는 겁니다.
 
물론 이들이 밀러 전 대행이나 오브라이언 전 보좌관이 실제로 트럼프 2기 내각에 들어가게 될지는 현재로서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대선을 반년 정도 앞둔 현재 '트럼프 그룹'이 북한에 대해 구상하고 있는 정책 방향은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현 바이든정부도 최근 들어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관련 기사: 북핵 문제 '즉·강·끝'만 부여잡고 있으면 될까요)
 
바이든 현 정부도 '중간 단계 조치'(interim steps) 공개 언급
 
바이든정부의 북핵 문제 담당 실무책임자인 정 박 국무부 대북고위관리(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 겸 대북특별부대표)가 이달 초 "궁극적인 비핵화로 향하는 과정에 '중간 단계 조치'(interim steps)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비핵화는 하룻밤에 이뤄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바이든정부가 ‘조건 없는 대화'라는 외교적 수사만 반복해온 상황에서, 손꼽히는 '대북 강경파' 정 박이 이런 발언을 한 겁니다.
 
물론 이는 '러시아-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가자' 두 개의 전쟁 와중에, 대선을 치르고 있는 바이든정부가 한반도 상황관리 차원에서 한 발언이라는 성격이 강합니다. 하지만 그 바탕에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자체적인 '핵우산'을 갖고 있다"고 평가할 정도로 북한 핵능력이 고도화한 상황이 깔려 있습니다.
 
북한은 지난 19일에 신형 중장거리 극초음속 미사일용 다단계 고체연료엔진 지상분출 시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이번 시험발사 성공에 대해 "군사 전략적 가치는 대륙간탄도미사일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평가하면서 조선노동당 제8차 당대회가 제시한 5개년 계획기간의 전략 무기 부문 개발과제들이 훌륭히 완결된 데 대해 대만족을 표시했습니다. 그는 지난 2021년 1월 8차 당대회에서 국방력 발전 5개년 계획의 핵심 과업으로 △극초음속 무기 개발 △초대형 핵탄두 생산 △1만5000㎞ 사정권 안의 타격 명중률 제고 △수중 및 지상 고체연료 ICBM 개발 △핵잠수함과 수중발사 핵전략 무기 보유 등 5대 과업을 제시했고, 이번에 "전략 무기 부문 개발과제들이 훌륭히 완결됐다"고 선언한 겁니다.
 
김정은 "국방력 발전 5대 과업 훌륭히 완결" 선언
 
그는 앞서 지난해 12월 말에는 남북 관계를 "동족 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 이어 올해 1월에는 "우리 국가의 남쪽 국경선이 명백히 그어진 이상 불법무법의 '북방한계선'을 비롯한 그 어떤 경계선도 허용될 수 없으며 대한민국이 우리의 영토, 영공, 영해를 0.001㎜라도 침범한다면 그것은 곧 전쟁 도발로 간주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남북 간에 가장 예민한 서해 북방한계선(NLL)상 충돌도 불사하겠다는 의지 표현입니다.
 
물론 북한이 전면전을 벌이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칼을 꺼내든 국면입니다. 때문에 이런 긴장 고조가 우발적 충돌로 연결되지 않도록 상황 관리가 중요하다는 것은 상식의 영역입니다.
 
신원식 국방장관이 트레이드 마크로 만든 '즉·강·끝'(즉각·강력히·끝까지)도 필요하지만, 문제는 오로지 그것뿐이라는 겁니다. 여전히 북한의 후견국이고 이전 같지는 않지만 영향력을 갖고 있는 중국, 러시아를 움직이는 노력은 전무합니다.
 
한국 국민 1명이 올해 초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간첩 혐의로 체포됐다고 러시아 타스 통신이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그래픽=연합뉴스)
 
지난해 5월께 중국정부가 윤석열정부에게 "앞으로 한국과는 협력보다는 위기관리 측면이 더 높다"고 통보한 이래, 한중 정부 간 유의미한 대화가 사라졌습니다. 시진핑 주석 방한은커녕 한중 정상회담에 대한 언급 자체도 없지 않습니까? 30년간 굳어진 '한중일' 호칭을 '한일중'으로 바꾸는 수준의 대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중 간 유의미한 대화 끊기고…러시아는 '인질외교'까지
 
러시아와는 어떻습니까? 최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압승으로 끝난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 대해 정부가 “한·러 양국은 상호 관계를 관리하려는 데 공동의 의지를 갖고 있다”며 상황 관리를 하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러시아가 지난 1월 사상 처음으로 한국인을 간첩 혐의로 체포하는, 전형적인 '인질 외교'까지 벌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물론 그 고리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무기 지원 문제 때문입니다.
  
현재 한반도는 정세 유동성이 큰 상황입니다. 올해 11월 미국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유동성은 더욱 커질 겁니다. 그만큼 더 다양한 카드를 준비하면서 유연하게 대응해도 힘에 부치는 판인데, 지금 정부의 대응은 그저 맞서겠다는 식 아닙니까?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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